拓野山 彰義祠
척야산 창의사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산144-1
拓野山記척야산기 황금찬
이름하여 척야산이라.
하늘같은 사연을 가진 채 의연하고 묵묵히 서서 수하리, 물걸리에 인정과 그 변화의 역사를 지키며 난 보고 있다.
산은 커서 명산이 아니고 높아서 태산이 아니라.
척야산은 지혜의 산이며 사랑의 기품이 사람과 같이 살아 숨쉬는 산이다.
마음이 괴로우면 같이 울고 의인이 가는 길을 열어 주기도 하였다.
척야산
멀리 태기산에서 근원한 용호강을 왼쪽에 끼고 갈현에서 흐르는 이름 없는 실개천은 바른쪽에 강과 실개천이
서로 만나는 곳에 유명한 청로봉이 솟아 있다. 아 승기의 세월 속에 이 고장의 홍천은 꽃밭처럼 살아왔다.
한때 나라 잃은 슬픈 한을 달래려는 우국지사들을 사랑의 가슴으로 품어주곤 했느니, 또 말하리라 여기 형제요,
부모같이 호흡을 나눈 산이 있으니 그 산이 바로 척야산이라.
아! 위대하다 척야산이여! 그대의 사랑은 하늘을 덮고 그대의 지혜는 바다보다 깊었다.
세기의 위인 김덕원 의사가 나라 잃은 한을 품고 그대의 가슴에 피와 눈물을 흘릴때
구름의 옷자락으로 그대는 의인을 덮어주고 그의 지친 몸을 악몽에서 지켰느니라.
의인이 목이 탈때 영천으로 이끌었고
나뭇잎으로 떠 마신 이슬의 물은 의인의 불타는 애국의 마음을 그대의 숨결에 싣기도 하였느니라.
척야산!
성스러운 이름. 아! 그대 자비의 강에 이어지는 아침 같은 전설.
까마귀 한 마리를 홍수에서 구해준 까막죽배기, 괴물에게 벼락을 처 주민을 구한 이야기,
한 선비가 병을 얻어 그를 영천으로 인도해 병을 물리치고 타고 온 가마를 버리고 걸어갔다고...
척야산 그대의 자비요! 사랑이었어라.
김덕원 의사가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던 청류봉, 세류봉, 사국봉, 의사봉, 청로봉
모두 산이면서 의인의 친구요 또한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다.
산은 진달래, 철쭉으로 물들어 구국 지사들의 조국애를 달래 주고 주민들이 기근에 고통받고 있을 때
그대 허리의 물길을 열어 동창 뒷들을 기름지게 한 공덕 그대의 은혜는 나유타의 손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으리라.
척야산
나라의 운명을 열고 들을 열어 이 고장 사람들의 생활을 기름지게 하였기에 이름한 산,
어질고 아름답기도 하여라!
그 빛나는 이름 척야산 이 지구안에 다시없을 산아 그대 앞에 머리 숙이느니
길손이 구름 길에 발을 멈추고 묻거든 대답하라! 의인과 같이 호흡하는 산 그 척야산이 여기에 있노라고.....
金德元義士忠魂碑 彰義祠 金德元義士 抗日鬪爭史蹟碑
김덕원의사충혼비 창의사 김덕원의사 항일투쟁사적비
金德元義士忠魂碑
김덕원의사충혼비
第十三代國會議長 金在淳 謹題
제13대국회의장 김재순 근제
金德元義士 抗日鬪爭史蹟碑文
김덕원의사 항일투쟁사적비문
關東治下 洪川郡 乃村面 物傑里 東倉마을에서 出生하여 己未年 三.一運動을 主導한 愛國之士가 있으니
卽 金德元 義士 이다. 義士는 慶州金氏요, 先系는 新羅大輔 諱閼智公으로 爲始祖하고 新羅末 將軍公諱順雄을
爲中始祖하여 朝鮮朝 開國功臣 議政府 左贊成 封 鷄林君 諡齊肅公 諱稛으로 爲顯祖하고 靑史의 거울인
六朝淸白吏 選入(世宗, 文宗, 端宗, 世祖, 睿宗, 成宗) 漢城 判尹 諡恭胡公 諱 從舜公은 義士의 十七代祖이시다.
考諱正俊은 武科로 副司果龍驤衛 宣略將軍이요, 妣는 淑夫人 慶州崔氏이다.
公이 西紀 一八七六年 十一月 二十六日 出生하니 氣骨이 莊嚴하고 智略이 卓越하여
自幼로 率群作戰과 義勇鬪志가 拔群 하여 人皆曰 武官之子의 特性이라. 云하다.
