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군수 한남 이복휴(漢南 李福休),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992
반월동 주민센터 후면 건건동 치미산(鴟尾山) 반달공원 내
강령군수 한남 이복휴(漢南 李福休),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1729,영조5~1800,정조24)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사엄(士儼), 호는 한남(漢南), 자호(自號)는 담촌(澹村)이다.
초명은 이조휴(李祖休), 또는 이심휴(李心休)라고 했으나
1770년 42세때에 이복휴(李福休)로 개명하였다.
이복휴는 관로에서 당상관의 지위에 오르지는 못하였으나
시와 산문을 수록한 한남집(漢南集) 20권과
3권으로 구성된 해동악부(海東樂府)등 적지 않은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
운문의 경우에는 3편의 부(賦)와 865제 900여수의 시,
그리고 71제 109수의 가사(歌詞)작품이 실려 있는 고악부소령(古樂府小令)과,
우리나라 역사사실만을 소재로 하여 악부체로 지은 연작 영사시 해동악부(海東樂府) 260수가 실려 있다.
贈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 行康翎郡守驪州李公福休之墓
贈淑夫人光州鄭氏祔左 贈淑夫人海州鄭氏祔右
증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 행강령군수여주이공복휴지묘
증숙부인광주정씨부좌 증숙부인해주정씨부우
이복휴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1752년(영조28) 24세에 진사가 되고,
1762년(영조38)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으며, 1763년 별검으로 임명됐다.
1773년(영조49) 45세에 강령현감에 재임 중 해이해진 아전들의 기강을 세우고,
나태한 백성들에게는 잡기(雜技)·낭비·부채를 일소하도록 독려하였다.
또한 보리농사와 통구(通溝) 설비를 장려하고, 어염의 생산을 배가시키는 데 힘썼다.
한편 고을 사람들과 논의해 사육신의 한 사람인
벽량 유응부(碧梁 兪應孚,1420~1456)의 사당을 중수하고 기문을 지었으며,
임금이 해주 동정(東亭)에 이성계(李成桂)의 전승 기념비각을 세울 때
황해감사 수은 이택진(睡隱 李宅鎭,1731~1787)의 부탁으로 해주동정비각기(海州東亭碑閣記)를 지었다.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의 필적(반월신문에서)
1779년(정조3) 금천군수로 부임한 뒤 관내에 창고를 설치하여
세곡 운반과 관리를 쉽게 하였고, 퇴락한 향교의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1780년 홍국영(洪國榮,1748~1781)과 과암 송덕상(果菴 宋德相, ?~1783)을
탄핵하는 소를 올렸으나 저지되자 금천군수를 마치고 향리인 안산(安山)으로 돌아와
가까운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 머물면서 10여 년 동안 산천을 유람하며
한남집(漢南集)을 1787년에 1차 완성하고‚ 이후 1~2년간 보충한 것으로 작품을 시대 순으로 배열했다.
이후 1790년(정조14) 62세에 별좌에 임명된 후 사헌부감찰에 그리고 병조정랑을,
1793년에는 예조정랑을 지냈으나 65세라는 나이에 비하면 한미하다고 하는 벼슬을 지냈으며
증직으로 첨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다.
저서 『한남집(漢南集)』은 20권 11책으로, 표제는 ‘담촌집(澹村集)’으로 되어 있다.
1,000여 편의 근체시와 300여 편의 악부시, 수백 편의 산문을 모은 것으로,
경전·예설·역사·경제·천문·지리·기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또한 상고시대부터 17세기까지의 우리 역사에서 고대의 건국 시조 및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시로 읊은 『해동악부(海東樂府)』를 완성하였다.
이복휴의 악부 문학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는데
「고악부(古樂府)」와 「해동악부(海東樂府)」가 그것이다.
후자에서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주목하였고,
전자에서는 비역사적인 부분 즉 당대 현실 속 인민들의 모습과 민중적인 정감이나
작자 주변에서 경험한 일상적인 것을 다루었다.
담촌집(澹村集)
기존의 알려진 가람본 『해동악부』(서울대학교 도서관본)는 3권 3책으로 총 편수가 254편이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해동악부』는 2권 2책으로,
권말에 붙여 놓은 목차는 261편으로 되어있다.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의 『해동악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악부시 가운데 최고․최대의 악부로 평가된다.
