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단(山川壇), 제주 산천단 곰솔 군 (제주시곰솔)
제주시 아라일동 375-4
제주 산천단 곰솔 군 (제주시곰솔)-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60호
산천단 주변의 곰솔군락으로
현재 500~600년으로 추정하는 곰솔 8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제주시곰솔
목사 이약동
牧使 李約東先生 漢拏山神壇 紀蹟碑
목사 이약동선생 한라산신단 기적비
제주목사 노촌 이약동(老村 李約東,1416~1493)
이약동(李約東)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민폐를 근절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경사(經史)에 통달하였고, 여러 지역에 목민관을 지냈으나 청렴함으로 일관하였다.
제주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과
이약동 선생의 후손들이 공동으로 이약동 선생의 선정과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비신(碑身)의 너비는 70.8㎝이고 두께는 41㎝이며 전체 높이는 180㎝이다.
비 앞쪽에는
“목사 이약동 선생 한라산신단 기적비(牧使李約東先生 漢拏山神壇紀蹟碑)”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이 산천단은 한라산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
조선 성종(成宗) 때 목사 이약동 선생이 단소를 배설하였던 유서 깊은 자리다.
명산대천에 제(祭)를 지냄은 예로부터 국태민안을 비는 중요한 나라 일의 하나로
한라산신제는 백록담에서 봉행되었는데 그때마다 적설과 한풍으로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새로 부임한 목사 이공은 인명의 희생까지 내면서
산 정상에서 지내던 산신제를 이곳에 제단을 마련하여 받들게 하고 비를 세웠다고 한다.
세월이 오래되매 신단과 비는 마멸되고 내력만이 구전으로 전해올 따름이다.
이에 신단을 복원하여 그 경위를 밝히는 한편.
목사 이공이 백성을 사랑하고 잘 다스린 자취와 내력을 기록하여 새기고자 한다.
이공의 본관은 벽진(碧珍)이고, 휘는 약동(約東),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이고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증조는 이희목(李希牧)이요. 조부는 이존실(李存實)이고
아버지는 남해현감을 지내고 대사간을 거쳐 천추사로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전라도관찰사와 지중추부사등을 역임한 증 호조판서 이덕손(李德孫)이다.
공은 1416년(태종16) 남해현감 이덕손의 아들로 태어나
1450년(문종원년) 35세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두루 관직을 거쳐
1470년(성종1년) 55세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좌임(左任)하는 삼 년 동안 선정을 베풀어 도민의 복리증진에 크게 힘썼으니
이 산신단의 설립도 그 한 예로 꼽힌다.
관리로서의 청렴은 조선조를 통하여 공으로 표상되는 바이니
제주를 떠날 때의
‘문루에 채찍을 걸고 바다에 갑주를 던진(문루괘편 해중투갑,門樓掛鞭 海中投甲)’
일화는 선정을 베푼 목사에게 주민들이 선물을 바쳐도 받지 않으니,
주민 중 한명이 직접 말채찍 하나를 만들어 전하였고
목사 이약동은 이마저도 받지 않을 수 없어 사용하였다.
이후 1473년 제주를 떠날 때
제주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모두 그대로 놓고 가며 채찍하나만 들고 나섰다가
“이것도 제주섬의 물건이다.”라고 말하곤
관청 망루에 걸어 놓고 제주를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제주 주민들에게 전해져 마침내 도민의 경앙(景仰)으로 생사당을 세워 기렸다고 한다.
더구나 대사간(大司諫)에 올라서도 제주를 사랑한 나머지
고마조달(故馬調達)의 적정과 수령의 민폐근절책(民弊根絶策)을 상주하여
백성의 괴로움을 덜어주었고 현명한 계책을 아뢰어 도민 교화에 이바지하였다.
공의 학문은 강호 김숙자(江湖 金叔滋,1389~1456)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고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
매계 조위(梅溪 曹偉,1454~1503)와 더불어 도의(道義)의 사귐을 맺었으니
덕업은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1337~1392)와
야은길재(冶隱 吉再,1353~1419)의 유맥(遺脈)를 잇고
행실과 문장은 유림의 영수로 나아가고 물러섬이 도리에 벗어남이 없었다.
수 78세에 별세하자 임금은 예조의 관리를 보내 제사하고
평정(平靖)의 시호를 내렸으며 중종 때 청백리에 올랐다.
해동추로(海東鄒魯)라 일컫는 공의 고향 금산(金山)에서는
그 학덕을 기려 청백서원(淸白書院)과 경렴서원(景濂書院)에 향사하였고
제주에서도 영혜사(永惠祠)에 배향되었다.
공이 간 지 496년이 지난 오늘 공의 남긴 덕을 길이 되새겨 삼가 이 비를 세운다.”
오른쪽에는
檀紀 四三二三年 十月 日 濟州大學校總長 文學博士 延州 玄平孝 謹撰
단기 사삼이삼년 시월 일 제주대학교총장 문학박사 연주 현평효 근찬
後學 安東 金膺顯 謹書
후학 안동 김응현 근서
漢拏山神祭壇復元 및 紀蹟碑建立推進委員會 謹竪
한라산신제단복원 및 기적비건립추진위원회 근수”
라 새겨져 있다.
=====================================================
한라산신제단(漢拏山神祭壇)
한라산신 제단(漢拏山神 祭壇)
한라산신제단은 산천단(山川壇), 효림단(孝林壇)으로도 불리기도 하였다.
예전 한라산 정상에서 제사를 지다가
그때마다 제물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얼어 죽는 일이 있었고,
날이 사나우면 올라갈 수 없는 날이 많아져서,
조선 성종(成宗) 원년(1470)에 노촌 이약동(老村 李約東,1416~1493) 목사가
소산봉(小山峯) 아래인 지금의 장소로 옮겨 제단을 설치하고
산신제를 지내게 하였던 장소로써 그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산천단 제사터(山川壇 祭祀터)
청신거사 조계성 영사비(靑信居士 趙桂成 永思碑)
신녀 고김징휴처 조신권 비(信女 故金徵休妻 趙申權 碑)
제주-오현단(五賢壇), 향현사(郷賢祠), 귤림서원(橘林書院), 장수당(藏修堂) (2) | 2025.05.14 |
---|---|
제주-제주성지(濟州城址) 옛 제주성터, 제이각(制夷閣),귤림추색(橘林秋色),귤림서원(橘林書院) (0) | 2025.05.11 |
용인-영도첨의사사 평강부원군 채하중(平康府院君 蔡河中), 채홍철(蔡洪哲)의 장남, 평강채씨, (1) | 2025.05.04 |
순천-판종부사사 문절공 노재 채하생(文節公 魯齋 蔡河生), 순천군 채홍철(順天君 蔡洪哲) (0) | 2025.05.03 |
순천-대제학 순천군 중암 채홍철(順天君 中菴 蔡洪哲),평장사 강재 채함(康齋 蔡諴) (2) | 2025.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