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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도산서당(道山書堂),회천정사(晦泉精舍),만수당(晩睡堂),수정(水亭)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11. 2.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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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道山書堂)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2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4, (도산리 136)

 

               

進士金公 行誼碑 譯文

진사김공 행의비 역문

 

進士安東金公 行誼碑

진사안동김공행의비

 

 

김양대(金養大,1802~1878), 본관은 안동김씨로 字 중학(仲學),

성균진사로 용양위부호군를 지냈다.

상락군개국공 충렬공 김방경(上洛郡開國公 諡烈公 金方慶)의 후예로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의 주역 익원공 낙포 김사형(翼元公 洛圃 金士衡)의 20대손이다.

 

幸州人 松沙 奇宇萬 謹撰 행주인 송사 기우만 근찬

珍原人 綠洋 朴景來 謹書 진원인 녹양 박경래 근서

東萊人 鄭淵淑 書 前面大字 동래 정연숙 서 전면대자

 

普亭金正會先生景慕碑

보정김정회선생경모비

 

도산서당(道山書堂)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2호

도산서당은 인근 학동들을 위한 강당으로 쓰였으며,

도산초등학교 개교 때 교사를 구하기 전까지 1학기 동안 수업을 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도산서당은 당대 명사들의 교우의 장이었다.

따라서 교우 관계를 보여주는 많은 시문과

의병장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1846~1916)이 쓴

「만수당기(晩睡堂記)」가 만수당 안에 걸려 있다.

도산서당 앞에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고, 서당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도산서당은 외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만수당(晩睡堂) 외에 회천정사, 정자, 연못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도산서당(道山書堂)은  진사 오도항(吳道恒)이

17세기 후반인 영조때 건립하여 자신의 자제와 인근 아이들을 교육하던 곳이었으며,

오도항의 사위 정택신(鄭宅臣)이 물려받아 집과 함께 관리하였으나

1862년에 안동인 만수 김영철(晩睡 金榮喆,1842~1911)이 매입하였다.

김영철이 옛 서당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를 원하자

김영철의 장손인 회천 김재종(晦泉 金在鍾,1880~1938)이

작은아버지 항재 김순묵(恒齋 金純默,1866~1936)의 조언을 받아

1907년에 새롭게 강당을 건립하였고,

만수 김영철(晩睡 金榮喆)의 호를 따라서 ‘만수당(晩睡堂)’이라 편액하였다.

 

 

도산서당의 동쪽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회천정사(晦泉精舍)가 배치되어 있고,

후면에는 연지(蓮池)를 파고 후원을 꾸몄으며,

연지 옆에는 작은 정자인 수정(水亭)이 세워져 있으며,

수정의 편액은 보정(普亭)이 직접 쓰고 편액하였다고 한다.

만수당(晩睡堂) 편액은 1884년에 전라감사에 재임하던

신안동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1835~1919) 필체이며,

만수당기(晩睡堂記)는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1798~1879) 찬하고,

그의 손자인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1846~1916)썼다.

또한 만수당 후기는 후석 오준선(後石 吳駿善,1851~1931)이 짓고 썼다.

회천정사(晦泉精舍) 편액은 보정(普亭)이 아버지 회천(晦泉)을 위하여 쓰고

회천정사기(晦泉精舍記)는 노탄 송규헌(老灘 宋奎憲,1870~1938)이

1938년 戊寅年 가을 찬하고 쓰다.

 

만수당(晩睡堂)은 고창군 향토문화유산인 도산서당(道山書堂) 내에 있으며

진사 오도항(吳道恒)이 17세기 후반인 영조 때 건립하여

자신의 자제와 인근 아이들을 교육하던 곳이었으며,

1916년 후반 진사 오도항의 사위 정택신(鄭宅臣)이 물려받아 집과 함께 관리하였으나

1862년에 안동인 만수 김영철(晩睡 金榮喆,1842~1911)이 매입한 후

옛 서당을 헐고 새 건물을 짓기를 원하자

김영철의 장손인 회천 김재종(晦泉 金在鍾,1880~1938)이

숙부인 항재 김순묵(恒齋 金純默,1866~1936)의 조언을 받아 1907년에 새롭게 강당을 건립하였고,

만수 김영철(晩睡 金榮喆)의 호를 따라서 ‘만수당(晩睡堂)’이라 편액하였으며,

의병장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1846~1916)이 쓴 만수당기(晩睡堂記)가 만수당 안에 걸려 있다.

만수당(晩睡堂)의 편액은 1884년에 전라감사에 재임하던

신안동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1835~1919)의 필체이다.

 

晩睡堂記      松沙 奇宇萬 謹書

만수당기      송사 기우만 근서

 

晩睡堂 後記      錦城人 後石 吳駿善 謹書

만수당 후기      금성인 후석 오준선 근서

 

회천정사(晦泉精舍)

 

수정(水亭)

 

//안동김씨 익원공파 부령공종중 만수 김영철(晩睡 金榮喆) 가계//

증조부 수온 김규서(壽昷 金奎瑞,1751~1838)

   조부 덕전 김진기(德田 金振基,1776~1833)

   부친 용양위부호군 김양대(金養大,1802~1878)

           만수 김영철(晩睡 金榮喆,1842~1911)

               자 미제 김학묵(薇齊 金學默,1860~1917)

                   손자 회천 김재종(晦泉 金在鍾,1880~1938)

                         증손자 보정 김정회(普亭 金正會,1903~1970)

                               현손 경암 김병수(敬庵 金丙洙,1920~1991)

                                      5대손 연정 김경식(淵亭 金璟植,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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