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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대제학 도운 이진망(陶雲 李眞望)묘, 대제학 관양 이광덕(冠陽 李匡德)묘, 전주이씨 백헌공파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2. 1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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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 도운 이진망(陶雲 李眞望)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산40-1

 

贈崇政大夫行禮曹判書 兩館大提學 李公眞望之墓 配貞敬夫人潘南朴氏祔左

증숭정대부행예조판서 양관대제학 이공진망지묘 배정경부인반남박씨부좌

 

대제학 도운 이진망(陶雲 李眞望)

1672년(현종13)~1737년(영조13)

본관은 전주(全州). 字는 구숙(久叔), 號는 도운(陶雲) 또는 퇴운(退雲).

영의정 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철영(李哲英)이고,

아버지는 형조정랑 이우성(李羽成)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동래정씨로 정이화(鄭以和)의 따님이다.

 

1696년(숙종22)에 생원이 되고,

1711년(숙종37) 40세에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지평과 정언을 거쳐

1714년(숙종40) 43세에 충청우도 암행어사를 마치고

1725년(영조1) 대사성으로 소론(少論)인 운곡 이광좌(雲谷 李光佐)의 신원을 상소하였다.

1730년(영조6) 59세에 형조판서가 되고,

1732년에는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예조판서가 되어 대제학을 겸하였다.

1735년에 좌참찬으로 빈객(賓客)을 겸하였으며,

1737년(영조13) 66세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졸 하였다.

영조의 잠저(潛邸: 즉위하기 전의 그 임금이 살던 집) 때에 사부(師傅)였으므로 국왕이 예우를 하였다.

저서로는『도운유집』이 있다.

 

 

     雪裏獨酌

     설리독작(눈내려 혼술하며)

坐對紛紛雪

좌대분분설     펄펄 내리는 눈을 보니

那能不飮酒

나능불음주     어찌 술 생각이 나지 않으랴

三杯猶未足

삼배유미족     석 잔 술로는 채워지지 않아

行且到盈斗

행차도영두     마시다보니 한 말이라네

도운 이진망 묘역 후경

 

 

 

 

대제학 관양 이광덕(冠陽 李匡德)

 

嘉善大夫禮曹參判 兩館大提學 李公匡德之墓 配貞夫人豊壤趙氏 配貞夫人光州鄭氏祔左

가선대부예조참판 양관대제학 이공광덕지묘 배정부인풍양조씨 배정부인광주정씨부좌

 

대제학 관양 이광덕(冠陽 李匡德)

1690년(숙종16)~1748년(영조24)

본관은 전주(全州). 字는 성뢰(聖賴, 聖賚), 號는 관양(冠陽).

이경석(李景奭)의 현손이고,

아버지는 대제학 도운 이진망(陶雲 李眞望)이다.

어머니는 탕평론을 최초로 주창했던 문순공 현석 박세채(文純公 玄石 朴世采)의 손녀 반남박씨이다.

진사로서 1722년(경종2) 33세에 정시 문과 을과로 급제,

이듬 해 시강원설서로 임명되어 왕세제(王世弟: 뒤의 영조)를 보도(輔導)하였다.

소론 중 완소계열(緩少系列)의 일원으로서

장밀원 송인명(藏密軒 宋寅明), 학암 조문명(鶴巖 趙文命), 정석삼(鄭錫三) 등과 함께 탕평론을 주장하여,

경종연간의 노론 소론의 분쟁 와중에

소헌 조태구(素軒 趙泰耉), 만암 유봉휘(晩菴 柳鳳輝), 아계 김일경(丫溪 金一鏡) 등

급소계열(急少系列)로부터 특히 심한 배척을 받았다.

 

1724년 정언과 부교리를 거쳐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단암 민진원(丹巖 閔鎭遠)을 구하려다가 사간원의 탄핵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수찬과 교리를 거쳐,

1727년(영조3) 38세에 호남에 기근이 심해 별견어사(別遣御史)로 파견되었고, 이후 이조좌랑을 지냈다.

 

이 때, 전에 태록당 조태억(胎祿堂 趙泰億)의 아들 조지빈(趙趾彬)이

이조참의에 오르려는 것을 제어해 조태억으로부터 미움을 받던 중,

홍문관 관원의 천거 시비를 계기로

다시 조태억·조지빈과 심하게 다투다가 대사간 조지빈과 함께 파직되었다.

 

1728년 1월 호남의 감진어사(監賑御史)로 파견되었다가,

그 해 3월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일당인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이 전라도 태인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파직된 전라도관찰사 정사효(鄭思孝) 대신 전라감사로 부임해 반란군을 토벌하였다.