當時 朝廷은 高宗 皇帝 幼沖으로 大院君이 攝政할세 鎖國壤夷 主義를 堅持하다가
下野後 閔升鎬 一派가 得勢中 高宗乙亥에 日本軍이 江華島에 侵入威脅하고 永宗鎭을 猛爆하여
仁川에 上陸侵攻하니 交戰連敗로 講和免戰이나 國運漸衰하야 光武九年에 伊藤博文이 來朝하야
乙巳條約締結로 警察治安權을 日憲兵이 掌握 하니 皇城新聞에 是日也.
放聲大哭이란 論說揭載로 停刊되고 閔泳煥, 趙秉世, 洪萬植 等이 自決하니 當時 公年 二十九歲라.
東學農民과 同志를 糾合 하여 自決忠臣에게 設位弔哭하고 日帝野慾을 糾彈決議하다 嗚呼라.
純宗四年 庚戌 八月 二十二日 韓日合邦條約이 締結되고 新任統監에 寺內正毅가 侵來하여 統治權을 掌握하니
宗廟社稷은 一朝閉門이요, 三千萬民族은 血淚成川이라.
金 義士가 亡國之嘆餘에 致齋 三日하고 與同志로 祭天告由曰 皇天은 下察하소서. 天無 二日이요,
地無二主어늘 主上健在에 倭人統治는 天理違反이오니 卽刻 退送하소서.
告畢에 超然正襟 하고 西南方地域인 南漢江을 中心으로 排日思想과 獨立運動을 展開하고
馬房設置로 連絡促進하니 聞者莫不呼應이라. 哀哉라. 高宗皇帝昇遐하시도다.
因山 三日前 三月一日 漢陽 塔洞公園에서 大呼獨立萬歲하고 波及 地方할세.
江原道는 四月一日 春川蹶起를 爲始하여 四月三日 掌頭 金德元 主導下에 東倉마을에서
乃村面, 化村面, 瑞石面, 內面, 麟蹄郡 麒麟面등 五個面 三千群衆이 蹶起하여 强占掠奪당한 國權을 回復하여 子孫
萬代에 繁榮을 이룩하기 爲해 殺身保國 하자는 掌頭의 蹶起辭가 있자, 大韓獨立萬歲소리가 天地를 振動 하였다. 繼續되는 運動으로 八烈士가 犧牲되고 同參人士는 各 門中志士 儒林 東學農民,
天道敎, 基督敎 及 道路 賦役人夫까지 合勢되었다.
倭警의 連日擔銃出動으로 多數 逮捕, 收監하고 酷毒한 拷問으로 犧牲者 多出하였으며,
金 義士는 千石鉅富가 不久而敗하고 婦人 金海金氏로부터 致鎬, 昌興 兄弟를 生하였으나
家勢致敗로 學問을 未修하고 雇食之計로 僅僅生涯하니 此는 國亡 卽 忠臣家도 亦亡하는 原理이다.
金 義士는 日警의 搜索網을 避하여 拓野山下 龍虎垈 다락방에서 隱身하고 夜則 德元山길을 往來하며
風餐露宿하고 日警이 來襲하면 淸露峯, 仰天峯에서 隱身하며 國亡의 恨을 天地神明께 呼訴하니라.
三年間 無事避身이러니 先考祭日밤 參祀次 下山途中 潛伏倭警에게 逮捕되어
處役中 苛酷한 拷問과 獄苦 餘毒으로 兩眼이 失明되고 肢体不用의 病客으로 餘生을 보내다가
棄世 하였으니 忠貞은 千秋不滅이요, 靑史는 民族龜鑑이라.
現在 忠魂이 陟降하는 史蹟地에는 淸露閣이 肅然하고, 仰天樓가 屹然하다.
光復 五拾周年 東倉萬歲運動記念事業推進委員會에서 此域을 聖域化함에 至하여
後孫인 南江 金昌黙甫가 誠力을 提供하고 兼하여 史蹟碑를 建立하고자 於余에 顯石文을 請하는 故로
義士의 抗日鬪爭史를 考憑하여 如右記述하고 後之君子의 明鑑을 企待하노라.
光復後歲初乙亥小春上院
原任 成均館長 密陽后人 朴重勳
淸露峰 賛(청로봉 찬)
산이면서 산이 아니었다.
義人(의인)의 고향이요
애국자의 집이면서
나라 사랑의 길이었다.
병든 조국의 아프고 한스러움을
만세로써 하늘에 고하고
日警(일경)에게 쭟기는 義士(의사) 金德元(김덕원)님
밤하늘에도 소란하던 쇠사슬 소리
그때마다 문을 열고 불러주던
청로봉의 우정,
우리 여기서 조국을 지켜라.
나라 사랑이 하늘이요 땅이다.
義人(의인)과 청로봉의 우정을 기리노라.
시 后白 黃錦燦 후백 황금찬
글 惠風 金光暿 혜풍 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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