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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삼학사 충렬공 추담 오달제 선생 묘(三學士 忠烈公 秋潭 吳達濟)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7. 2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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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사 충렬공 추담 오달제 (三學士 忠烈公 秋潭 吳達濟)

용인시 향토유적 제3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산 45-14번지 양촌마을

삼학사 충렬공 추담 오달제 (三學士 忠烈公 秋潭 吳達濟)

(1609,광해군1~1637,인조15)

본관은 해주(海州). 는 계휘(季輝), 는 추담(秋潭).

오경민(吳景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역을 지낸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세자익위사 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경기도 송탄의 이충부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627(인조5)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34(인조12) 26세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典籍), 병조좌랑(兵曹佐郞), 시강원사서(侍講院司書) 등을 거쳐

1635년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1636(인조14) 홍문관수찬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다.

이때 후금(後金)의 세력이 커지며 칭제건원하고 국호를 청으로 고쳐 조선을 무섭게 위협해왔다.

이에 화친을 위해 주화파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 등의 주장으로 사신을 교환하게 되자,

임금을 속이고 삼사(三司)의 공의(公議)를 위협하고 제지하여

임의로 사신을 보낸 최명길을 탄핵하는 소를 5차례에 걸쳐서 올렸다.

1636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과의 화의를 반대하는 척화파의 주요 인물로 활약하였다.

인조가 청군에 항복하자,

청나라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척화론자에게 돌려 이들을 찾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남원인 임계 윤집(林溪 尹集)과 더불어 자진해 척화론자로 나서 적진(敵陣)에 송치되었으나

적장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에 굽히지 않아 다시 심양(瀋陽)으로 이송되었으며,

적장 용골대(龍骨大)는 오달제의 뜻을 꺾기 위해,

처자를 거느리고 청나라에 와서 살라고 회유와 협박을 하였다.

그러나 오달제는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불의(不義)라고 하고,

저들의 말을 따르면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 하여 끝까지 항변하였다.

그곳에서도 갖은 협박과 유혹에 굴하지 않아

윤집(尹集)과 화포 홍익한(花浦 洪翼漢)과 함께 29세를 일기로 살해되었다.

이에 그들의 충절을 찬양하여 후세에 삼학사(三學士)라 불렀다.

 

그의 절개를 기리고저 고향에 정문(旌門)을 세웠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평택의 포충사(褒忠祠), 포의사우(褒義祠宇),

홍산(鴻山)의 창렬서원(彰烈書院), 영주의 장암서원(壯巖書院),

고령의 운천서원(雲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가 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묵매화(墨梅畫)에도 뛰어났는데,

설곡 어몽룡(雪谷 魚夢龍)

창강 조속(滄江 趙涑),

미수 허목(眉叟 許穆)의 화풍을 따르면서도

명나라의 묵매 화풍에 영향받아 구도가 조금은 번잡한 감을 준다.

그림은 묵매도(墨梅圖)2점이 전한다.

贈貞敬夫人高靈申氏之墓    贈貞敬夫人宜寧南氏之墓

증정경부인고령신씨지묘    증정경부인의령남씨지묘

 

추담 오달제 대낭장비(秋潭 吳達濟 帶囊藏碑)

 

瀋獄寄內南氏(심옥기내남씨) 심양의 옥중에서 아내 남씨에게 보내다

                                                                           충렬공 추담 오달제(忠烈公 秋潭 吳達濟)

琴瑟恩情重(금슬은정중) -부부의 은정이 무거운데

相逢未二朞(상봉미이기) -만난 지 두해도 못 되어

今成萬里別(금성만리별) - 지금은 만리를 헤어있으니

虛負百年期(허부백년기) - 백년 기약을 헛되이 저버리오

地闊書難寄(지활서난기) - 길이 멀어 글 전하기 어렵고

山長夢亦遲(산장몽역지) - 산 높으니 꿈길도 더디겠지요

吾生未可卜(오생미가복) - 내 목숨은 기약할 수 없으니

須護腹中兒(수호복중아) - 부디 뱃속 아이를 잘 보살펴주오.

