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공 북저 김류선생 묘역(文忠公 北渚 金瑬先生 墓域)
안산시 단원구 와동 산13-3, 광덕산(廣德山)
안산시 향토유적 제29호
문충공 북저 김류(文忠公 北渚 金瑬
김류[1571(선조4)∼1648(인조26)]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김수렴(粹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찰방 김훈(壎)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김여물(汝岉)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로 현감 박수강(朴壽岡)의 딸이다.
음사(蔭仕)로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1596년(선조2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복수소모사(復讐召募使) 김시헌(金時獻)의 종사관으로 호서·영남 지방에서 활약하였다.
1620년 이귀(李貴) 등과 반정을 꾀했으나 미수에 그치자,
1623년 거의대장(擧義大將)에 추대되어 이귀(李貴),신경진(申景禛),이괄(李适) 등과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인조반정의 공로로 병조참판에 제수되고 곧 병조판서로 승진되어
대제학을 겸하는 동시에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에 봉해졌다.
1624년 반정공신 주류들간의 갈등으로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로서 남행(南幸)하는 인조를 호가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우찬성을 거쳐 1624년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이 때 가도에 있던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을 찾아가 그의 횡포를 막고,
명나라 사신의 반송사(伴送使)가 되어 그들의 불만을 시문으로 회유해 존경을 받는 등 외교에도 일가견을 보였다.
1627년(인조5) 정묘호란 때
도체찰사(都體察使)인 장만(張晩) 수하의 부체찰사로서 먼저 강도(江都)로 인조를 호종하였다.
환도 후 장만(張晩), 김자점(金自點) 등과 함께 청천강 남쪽의 안주(安州)를 중심으로 하는
도체찰사 중심의 적극적인 방어 체제 구축을 주장하였다. 그 해 우의정으로 승진되었으며
겸임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령권을 장악하는 동시에
총융사 이서(李曙), 찬획사(贊劃使) 이경직(李景稷)등과 여러 산성을 순시하고 도형(圖形)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1629년 좌의정이 되었으며 이듬 해 정원군(定遠君)의 추숭 문제에 반대해 일시 관직에서 물러났다.
1633년 다시 좌의정으로 올라 도체찰사를 겸직해 군령권까지 겸했으며, 뒤에 우의정으로 옮겼다.
그러나 다시 정원군 추숭 문제가 제기되자 역시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반대해
인조의 노여움을 사 1634년 다시 면직되었다.
1634년 인조가 전국에 교서를 내려 ‘화친을 끊고 방어를 갖출 것’을 선언하였다.
이 해 다시 4도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청나라와의 관계 악화 방지에 대비하였다.
그 뒤 영의정이 되어 국정권도 아울러 장악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가 아군의 편제된 산성 중심의 방어 체제를 미리 알고
도성을 직접 공격해오자 인조를 강도로 모시자 하였으나 엇갈린 의견속에
적이 이미 서울 교외까지 진출하자 인조를 비롯한 군신은 남한산성으로 피하게 되었다.
이듬 해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주화파의 뜻에 좇아 삼전도에서 맹약을 맺는데 주도적 구실을 하였다.
1644년 심기원(沈器遠)의 모역을 신속하게 평정한 공으로 .
다시 영의정이 되어 영국공신(寧國功臣) 1등에 녹훈되고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왕세자의 환국을 주장하는 한편, 영춘추관사로서 실록의 수정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대사헌 홍무적(洪茂績) 등에 의해 탄핵을 받자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가,
1645년 다시 영의정으로 복위되었다.
이 해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죽자
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鳳林大君)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고 스스로 세자사(世子師)가 되었다.
1646년 소현세자빈 강씨(姜氏)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사직한 뒤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북저집≫이 전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奮忠贊謨立紀明倫靖社 效忠奮威炳幾決策寧國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 昇平府院君
분충찬모입기명륜정사 효충분위병기결책영국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승평부원군
贈諡文忠金公瑬之墓 貞敬夫人晉州柳氏祔
증시문충김공류지묘 정경부인진주유씨부
문충공 북저 김류선생 묘역후경
순흥군 김경징 順興君 金慶徵
한성부판윤 순흥군 김경징 順興君金慶徵
1589년(선조22)~1637년(인조15)
본관은 순천(順天). 字는 선응(善應).
할아버지는 김여물(金汝岉),
아버지는 영의정 김류(金瑬), 어머니는 진주유씨(晋州柳氏)로 좌찬성 유근(柳根)의 딸,
부인은 고령박씨(高靈朴氏)로 박효성(朴孝誠)의 딸이다.
1621년(광해군13)에 치러진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파방(罷榜)되었다.
1623년(인조1) 인조반정 때 세운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이 되고 순흥군(順興君)에 봉해졌다.
