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산 331-1
모하당 김충선(慕夏堂 金忠善)
1571(선조 4) ~ 642(인조 20)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원래 이름은 사야가였다.
字는 선지善之, 號는 모하당慕夏堂 .
사성 김해김씨(賜姓 金海金氏)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3,000여 군사를 이끌고 침입했다가,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귀순하였으며,
그뒤 동래, 울산, 진주 등에서 일본군을 여러 차례 무찔러 가선대부에 올랐다.
도원수 권율, 어사 한준겸(韓浚謙) 등의 주청으로 선조로부터 사성명(賜姓名)을 하사받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10여 년 간 북쪽 변경의 방어를 맡았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정헌대부로 승진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괄의 부장 서아지를 잡아 죽이는 등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웠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광주 쌍령에서 청군 500여 명을 죽인 전과를 올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의 공적으로
‘삼난공신(三亂功臣)’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청과 화의가 성립된 뒤에는 대구로 내려가 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하여 살면서,
가훈·향약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저서에 〈모하당문집〉이 있다.
일본인으로 있을 때는 사무라이 무신계급의 지방호족이었으며
조선에 귀화 후에는 선조로부터
본관을 김해(金海)로, 이름은 충선(忠善)으로 사성명(賜姓名)을 받았다.
제절(除節)이 좁아 파노라마 촬영
贈正憲大夫兵曹判書金海金公諱忠善之墓
증정헌대부병조판서김해김공휘충선지묘
모하당 김충선 신도비
모하당김충선묘역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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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당김충선의 차남 증 공조참판 김경신묘소
贈工曹參判金海金公諱敬信之墓 配淑夫人淸道金氏雙墳
증공조참판김해김공휘경신지묘 배숙부인청도김씨쌍분
贈工曹參判金海金公諱敬信之墓
증공조참판김해김공휘경신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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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당 김충선의 장손 처사 김진성묘소
學生金海金公振聲之墓 配孺人密陽朴氏雙墳
학생김해김공진성지묘 배유인밀양박씨쌍분
乿隱處士 金海金公之墓
치은처사 김해김공지묘
//모하당 김충선(慕夏堂金忠善)가계 //
증조부 김옥(金鋈)
조부 김옥국(金沃國)
부 김익(金益), (일본 전국시대 지방호족, 사무라이)
모하당 김충선(金忠善)(사야가沙也可)
장남 상호군 증 호조참판 김경원(金敬元), 7남 4녀
손자 김진성(金振聲)
증손자 김여옥(金汝玉)
현손 김광윤(金光潤)
5대손 김치관(金致觀)
5대손 김치공(金致坤)
현손 김광택(金光澤)
5대손 김치익(金致益)
5대손 김치성(金致成)
5대손 김치승(金致升)
현손 김광필(金光弼)
5대손 김치복(金致復)
5대손 김치항(金致恒)
5대손 김치봉(金致奉)
5대손 김치중(金致仲)
손자 승정원좌승지 김진영(金振英)
손자 김여삼(金汝三)
손자 김용하(金龍河)
차남 증 공조참판 김경신(金敬信). 5남 2녀
손자 김진흥(金振興)
손자 김진발(金振發)
손자 김진봉(金振鳳)
손자 김진문(金振文)
손자 김진기(金振機)
삼남 절충장군 상호군 김우상(金右祥)
사남 부호군 김계인(金継仁)
오남 증 이조참판 김경인(金敬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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