有明朝鮮國吳忠烈公帶囊藏碑銘

유명조선국오충렬공대낭장비명

有明朝鮮國 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 兼經筵侍讀官春秋館記注官知製敎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

유명조선국 통훈대부행홍문관교리 겸경연시독관춘추관기주관지제교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

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諡忠烈公吳公帶囊藏碑銘幷序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시충렬공오공대낭장비명병서

 

後學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 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成均館事 永安府院君金祖淳謹撰

후학보국숭록대부영돈녕부사 겸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성균관사 영안부원군김조순근찬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 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李相璜謹書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좌의정 겸영경연사감춘추관사세자부이상황근서

大匡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金思穆謹篆

대광보국숭록대부영중추부사김사목근전

삼학사三學士

남양인 화포 홍익한(花浦 洪翼漢) 1586(선조19)~1637(인조15), 진사 홍이성(洪以成)

남원인 임계 윤집(林溪 尹集)          1606(선조36)~1637,                현감 윤형갑(尹衡甲)

해주인 추담 오달제(秋潭 吳達濟) 1609(광해군1)~1637,               목사 오윤해(吳允諧)

추담 오달제 대낭장비(秋潭 吳達濟 帶囊藏碑

추담 오달제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의 이름을 대낭장비(帶囊藏碑)라 하며

1824(순조 24) 손자인 오경원(吳慶元)이 세운 것이다. 용인시 향토유적 3호이다

추담 오달제(秋潭 吳達濟)는 중국 심양 땅에서 처형당한 뒤 시신조차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묘소에는 그가 평소 차고 있던 요대와 주머니만 묻혀 있다.

추담의 묘소 입구에 있는 대낭장비(帶囊藏碑)는

1828(순조28)에 오달제의 손자인 오경원(吳慶元)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비문에

1824년 순조 24년에

손자인 수양일민 오경원(首陽逸民 吳慶元)이 풍고 김조순(楓皐 金祖淳)에게 청하기를

화포 홍익한(花浦 洪翼漢),

임계 윤집(林溪 尹集) 두 학사는 이미 그들의 의관(衣冠)을 가지고 예장하였는데,

할아버지인 추담 오달제(秋潭 吳達濟)만은

계비(繼配)인 남씨부인이 항상 오달제의 띠와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서,

"혼을 불러 장례지내는 일은 옳지 못하다"

반대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기록되 있다.

남씨부인이 죽고 난 뒤에야 예장을 결정하고 비로소 이 비석을 세우게 된 것으로서,

비문은 풍고 김조순(楓皐 金祖淳)이 짓고,

전액(篆額)은 운소 김사목(雲巢 金思穆)이 쓰고, 비문의 글씨는 동어 이상황(桐漁 李相璜)이 썼다.

후면에 숭정기원후 사무자 입(崇禎紀元後 四戊子 立)이라는 음각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1828(순조 28)임을 알 수 있다.

// 해주오씨 증 영의정 충렬공 추담 오달제(忠烈公 秋潭 吳達濟) 가계 //

고조부 오옥정(吳玉貞) 사섬시주부

증조부 오경민(吳景閔) 장성현감 사헌부감찰 증 의정부좌찬성

   조부 오희인(吳希仁)---오윤해(吳允諧)---오달제(吳達濟)

아버지 만운 오윤해(晩雲 吳允諧,1562명종17~) 여주목사 생부 오희문(吳希文)

어머니 전주최씨, 세자익위사 세마 최형록(崔亨綠)의 따님

         중형 오달진

         충렬공 추담 오달제(忠烈公 秋潭 吳達濟) 증 영의정

         전배(前配) 고령신씨(高靈申氏)

         계배(繼配) 의령남씨(宜寧南氏) 남식의 따님, 또는 남일성의 따님

                  자 오도현(오도현), 生父 오달진

                           손자 수양일민 오경원(首陽逸民 吳慶元) 연일현감,해주판관금산군수

생조부 오희문(吳希文) 선공감역 증 의정부영의정

        백부 추탄 오윤겸(忠簡公 楸灘 吳允謙) 영의정

                 장남 오달천(吳達天) 군수

                 차남 오달주(吳達周)

                 삼남 오달조(吳達朝) 증 승정원좌승지

         만운 오윤해(晩雲 吳允諧,1562명종17~) 여주목사 백부 오희인(吳希仁)

         숙부 월곡 오윤함(月谷 吳允諴)

                   장남 오달정吳達政 증 좌승지

                   차남 오달행 吳達行 호 한운閑雲

                   오남 오달권(吳達權) 증 호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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