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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가락국(駕洛國) 제10대 임금 양왕(讓王),구형왕릉(仇衡王陵)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5. 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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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왕릉(仇衡王陵)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16-1

산청 왕산 구형왕릉(王山 仇衡王陵)은 가락국(駕洛國) 제 10대 임금인 양왕(讓王)의 능이다.

국내 유일의 피라밋형 석릉(石陵)으로

일반 봉토 무덤과는 달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산기슭 경사면에 크고 작은 암석을 쌓아,

총 7단의 층을 이루며 정상부는 타원형이며,

정면 중앙에서부터 높이 1m 내외의 담이 둘러져 왕릉을 보호하고 있다.

산청 왕산(山淸 王山)과 산청 방장산(方丈山, 智異山) 중에서

왕산(王山)은 장대한 지리산맥의 동북쪽 끝으로

가락국시조대왕김수로(駕洛國始祖大王金首露)의 태왕궁지(太王宮址)이다.

서기 162년 김수로왕은 첫째 왕자인 거등(居登)에게 나라를 양위하고,

가락 지품천 방장산(方丈山) 자락에 별궁을 짓고 태후와 함께 이거하여

왕의 호를 보주황태왕(普州皇太王), 왕후를 보주황태후(普州皇太后),

궁은 태왕궁(太王宮)으로, 산은 태왕산(太王山)으로 명명하였다.

330여 년이 흐른 후, 서기 532년 가락국 마지막 10대 양왕(구형왕)은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긴 후 시조대왕의 태왕산으로 들어갔으니,

가락 지품천 태왕산은 구형왕(仇衡王)이 이거한 당시에도 수정같이 맑은 물이 샘솟고 있어서

궁궐의 이름을 '수정궁(水晶宮)'으로 편액하고 수년간 은거하다가 붕어하시니 존호를 '양(讓)'이라 하였다.

훗날, 흥무대왕 김유신 대장군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7년 동안  시릉(侍陵)을 하였으며,

활쏘기와 무예를 연마하여 삼국통일의 바탕을 이루는 호연지기의 기상을 닦았고,

왕의 5대 외손인 신라 제 30대 문무대왕(文武大王, 휘 법민,法敏)은

제향을 받드는 비용으로 왕산 일대 토지를 하사하였다.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

 

 

                                     구형왕릉 옆 실개천

 

 

호릉각(護陵閣)

왕릉의 아래쪽에는 왕산 기슭의 왕대암(王臺庵)에서

궤(櫃)에 담겨서 전해져 오던 이곳이

구형왕릉이라는 기록과 영정, 갑옷, 칼 등을 김해김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금관가야  제10대 구형왕(仇衡王) 양왕(讓王) 가계//

금관가야(金官伽倻, 1세기~532) 김수로왕

 

10대 구형왕(仇衡王) 양왕(讓王), 계화황후(桂花王后)

        셋째 아들 각간(角干) 김무력(金武力, 518~579)- 김유신 할아버지

                손자 삽량주도독 김서현(金舒玄)

                        증손자 추봉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 595~673)

                        증손녀 문명왕후 문희=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김춘추(604~661)

                                                      신라 제30대 문무대왕(文武大王) 김법민(金法敏, 62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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