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공 피구자 김여물장군 壯毅公 披汨子 金汝岉將軍
안산시 향토유적 제4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산17
묘역전경 - 전면부터 장의공 김여물金汝物의 후손 김병규金秉珪묘소, 증손자 김진표金震標묘소, 김여물金汝物묘소
장의공 피구자 김여물 壯毅公 披汨子 金汝岉 [1548(명종3)∼1592(선조25)]
김여물은 원래는 무관출신이 아닌 문관출신이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충신으로,
字는 사수(士秀), 號는 피구자(披汨子), 외암(畏菴),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할아버지는 김수렴(金粹濂)이고,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 김훈(金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로 부사 강의(康顗)의 딸이다.
영의정(領議政) 김류(金瑬)의 부친이다.
1567년(선조 즉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7년(선조10)에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문무를 겸하였고 풍채가 뛰어났으며 성품이 호탕하고 법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여 중용되지 못하고,
호조,예조,병조의 좌랑과 정랑을 거쳐 안동현감,순천부사,충주도사(忠州都事)를 거쳐 담양부사를 지냈고,
1591년에는 의주목사로 있던 중, 서인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시 도체찰사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이
김여물이 무예에 뛰어난 것을 알고 옥에서 풀어 자기 막중(幕中)에 두려고 하였으나,
도순변사로 임명된 충장공 신립(忠壯公 申砬)이 김여물의 재능과 용기가 뛰어나고 충의로운 선비임을 알고
자기의 종사관으로 임명해줄 것을 간청하여 신립과 함께 출전했다.
신립이 단월역(丹月驛: 현재의 충주 단월역)에 이르러 몇 명의 군졸을 이끌고
왜적의 북상로인 조령(鳥嶺)의 형세를 정찰할 때
상주(尙州)에서 패주해온 순변사 장양공 이일(壯襄公 李鎰)을 만나
조령 방어의 어려움을 알고 충주로 나아가 배수의 진을 치기로 결정했다.
김여물은 이를 반대하고 많은 적을 적은 수의 군사로 물리치는 데는 먼저 조령을 점령하여 지키는 것이 좋고,
평지보다는 높은 언덕을 이용하여 왜적을 역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충주의 달천(達川)을 등지고 배수의 진을 치고
신립을 따라 탄금대(彈琴臺)아래에서 용전분투했으나 왜적을 당하지 못하여 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김여물은 충주싸움의 패배를 예견하고 아들 김류(金瑬)에게
“삼도(三道)의 근왕병(勤王兵)을 요청했으나 한 사람도 이에 응하는 자가 없다.
우리들이 힘을 다해 싸우나 아무런 도움이 없으니 안타깝다.
남아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본시 바라는 바이지만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고,
장부의 뜻이 끝내 못 이루고 한낱 재가 되어버리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만 지을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 가족에게는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우리 일족은 모두 임금님의 행재(行在)로 가서 돕기를 바라며,
결코 난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광해군 초에 충절로써 정려(旌閭)되었으나,
인조반정 뒤에 종래의 포상에 의심스러운 데가 많다고 하여 고쳐진 일이 있으나
1639년(인조17)에 그의 아들 김류(金瑬)의 청에 의하여 다시 정표(旌表)되었다.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으며,
1788년(정조12) 장의(壯毅)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리고 순조 때에는 신립 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순의(殉義)한 충주 달천의 옛터에 제사를 지내 충절을 기렸다.
신도비의 비문은는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이 찬(撰)하였으며,
귀계 김좌명(歸溪 金佐明)이 쓰고,
서곡 이정영(西谷 李正英)이 전액을 하였다.
贈領議政順昌府院君 行通政大夫義州牧使 順天金公汝物之墓 贈貞敬夫人咸陽朴氏祔
증영의정순창부원군 행통정대부의주목사 순천김공여물지묘 증정경부인함양박씨부
贈領議政順昌府院君行通政大夫 義州牧使順天金公汝物 之墓 贈貞敬夫人咸陽朴氏祔
증영의정순창부원군행통정대부 의주목사순천김공여물 지묘 증정경부인함양박씨부
장의공 피구자 김여물金汝岉 묘역후경
김여물의 증손자 형조참의 순녕군 김진표順寧君 金震標
贈嘉善大夫吏曹參判 兼同知經筵義禁府事 弘文館提學藝文館提學 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副摠管
증가선대부이조참판 겸동지경연의금부사 홍문관제학예문관제학 춘추관성균관사오위도총부부총관
行通政大夫刑曹參議順寧君 順天金公諱震標之墓 配貞夫人晉州鄭氏 配貞夫人海平尹氏各窆
행통정대부형조참의순녕군 순천김공휘진표지묘 배정부인진주정씨 배정부인해평윤씨각폄
형조참의 순녕군 김진표順寧君 金震標 묘역후경
//장의공 피구자 김여물장군 壯毅公 披汨子 金汝岉 가계도//
증조할아버지 김약균(金若勻) 선공감정(繕工監正), 승평군
할아버지 김수렴(金粹濂) 무과(武科) 정주목사(牧使)
아버지 김훈(金壎) 찰방(察訪
어머니 신천강씨(信川康氏), 부사 강의(康顗)의 딸
김여물金汝岉 장의공 피구자 壯毅公 披汨子
배위 증정경부인 함양박씨(咸陽朴氏), 현감(縣監) 박수강(朴壽岡)의 딸
배위 평산신씨, 삼도순변사 충장공 신립(申砬)의 누이동생
아들 문충공 북저 김류文忠公 北渚 金瑬 영의정 인조반정주역 승평부원군 문충공
배위 정경부인 진주유씨 좌찬성 유근(柳根)의 딸
손자 김경징金慶徵 한성부판윤 순흥군順興君 강도검찰사
배위 정부인 고령박씨 박효성(朴孝誠)의 딸이다
증손자 김진표金震標 형조참의 돈녕부도정 순녕군順寧君
배위 정부인 진주정씨 정백창(鄭百昌)의 딸, 정부인 해평윤씨
현손 김노득金魯得 고분옹(孤憤翁), 여산군수, 생부 김정창金鼎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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