같은 해 개시(改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 홍문관수찬, 홍문관응교, 사간원사간 등을 거쳐 도승지,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奮忠贊謨立紀明倫靖社功臣 資憲大夫漢城府判尹 兼五衛都摠府都摠管順興君 順天金公諱慶徵之墓
분충찬모입기명륜정사공신 자헌대부한성부판윤 겸오위도총부도총관순흥군 순천김공휘경징지묘
配貞夫人高靈朴氏合窆
배정부인고령박씨합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도검찰사(江都檢察使)에 임명되어 강화도 수어(守禦)의 임무를 띠고
부제학 이민구(李敏求)를 부장으로 삼고 수찬 홍명일(洪命一)을 종사관으로 삼아 함께 부임하였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강화도에 들어갈 때
김경징의 어머니와 아내는 각각 덮개 있는 가마에 태우고
계집종은 모직으로 된 모자를 씌웠으며 짐바리가 50여 바리가 되었다고 한다.
뒤이어 봉림대군(鳳林大君)과 인평대군(麟坪大君)을 비롯한 왕실과 전,현직 대신인
제천 문익공 윤방(稚川 文翼公 尹昉), 선원 문충공 김상용(仙源 文忠公 金尙容) 등 많은 사람이 피난하였다.
김경징(金慶徵)은 대군이나 대신들의 의사를 무시하면서 혼자서 강화도 안의 모든 일을 지휘하고 명령하였다.
더구나 강화도를 금성철벽(金城鐵壁)으로 믿고 청군이 쉽게 건너오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에 대비에 소홀하였다.
청군이 침입한다는 보고를 받고 서둘러 방어 계획을 세웠으나 군사가 부족하여 해변의 방어를 포기하였다.
이어 강화성 안으로 들어와 성을 지키려 했으나 백성들이 흩어져 성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자
김경징은 나룻배로 피신하고 강화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빈궁 이하 대신 등이 청군에 잡혀 남한산성으로 호송되고,
전 우의정 선원 문충공 김상용(仙源 文忠公 金尙容)과
전 판서 동천 이상길(東川 李尙吉) 등은 강화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에 불을 붙여 순국하였으며,
한성부판윤 순흥군 김경징 順興君 金慶徵의
서조모 평산신씨(平山申氏)(할아버지 장목공 김여물金汝岉 배위)
어머니 진주유씨, (아버지 문충공 북저 김류金瑬 배위)
처 고령박씨, (김경징金慶徵배위)
며느리 진주정씨(晋州鄭氏), (아들 형조참의 김진표金震標배위) 등 4대가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강화도 수비의 실책으로 삼사(三司)로부터 탄핵을 받자
임금은 원훈(元勳)의 외아들이라고 하여 특별히 용서하여 강계로 귀양보냈으나
삼사의 탄핵이 워낙 완강하자 소환되어 사사되였다.
여산군수 고분옹 김노득
여산군수 고분옹 김노득 孤憤翁 金魯得
본관은 순천(順天). 字는 사가(事可), 號는 고분옹(孤憤翁).
김노득은 1645년(인조23)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정창(金鼎昌)이며, 형조참의 김진표(金震標)에게 입양되었다.
안산 지역을 중심으로 문인 활동을 하였으며 여산군수를 역임하였다.
通訓大夫礪山郡守 兼全州鎭官兵馬同僉節制使 順天金公諱魯得之墓 配淑人林川趙氏合窆
통훈대부여산군수 겸전주진관병마동첨절제사 순천김공휘노득지묘 배숙인임천조씨합폄
//문충공 북저 김류 가계도//
고조할아버지 김약균(金若勻) 선공감정(繕工監正), 승평군
증조할아버지 김수렴(金粹濂) 무과(武科) 정주목사(牧使)
할아버지 김훈(金壎) 찰방(察訪)
할머니 신천강씨(信川康氏), 부사 강의(康顗)의 딸
아버지 장의공 피구자 김여물장군 壯毅公 披汨子 金汝岉
어머니 증정경부인 함양박씨(咸陽朴氏), 현감(縣監) 박수강(朴壽岡)의 딸
어머니 평산신씨, 삼도순변사 충장공 신립(申砬)의 누이동생
문충공 북저 김류文忠公 北渚 金瑬 영의정 인조반정주역 승평부원군 문충공
정경부인 진주유씨 좌찬성 유근(柳根)의 딸
아들 김경징金慶徵 한성부판윤 순흥군順興君 강도검찰사
정부인 고령박씨 박효성(朴孝誠)의 딸
손자 김진표金震標 형조참의 돈녕부도정 순녕군順寧君
정부인 진주정씨 정백창(鄭百昌)의 딸, 정부인 해평윤씨
증손자 김노득金魯得 고분옹(孤憤翁), 여산군수, 생부 김정창金鼎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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