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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삼척도호부 객사, 진주관(眞珠觀), 응벽헌(凝碧軒), 삼척시립박물관

구름에 달

by 碧巖 2025. 10. 2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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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도호부 객사

강원도 삼척시 죽서루길 37(성내동8-2)

진주관(眞珠觀)

진주관(眞珠觀)은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삼척도호부 관아 안에 있는 객사의 중심 건물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계신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을 치르던 공간이다.

각 고을의 객사는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삼척도호부 관아의 객사가 진주관인 것은 삼척의 옛 이름이 진주(眞珠)였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객사를 뜻하는 객사 관(館)이 아님 볼 관(觀)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삼척도호부의 관아와 객사가 있는 장소가

오십천(五十川), 죽서루(竹西樓), 응벽담(凝碧潭) 등의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에 볼 관(觀)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삼척도호부 관아는 원래 죽서루 아래 있었으나,

1517년 중종 12년에 삼척부사 남순종(南順宗)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짓고 진주관이라 이름을 붙였으며,

        여러 차례 고치고 다시 지으며

1908년에는 삼척 군청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1911년 진주관에 있던 궐패(闕牌,조선시대 궁궐 상징의 패)와

        전패(殿牌,임금을 상징하는 패)를 강원도청으로 옮기게 되었다.

1934년 삼척도호부 객사의 목조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조적조(組積造,돌,벽돌,콘크리트블록)의 삼척군청 건물을 새롭게 지었다.

1982년 삼척군청이 다른곳으로 이전하여

2010년부터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관아지 발굴조사를 하여 객사인 진주관의 모습을 복원하였다.

응벽헌(凝碧軒)

응벽헌(凝碧軒)

응벽헌은 진주관 서쪽의 건물로,

1518년 중종13년에 삼척부사 남순종(南順宗)이 창건하였으며

1520년 중종 15년에 부사 낙봉 신광한(駱峰 申光漢,1484~1555)이

건물의 이름이 없기에 수헌(水軒)이라는 이름으로

사계절 풍광을 노래하는 사시사(四時詞)를 지었으며,

응벽헌이라는 이름은 1536년 중종 31년 강원도관찰사 송월당 윤풍형(松月堂 尹豊亨)이 제액하였다.

이후 1601년 선조34년 부사 신경희(申景禧, ?~1615)가 남쪽 처마를 고쳤고,

1620년 광해군 12년에 부사 이여검(李汝儉)이 건물을 고쳤으며,

1662년 현종3년에는 부사 미수 허목(眉수 許穆,1595~1682)이 제액하고,

1708년 숙종34년 부사 홍만기(洪萬紀,1650~1713)가 다시 건물을 고쳤다.

1737년 영조13년에는 부사 이보욱(李普昱,1688~1755)이 건물을 고쳤고,

1769년 영조45년에는 부사 풍서 이민보(豊墅 李敏輔,1720~1799)가 단청을 하였다고 한다.

1786년 정조10년에는 부사 서탁수(徐琢修,1735~1789)가 건물을 손질하였으며

1908년 순종2년 응벽헌(凝碧軒)을 헐게 되었다.

진주헌기(眞珠軒記)에는 부사 낙봉 신광한(駱峰 申光漢)이

강산의 아름다움은 더하거나 뺀 것이 없는데도 이 건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강산이 더 아름다워졌다.”

라고 할 만큼 응벽헌(凝碧軒)은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2010년부터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삼척도호부 전경 1915년 촬영

관동명습첩 (정선)

풍악장유첩 (강세황)

금강사군첩 (김홍도)

가장첩 (엄치욱)

금강산도권 중 죽서루도

관동십경첩 중 죽서루도

 

 

 

---삼척시립박물관에서---

실직군주 이사부

우산국 편입과 동해안 해상권 장악

 

척주동해비

이승휴와 제왕운기

준경묘, 영경묘 제례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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