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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동지사대학(同志社大学) 도시샤대학, 해환 윤동주(海煥 尹東柱) 서시序詩, 정지용(鄭芝溶)압천鴨川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4. 2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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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사대학同志社大学 도시샤대학[Doshisha University]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学 도시샤대학[Doshisha University],

일본 교토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으로 

1875년 그리스도교 전도사이자 교육자였던

니지마 조[新島襄 : 18431890]가 세운 도시샤에이학교[同志社英學校]가 전신이다.

1904년 도시샤전문학교로 교명을 바꾸었고,

1912'전문학교령'에 따라 도시샤대학이 되어 신학부와 영문과·정치경제부를 개설하였다.

1920'대학령'에 따라 대학이 되었다가,

1948년 교육제도 개편에 따라 새로운 체제의 대학이 되었다.

그리스도교 정신과 국제주의에 입각한 자유스러운 학풍 속에서 많은 인재를 길러낸 대학으로 유명하며,

우리나라 시인 윤동주尹東柱와   정지용鄭芝溶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윤동주尹東柱시비     정지용鄭芝溶시비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은 일제 식민지시대 교토의 한인사회와 함께

유학생들의 모습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기독교 건학이념을 가진 학교라고 한다.

정지용· 윤동주· 김말봉 등 문인들이 많이 나왔으며,

도시샤대학 교정의 명덕관에서 영정관으로 가는 길목에

정지용과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정지용鄭芝溶시비

압천(鴨川)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임 보내기 목이 잠겼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짜라 바시어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들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마음

압천 십리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정지용의 시비는 2005년 건립됐다.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를 한 학기를 다닌 것에 비해 정지용 시인은 무려 12학기를 다녔다고 한다.

가모가와로 불리는 압천과 히에이잔 산록,

가와라마치의 번화가를 거닐면서 식민지에서 온 젊은 시인들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하고,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고 고향과 조국을 그리워했다.

이 두 시인은 이제 도시샤 대학의 양지바른 교정에서 화강암 시비로 서서 방문객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고 있다.

 

 

정지용(鄭芝溶)

1902515(음력) ~19509월경(추정)

본관은 연일(延日).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신.

아명(兒名)은 태몽에서 유래된 지용(池龍)이고 세례명은 프란시스코[方濟角]이다.

가끔 지용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을 뿐이며, 여타의 아호(雅號)나 필명은 없다.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곧바로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교수직과 경향신문사 주간직은 물론, 기타의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1993.4.24., 5.1., 5.7.)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행적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오해로 유작의 간행이나 논의조차 금기되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시어의 조탁(彫琢)과 섬세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독특한 시세계를 표현했는데,

이러한 성격은 한국의 서정시를 계승한 것으로서 이후 제자격인 청록파의 시세계로 이어졌다.

100여 편이 넘는 시 외에도 소설 〈3인 三人〉(서광, 1919. 11)과 평론 〈조선시의 반성〉

(문장, 1948. 10)·〈문학으로 사는 길〉(세계일보, 1949. 1. 5) 등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정지용시집〉(1935)·〈백록담〉(1941)·〈지용시선〉(1946)과,

이론서로 〈문학독본 文學讀本〉(1948)·〈산문 散文〉(1949) 등이 있고,

1988년 민음사에서 〈정지용선집〉을 펴냈다  

 

 

윤동주尹東柱시비

 

 

 

序詩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아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尹東柱, 19171230 ~1945216)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인 동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를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에 건너가 1942년 26세에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學)을 입학하고,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고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1990년대 후반 이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본명 외에 동주(童柱)와 윤주(尹柱)라는 필명도 사용하였다.

그의 시비는 시인이 영면한 50주기를 맞아 동지사 학우회 코리아클럽과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에서 세웠다.

윤동주 시비에서 불과 5미터 떨어진 곳에 정지용 시비도 서 있다.

윤동주 시인이 생전에 걸작이라고 평한

정지용의 압천(鴨川)은 교토의 도시샤대학 인근을 흐르는 내로,

정지용시인은 이곳을 거닐며 애수에 잠겼다고 한다.

 

 

 

 

할아버지  윤하현(尹夏鉉, 1875~1948)

    아버지 윤영석(尹永錫, 1895~1965) 

    어머니 전주인 김용(金龍, 1891~1948)

               해환 윤동주(海煥 尹東柱, 1917 ~1945)

          동생 전 성대 건축과교수 윤일주(尹一柱, 1927~1985)

                  조카 전 성대 건축과교수 윤인석(尹仁石, 1956~   )

          동생 시인 윤광주(尹星柱, 193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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