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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충주최씨 영모사, 대당은청광록대부 최승(崔陞), 추원교(追遠橋)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10. 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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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최씨 영모사(忠州崔氏 永慕祠)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9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내동1길 26-11, (대전리 448)

 

충주최씨(忠州 崔氏) 시조  최승(崔陞)은 846년(신라 문성왕 8) 병마사(兵馬使)가 되어 도적을 토평하였고,

889년(진성여왕3) 원종(元宗)·애노(哀奴)의 반란을 평정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상계(上系)가 실전되어 호장(戶長) 최공의(崔公義)를 1세로 한다.

최공의의 증손자 최우청(崔遇淸)이 충주의 향리로서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명종 때 수사공(守司空)·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이르렀다.

추원교(追遠橋)

농사용으로 만들어진

영모사 위쪽의 품골소류지에서 흘러내리는 자그마한 개울을 건너는곳에 설치되어있는 추원교(追遠橋)이다.

'추원(追遠)'은 먼(遠) 조상(祖上)의 덕을 추모(追慕)하여 그 공양(供養)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 하며, 

추원교를 건너면 영모사 바로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충주최씨 영모사(忠州崔氏 永慕祠) 경내에 있는 충주최씨 시조의 묘라고 한다.

 

大唐銀靑光祿大夫 崔公諱陞 神道碑

대당은청광록대부 최공휘승 신도비

 

대당은청광록대부 최승(大唐銀靑光祿大夫 崔陞)

본관 충주(忠州). 충주최씨의 시조이다.

최승(崔陞)은 당나라 출신으로 당나라 무종(무종,재위840~846)때 큰 흉년이 들어 도적이 들끓자

병마사에 임명되어 도적을 토벌한 청하최씨 최승(淸河崔氏 崔陞)으로 그의 초명이 최우(崔偶)라 한다.

중국 기록에는 최승은 최현위(崔玄暐,638~706)의 동생으로

최우(崔偶)와는 같은 세대의 사람이 아닌 것으로 나오며 한국 기록과는 100여년의 차이가 있다.

 

최승(崔陞)은 889년(진성여왕 3) 통일신라시대 상주 지방에서 원종(元宗)과 애노(哀奴)가 난을 일으키자

당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신라에 와서 난을 평정하고 은청광록대부에 올랐다.

이후 신라로 귀화해서 충주에 정착하여 충주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1922년 충주최씨 후손들에 의해 충주시 동량면 대전리 내동에 건립된

충주 영모사(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9호)에 배향되었다.

1981년 충주 영모사 앞에 최승 신도비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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