한남 이복휴(漢南 李福休),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 역사의식과 작품 세계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반월신문(http://www.banwol.net)
이복휴(李福休)의 [해동악부(海東樂府)]에 나타난
신라사(新羅史)와 관련된 몇 가지 견해들
- "사평(史評)"을 중심으로 - 김종진-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7.08
이복휴(1729~1800)는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관직 생활을 한 인물로 260수에 달하는 [해동악부]를 남기고 있다. 보통 영사악부류는 사실 서술을 위한 사화와 운문적인 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복휴의 [해동악부]의 특징은 사화와 본장에 사평이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복휴는 상고사의 신이한 일들을 황탄하다고 하면서도 [해동악부]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신이한 일들이 기록되어 전해지는 이유로 상고시대 인간의 의식 수준의 우매함 잘못 알고 잘못 전함, 신격화시키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신이하게 함, 역사가들이 참고 자료로 보유에 실어 전함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신이한 일이라도 그것이 죽은 사람의 영혼과 기의 작용에 의한 것일 경우, 이복휴는 이를 충분히 사실에 근거한 것일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충신과 의사의 정기는 강대하여 죽음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지상세계에서 못다한 일을 한다고 보았다. 불교와 여왕에 대한 이복휴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으로, 여기엔 유자로서 이복휴의 완고함이 내재되어 있다. 화랑에 대해서는 인재 등용의 방법이라는 좁은 범주 안에서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복휴는 백제의 멸망 원인으로 불교와 왕의 유락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 멸망의 공통되는 원인으로는 민심의 이반을 들고 있다. 반면에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게 된 요인으로는 임금에 대한 충성, 윗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침, 전공에 대한 아낌없는 포상, 이웃나라를 겸병하는 습속과 지리적 이점 등을 들고 있다. 이복휴의 나·당 연합에 대한 견해는 한결같이 "당나라가 신라의 꾀임에 속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살수탄」의 사평에서 이복휴는 중국이 역사상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다가 결과적으로 국력의 쇠퇴를 초래하거나 멸망한 경우를 열거하며 상고 시대 이래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넘보다가는 길한 일보다는 흉한 일이 많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해동악부] 전반에 깔려 있는 이복휴의 기본적인 의식은 유자로서의 완고함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국가의 흥망성쇠와 전쟁의 승패에 대한 이복휴의 잦은 언급을 통해 그의 반청 의식과 우국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이복휴를 통하여 18세기 후반 조선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한 문신 관료의 역사 및 현실인식에 대한 편린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강녕군수 한남 이복휴(漢南 李福休) 묘역후경
강녕군수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
고악부소령(古樂府小令), 해동악부(海東樂府), 담촌집(澹村集) 등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악부시 가운데 최고․최대의 악부로 평가되는 자료의 저자인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1729~1800)도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에 버금가는 인물일텐데
묘역이 안산시의 문화유적으로 선정되어 주변을 활성화시키면
치미산(鴟尾山) 반달공원에도 전국에서 많은 문인들 찿아오며
안산시 테마여행의 종착지가 될텐데...
안산시의 문화유적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의 조부 통덕랑 이의진(李義鎭)과 부친 통덕랑 이속(李涑)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의 조부 통덕랑 이의진(李義鎭)
通德郞驪州李公義鎭之墓 恭人全州李氏祔右
통덕랑여주이공의진지묘 공인전주이씨부우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의 부친 통덕랑 이속(李涑)
通德郞驪州李公涑之墓 恭人全州李氏祔右
통덕랑여주이공속지묘 공인전주이씨부우
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의 조부 통덕랑 이의진(李義鎭)과 부친 통덕랑 이속(李涑)의 묘역후경
//여주이씨 강녕군수 한남 이복휴(漢南 李福休) 가계//
9대조 병조판서 경헌공 구헌 이계손(敬憲公 龜軒 李繼孫)
8대조 감찰 이지임(李之任)
7대조 군자감주부 이희문(李希文)
6대조 사복시정 이만기(李萬枝)
5대조 단양군수 증 좌승지 이충길(李忠吉) - --4대손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
고조부 부총관 이상하(李尙夏)
증조부 증 지평 이지구(李志龜)
조부 통덕랑 이의진(李義鎭,1669~1711)
부친 통덕랑 이속(李涑,1694~?)
숙부 이호(李灝), 이옥(李沃)
강녕군수 한남 이복휴(漢南 李福休,1729~1800),담촌 이복휴(澹村 李福休)
장남 횡성판관 이현장(李炫章)
손자 통덕랑 이재형(李載衡), 이재항(李載恒)
증손자 이병호(李秉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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