감사로 부임한 뒤 지방재정·부세제도(賦稅制度) 등에 일대 개혁을 일으켜 크게 원성을 들었다.

1729년 홍문관부수찬 이양신(李亮臣)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계기로,

소론을 몰아내기 위해 운곡 이광좌(雲谷 李光佐)를 탄핵할 때에 관양 이광덕(冠陽 李匡德)도 연류시켜

호남어사로서 역모를 미리 알았으면서도 묵인했다는 혐의를 씌워 무고했으나 무사하였다.

 

같은 해에 내수사(內需司)에서 전주부 건지산(乾止山) 아래의 전답을

옹주방전(翁主房田)으로 인수하려는 것을 거부하고 소를 올렸는데,

상소문에 불경스러운 말들이 있어 추고(推考: 심문을)당하고 이 때부터 영조의 미움을 받았다.

 

이듬해 중앙에 올라와 이조참의를 지내던 중 전라감사 시절의 사소한 잘못으로 파직되었고,

1731년 승지를 거쳐 다시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호남어사로 임명되었음에도 병을 핑계로 부임하지 않아 파직되었다.

1732년 다시 호남의 감진어사로 파견되었다.

1733년 강화유수로 임명되었으나 끝내 부임하지 않아 갑산부사로 좌천되었다가,

대신들이 너무 심하다고 주청해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

 

그 뒤 예문관제학·대사헌을 거쳐

1739년 동지 겸 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대제학·예조참판을 지냈다.

1741년 이른바 위시사건(僞詩事件)이 일어났을 때

아우인 지평 이광의(李匡誼)가 묵헌 김복택(默軒 金福澤)을 논죄하다가 국문을 받자,

이광의를 구하려고 변론해 정주에 유배된 뒤 다시 친국을 받고 해남에 이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과천에 은거하던 중,

1744년(영조20) 55세에 서용(敍用)하도록 명이 내려

한성부우윤,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을 사양하였다.

만년에는 급소계열로 노선을 바꾸었으나 쓰이지 못한 채

1748년(영조24) 59세에 졸 하였다. 저서로는 『관양집冠陽集』이 있다

 

//전주이씨 대제학 도운 이진망(陶雲 李眞望)가계//

  10대조 조선2대 정종 이방과(定宗 李芳果,1357~1419)

    9대조 덕천군 적덕공 이후생(德泉君 積德公 李厚生,1397~1465)

    8대조 신종군 공간공 이효백(新宗君 恭簡公 李孝伯,1433~1487)

    7대조 완성군 이귀정(莞城君 李貴丁,1454~1527)

    6대조 함풍군 이계수(咸豐君 李繼壽,1477~1558)

    5대조 이수광(李秀光), 충의위, 증 의정부좌찬성

   고조부 우곡 이유간(愚谷 李惟侃) 동지중추부사, 증 영의정

   증조부 문충공 백헌 이경석(文忠公 白軒 李景奭) 영의정

   증조모 정경부인 전주류씨, 관찰사 증 영의정 류색(柳穡)의 따님

할아버지 평시서령 괴원 이철영(槐園 李哲英)

   할머니 증 숙부인 보성오씨

   할머니 증 정부인 기계유씨

      숙부 이하성(李厦成), 신천군수(信川郡守)

   아버지 이우성(李羽成) 진사장원, 형조정랑, 증 이조판서

   어머니 정부인 동래정씨, 정이화(鄭以和)의 따님,  대사헌 추천 정광경(秋川 鄭廣敬)의 손녀,

            형님 강서현령 이진양(李眞養)

                      조카 이광일(李匡一)종사랑

                      조카 이광원(李匡元) 의금부도사

                      조카 이광운(李匡運)

                      조카 이광회(李匡會) 생원장원 부사

             대제학 도운 이진망(陶雲 李眞望)

             배위 정경부인 반남박씨, 좌수영판관 박태여(朴泰輿)의 따님

                    장남 대제학 관양 이광덕(冠陽 李匡德)

                    배위 증 정부인 풍양조씨, 대사간 조경명(趙景命)의 따님

                    배위 정부인 광주정씨, 정오규(鄭五奎)의 따님

                              손자 군수, 증 이조참판 이국형(李國亨)

                                        증손자 통정대부 청송부사 이면제(李勉齊)

                              손자 사도시주부 목이 이만형(木而 李晩亨)

                                        증손자 백심 이면정(伯心 李勉精)

                    차남 이광의(李匡誼) 진사장원

                    삼남 이광문(李匡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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