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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릉顯陵, 조선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

조선왕릉

by 碧巖 2019. 12. 1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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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顯陵(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조선 5대왕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현릉은 제5대 문종(1414~1452)과 현덕왕후 안동권씨(1418~1441)의 능이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소현왕후 청송심씨이다.

세종 3(1421) 8세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막상 왕위에 오른 것은 145037세 때였다.

 

세종은 1442년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자가 섭정을 하는 데 필요한 기관인 첨사원(詹事院)을 설치해

첨사, 동첨사 등의 관원을 두었다.

또한 세자를 왕처럼 남쪽을 향해 앉아서 조회를 받게 했고 모든 관원은 뜰 아래에서 신하로 칭하도록 했다.

문종은 1445년부터 본격적인 섭정을 시작했으며,

세자로 있었던 기간은 무려 30년이나 되지만 정작 재위 기간은 2년여에 뿐이다.

긴 준비 기간에 비해 아쉬운 집권이지만 문종은 즉위하기 전부터 실질적인 정치 경험을 쌓았다.

물론 세자의 섭정이 국정 전반에 걸친 것은 아니었고 인사, 형벌, 군사 등

중요한 사무는 그대로 세종이 관장했기 때문에 세종이 이룬 왕정의 틀과 운영 체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문종은 세자로 있을 때부터 군정에 관심이 많아 진법을 편찬하는 등 군제상 개혁을 단행했고,

로켓의 시조라고 불리는 신기전 발사대 화차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고,

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또한 세자 시절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누구보다 많이 협력했고,

운회언역을 편찬할 때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과 같이 이를 관장했다.


문종이 일찍 사망한 이유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과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근래 문종이 세조와 연계된

의관 전순의(醫官 全循義)에 의해 반하를 즐겨 먹은 꿩고기로 독살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 상태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세조가 문종의 사망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보인다.

문종과 세조의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이 당시의 의관 전순의다.

그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성종 등 5대 임금의 질환을 치료했던

당대의 명의로 내의원 의원에서 첨지중추원사사까지 올랐다.

 

전순의(全循義)는 의관 노중례(盧仲禮), 최윤(崔閏), 김유지(金有智)와 함께

한의학의 3대 저술 중 하나인 의방유취,醫方類聚를 공동 편찬했고,

세계 최초로 과학 영농 온실을 건설했다는 기록을 적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을 펴냈다.

그런 전순의가 세조의 사주로 문종 살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까닭은

문종의 종기를 치료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종기는 원래 고량진미를 과식할 경우에 생기며 초기 치료를 잘하면 사망까지 이르는 병은 아니다.

그런데도 문종이 종기로 사망한 것은 매우 특이한 예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전순의의 죄목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종기가 번성하면 움직이는 것을 금기하는데,

     전순의는 문종에게 사신들을 접대하는 연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사신들을 접대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벅찬 일인데 환자를 혹사해 병환이 깊게 만든 것이라 한다.  

두 번째는 종기가 이미 화농되었을 때는 침을 써서 배농하지만,

     초기 증상에 침을 쓰면 도리어 증상이 악화되고 염증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전순의는 화농되지 않은 종기를 고의적으로 건드려 증상이 더 악화되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지금같이 정교한 침을 쓰지 않아 강한 자극을 주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 상례였다.

     전순의가 이런 기초 지식을 무시하면서 문종에게 비상식적인 처방을 한 것은 고의라 한다. 

세 번째는 원래 꿩이나 닭, 오리는 껍질에 기름이 과다해 종기가 났을 때 금기인데도

        문종에게 꿩고기를 계속 먹게 했다는 점이다.

     꿩은 독성이 강한 반하(半夏: 약재로 쓰이는 여러해살이 약초)를 즐기는데,

     문종은 반하를 먹은 꿩고기를 먹으면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전순의가 문종에게 꿩고기를 계속 먹게 했다는 것이야말로

        문종이 독살되었다는 유력한 증거라 한다.


                       朝鮮國 文宗大王顯陵 顯德王后祔左岡

                       조선국 문종대왕현릉 현덕왕후부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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