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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척야산 창의사(拓野山 彰義祠), 김덕원의사 항일투쟁사적비, 청로봉, 척야산 문화 수목원

홍천

by 碧巖 2019. 10. 2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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拓野山 彰義祠

척야산 창의사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산144-1

 

 

 

拓野山記척야산기         황금찬

이름하여 척야산이라.

하늘같은 사연을 가진 채 의연하고 묵묵히 서서 수하리, 물걸리에 인정과 그 변화의 역사를 지키며 난 보고 있다.

산은 커서 명산이 아니고 높아서 태산이 아니라.

척야산은 지혜의 산이며 사랑의 기품이 사람과 같이 살아 숨쉬는 산이다.

마음이 괴로우면 같이 울고 의인이 가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척야산

멀리 태기산에서 근원한 용호강을 왼쪽에 끼고 갈현에서 흐르는 이름 없는 실개천은 바른쪽에 강과 실개천이

서로 만나는 곳에 유명한 청로봉이 솟아 있다.  아  승기의 세월 속에 이 고장의 홍천은 꽃밭처럼 살아왔다.

한때 나라 잃은 슬픈 한을 달래려는 우국지사들을 사랑의 가슴으로 품어주곤 했느니, 또 말하리라 여기 형제요,

부모같이 호흡을 나눈 산이 있으니 그 산이 바로 척야산이라.

! 위대하다 척야산이여! 그대의 사랑은 하늘을 덮고 그대의 지혜는 바다보다 깊었다.

세기의 위인 김덕원 의사가 나라 잃은 한을 품고 그대의 가슴에 피와 눈물을 흘릴때

구름의 옷자락으로 그대는 의인을 덮어주고 그의 지친 몸을 악몽에서 지켰느니라.

의인이 목이 탈때 영천으로 이끌었고

나뭇잎으로 떠 마신 이슬의 물은 의인의 불타는 애국의 마음을 그대의 숨결에 싣기도 하였느니라.

 

척야산!

성스러운 이름.  아! 그대 자비의 강에 이어지는 아침 같은 전설.

까마귀 한 마리를 홍수에서 구해준 까막죽배기, 괴물에게 벼락을 처 주민을 구한 이야기,

한 선비가 병을 얻어 그를 영천으로 인도해 병을 물리치고 타고 온 가마를 버리고 걸어갔다고...

척야산 그대의 자비요사랑이었어라.

김덕원 의사가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던 청류봉, 세류봉, 사국봉, 의사봉, 청로봉

모두 산이면서 의인의 친구요 또한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다.

산은 진달래, 철쭉으로 물들어 구국 지사들의 조국애를 달래 주고 주민들이 기근에 고통받고 있을 때

그대 허리의 물길을 열어 동창 뒷들을 기름지게 한 공덕 그대의 은혜는 나유타의 손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으리라.

척야산

나라의 운명을 열고 들을 열어 이 고장 사람들의 생활을 기름지게 하였기에 이름한 산,

어질고 아름답기도 하여라!

그 빛나는 이름 척야산  이 지구안에 다시없을 산아 그대 앞에 머리 숙이느니

길손이 구름 길에 발을 멈추고 묻거든 대답하라의인과 같이 호흡하는 산  그 척야산이 여기에 있노라고.....

 

 

 

 

 

金德元義士忠魂碑                      彰義祠                              金德元義士 抗日鬪爭史蹟碑

김덕원의사충혼비                      창의사                              김덕원의사 항일투쟁사적비

 

                                     金德元義士忠魂碑

                                     김덕원의사충혼비 

                                                                                  第十三代國會議長 金在淳 謹題

                                                                                    13대국회의장 김재순 근제

 

 

 

 

 

 

 

 

 

金德元義士 抗日鬪爭史蹟碑文

김덕원의사 항일투쟁사적비문

關東治下 洪川郡 乃村面 物傑里 東倉마을에서 出生하여 己未年 三.一運動主導愛國之士가 있으니

卽 金德元 義士 이다. 義士慶州金氏, 先系新羅大輔 諱閼智公으로 爲始祖하고 新羅末 將軍公諱順雄

爲中始祖하여 朝鮮朝 開國功臣 議政府 左贊成 封 鷄林君 諡齊肅公 諱稛으로 爲顯祖하고 靑史의 거울인

六朝淸白吏 選入(世宗, 文宗, 端宗, 世祖, 睿宗, 成宗) 漢城 判尹 諡恭胡公 諱 從舜公義士十七代祖이시다  

考諱正俊武科副司果龍驤衛 宣略將軍이요, 淑夫人 慶州崔氏이다.  

