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
사적 제114호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충무사길 86-31, (고금면 덕동리 산58)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선조 31년(1598)에 이순신이 약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고,
그 해 7월에 명나라 장수 진린이 약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 있던 이곳 묘당도에 진을 치면서 두 나라의 군사가 힘을 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7개월간 이곳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군 본부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충무사가 있고,
보호하는 절의 의미를 띤 옥천사가 나란히 있었다.
충무사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운장을 제사지내어
1598년 명나라 수군이 고금도에 주둔하고 있을 때 진린 도독이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했다.
진린의 꿈에 나타난 관운장(關運將)을 제향하여 휘하 장병들의 안녕과 승전을 기원하기 위해 관왕묘를 세웠다.
장병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관왕묘에서 유래한다.
옥천사는 현종 7년(1666)에 처음 지어졌는데,
관왕묘를 보수공사하면서 그 옆에 수호와 제사를 맡게 하기 위해 암자 하나를 지었다고 한다.
묘당도 충무사
관찰사 이규현영세불망비
충무공의 보좌관인 조방장이며 당시 가리포 첨사 이영남(李英男)을 모신 동무(東廡)
忠武公 李舜臣충무공 이순신(1545~1598)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楓巖公)은
중종 17년(1522년)에 생원 2등에 합격하였고 참봉을 거쳐 평시서봉사를 역임하였다.
조광조(趙光祖)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사약을 받아 죽고 주위 인물들도 참형을 당한 뒤 벼슬을 내놓고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용인 심곡리에서 멀지 않은 고기리에서 은거를 하다가 사망했으며,
이로 인해 아들(즉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李貞)은 벼슬을 단념한 채 43세쯤에
외가이자 처가에 가까운 충청도 아산 음봉으로 이사하였다.
훗날 상주방씨(온양방씨)와 혼인한
이순신이 정착한 곳이기도 한 현충사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고 덕수이씨 집안의 구전은 전한다.
어머니 변씨(卞氏)의 문기(文記, 땅이나 집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에는
이순신이 형인 이요신(李堯臣)과 함께 어머니로 부터 외거노비 6~8명을 증여 받았으며,
충청도 은진(恩津)(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지방에 있는 가옥과 토지도 물려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 22년에 아내 상주방씨(온양방씨)가 4형제에게 준 분재기 기록도 남아있다.
현충사 경내에 있는 고택 역시 이순신이 자신의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알려졌다.
충무공 가계
이순신은 한성을 떠나 외가와 처가(온양 방씨)가 있는 충청도 아산으로 이주했다.
조선 중기까지도 남귀녀가혼(男歸女家婚)의 영향으로
남자가 결혼한 뒤 처가에서 상당 기간 거주하는 풍습은 부인과 처가의 위상을 높였다.
이순신의 처가는 상주 방씨(온양 방씨)이다. 장인은 보성군수를 역임한 방진(方震)이다.
방진(方震)의 할아버지는 평창군수를 지낸 방홍(方弘)이고, 아버지는 영동현감을 지낸 방중규(方中規)이다.
당시 병조판서였던 이준경(1499년~1572년)이 중매를 섰다.
1565년(명종 20) 이순신은 21세의 나이에 방씨에게 청혼하고 결혼하였다.
이순신은 장인의 격려와 경제적 후원으로 무과 시험을 준비하게 되며,
그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배우면서 병학을 익혀 11년만인 1576년 2월에 치러진 무과 시험에서 병과로 급제했다.
《충무공이순신전서》의 ‘방부인전’에 방진의 활솜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방씨 부인은 슬기롭기로 유명하였고, 친정 집에 들어온 도둑들을 지혜를 이용해 물리치기도 했다.
이순신의 무술 연습을 위해 자신의 패물로 말을 사게 할 만큼 내조도 잘했다.
이순신은 방씨와의 사이에서
이회(李薈, 1567년생), 이울(李蔚,1571년생), 이면(李葂,1577년생)의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은 아들들을 통해 충청도 아산 본가에 있던 방씨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다녀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방씨가 병에 걸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잠을 설치며 걱정했을 뿐더러 점까지 치며 방씨 부인을 염려하는 내용이 일기에 적혀 있다.
1598년 (선조 31)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에게 우의정이 증직된 후 그 처인 방씨를 정경부인으로 봉하면서 내린
이순신처 방씨 고신교지(李舜臣妻方氏告身教旨)는 보물 제1564-8호이다.
정경부인은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라
정·종 1품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명호(名號)로 외명부 부인으로서는 최상급의 품계이다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1545∼1598)가계//
증조부 이거(李琚), 생원 합격, 문과 급제
조부 이백록(李百祿), 생원 합격, 선교랑
부친 증 좌의정 덕연부원군(德淵府院君) 이정(李貞, 1511~1583)
모친 증 정경부인 초계변씨(1515~1597) - 변수림(卞守琳)의 따님
형님 이희신(李羲臣), 증 참판
조카 찰방 이뇌(李蕾)
조카 병조좌랑 이분(李芬) 문과
조카 효릉참봉 이번(李蕃),
조카 증 병조판서 강민공 이완(剛愍公 李莞), 무과
형님 생원 이요신(李堯臣) (퇴계 이황 문인)
조카 평안도 병마절도사 이봉(李菶), 무과
조카 훈련원주부 이해(李荄), 무과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1545∼1598)
배위 정경부인 상주방씨(尙州 方氏; 온양방씨), 보성군수 증 통훈대부 방진(方震)의 따님
장남 훈련원 첨정, 증 승정원 좌승지 이회(李薈),
차남 형조 정랑, 증 승정원 좌승지 이울(李蔚),
삼남 증 이조 참의 이면(李葂),
장녀 홍비(洪棐) - 청난공신 홍가신(洪可臣)의 아들
후배 해주오씨(海州 吳氏)
사남 이훈(李薰), 무과
오남 이신(李藎),
차녀 사위 임진(任振)
삼녀 사위 윤효전(尹孝全)
동생 참봉 이우신(李禹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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