西紀 一八七六年 十一月 二十六日 出生하니 氣骨莊嚴하고 智略卓越하여

自幼率群作戰義勇鬪志拔群 하여 人皆曰 武官之子特性이라. 하다.

 

當時 朝廷高宗 皇帝 幼沖으로 大院君攝政할세 鎖國壤夷 主義堅持하다가

下野後 閔升鎬 一派得勢中 高宗乙亥日本軍江華島侵入威脅하고 永宗鎭猛爆하여

 仁川上陸侵攻하니 交戰連敗講和免戰이나 國運漸衰하야 光武九年伊藤博文來朝하야

乙巳條約締結警察治安權日憲兵掌握 하니 皇城新聞是日也.

 

放聲大哭이란 論說揭載停刊되고 閔泳煥, 趙秉世, 洪萬植 等自決하니 當時 公年 二十九歲.

東學農民同志糾合 하여 自決忠臣에게 設位弔哭하고 日帝野慾糾彈決議하다 嗚呼.

純宗四年 庚戌 八月 二十二日 韓日合邦條約締結되고 新任統監寺內正毅侵來하여 統治權掌握하니

宗廟社稷一朝閉門이요, 三千萬民族血淚成川이라.

 

金 義士亡國之嘆餘致齋 三日하고 與同志祭天告由曰 皇天下察하소서. 天無 二日이요,

地無二主어늘 主上健在倭人統治天理違反이오니 卽刻 退送하소서.

告畢超然正襟 하고 西南方地域南漢江中心으로 排日思想獨立運動展開하고

馬房設置連絡促進하니 聞者莫不呼應이라.             哀哉. 高宗皇帝昇遐하시도다.

 

 

因山 三日前 三月一日 漢陽 塔洞公園에서 大呼獨立萬歲하고 波及 地方할세.

江原道四月一日 春川蹶起爲始하여 四月三日 掌頭 金德元 主導下東倉마을에서

乃村面, 化村面, 瑞石面, 內面, 麟蹄郡 麒麟面五個面 三千群衆蹶起하여 强占掠奪당한 國權回復하여 子孫

萬代繁榮을 이룩하기 殺身保國 하자는 掌頭蹶起辭가 있자, 大韓獨立萬歲소리가 天地振動 하였다. 繼續되는 運動으로 八烈士犧牲되고 同參人士各 門中志士 儒林 東學農民,

天道敎, 基督敎 及 道路 賦役人夫까지 合勢되었다.

倭警連日擔銃出動으로 多數 逮捕, 收監하고 酷毒拷問으로 犧牲者 多出하였으며,

金 義士千石鉅富不久而敗하고 婦人 金海金氏로부터 致鎬, 昌興 兄弟하였으나

家勢致敗學問未修하고 雇食之計僅僅生涯하니 國亡 卽 忠臣家亦亡하는 原理이다.

 

金 義士日警搜索網하여 拓野山下 龍虎垈 다락방에서 隱身하고 夜則 德元山길을 往來하며

風餐露宿하고 日警來襲하면 淸露峯, 仰天峯에서 隱身하며 國亡天地神明呼訴하니라.

 

三年間 無事避身이러니 先考祭日參祀次 下山途中 潛伏倭警에게 逮捕되어

處役中 苛酷拷問獄苦 餘毒으로 兩眼失明되고 肢体不用病客으로 餘生을 보내다가

棄世 하였으니 忠貞千秋不滅이요, 靑史民族龜鑑이라.

 

現在 忠魂陟降하는 史蹟地에는 淸露閣肅然하고, 仰天樓屹然하다.

光復 五拾周年 東倉萬歲運動記念事業推進委員會에서 此域聖域化함에 하여

後孫南江 金昌黙甫誠力提供하고 하여 史蹟碑建立하고자 於余顯石文하는

義士抗日鬪爭史考憑하여 如右記述하고 後之君子明鑑企待하노라. 

                                                                                                 光復後歲初乙亥小春上院

                                                                                         原任 成均館長 密陽后人 朴重勳

 

 

 

 

 

 

 

 

 

 

 

淸露峰 賛(청로봉 찬)

산이면서 산이 아니었다.

義人(의인)의 고향이요

애국자의 집이면서

나라 사랑의 길이었다.

 

병든 조국의 아프고 한스러움을

만세로써 하늘에 고하고

日警(일경)에게 쭟기는 義士(의사) 金德元(김덕원)

밤하늘에도 소란하던 쇠사슬 소리

그때마다 문을 열고 불러주던

청로봉의 우정,

 

우리 여기서 조국을 지켜라.

나라 사랑이 하늘이요 땅이다.

義人(의인)과 청로봉의 우정을 기리노라.

                                시 后白 黃錦燦 후백 황금찬

                                글 惠風 金光暿 혜풍 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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