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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육향산내 삼척영장 공덕비군(六香山內 三陟營將 功德碑群)

구름에 달

by 碧巖 2025. 10. 2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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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허목길 13-9  (정상동 82-1)

척주동해비각(陟州東海碑閣)

동해비각(東海碑閣)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전면에 ‘척주동해비각(陟州東海碑閣)’ 제액이, 

후면에는 ‘동해비각(東海碑閣)’이라고 쓴 제액(題額)이 있다.

 

척주동해비는 1661년 조선 현종 2년에 처음 세웠다.

당시 삼척은 파도로 인한 수해가 심하여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6~1682)이

1662년에 삼척부사로 부임해 있을 당시

조수(潮水)를 물리치기 위해 세웠다 해서 퇴조비(退潮碑)라고도 한다.

당시 강원도 삼척은 해파가 심하여 조수가 읍내까지 올라오고,

홍수 때는 오십천이 범람하여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은 신비한 뜻이 담긴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만리도(현재 삼척항 방파제 부근)에 척주동해비를 세우니 바다가 조용해졌다.

 

그 후 만리도가 풍랑으로 침몰하여 없어지면서 척주동해비 또한 파손되었다.

파도로 인한 풍랑으로 조수가 다시 일자

1790년(숙종35년)에 삼척부사 홍만기(洪萬紀,1650~1713)가 비를 새겨 놓은 것을

1791년 함양인 삼척부사 박내정(朴乃貞)이 현재의 정상동 육향산(六香山) 기슭에 세워 조수를 막았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전서체에서 동방 제일의 필치라 일컬어지는 허목의 기묘한 서체로도 유명하다.

허목이 쓴 ‘척주동해비’ 원고는 보물 제592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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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향산내 삼척영장 공덕비군(六香山內 三陟營將 功德碑群)

 

영장과 관찰사 선정비

조선시대 삼척포진의 역대 영장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지방 군대를 관할, 통솔하기 위하여 설치한 진영(鎭營)의

정3품 당상직 장관(將官)]들의 선정(善政)과 공덕(功德)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현재 5명의 삼척영장 선정비와

2명의 강원도관찰사 선정비 등 모두 7명의 비석이 보존되어 일렬로 세워져 있다.

영장 유완수(柳完秀)

영장 유공완수 영세불망비(營將 柳公完秀 永世不忘碑)

재임:1886~1887

 

영장 장계환(張啓煥)

영장 장공계환 영세불망비(營將 張公啓煥 永世不忘碑)

재임:1881년

 

여흥인 충문공 민영위(忠文公 閔泳緯,1818~1886)

관찰사 민상국영위 유혜불망비(觀察使 閔相國泳緯 遺惠不忘碑)

재임:1876~1877

 

 

남양인 홍재현(洪在鉉.1815~ ?)

관찰사 홍상국재현 유혜불망비(觀察使 洪相國在鉉 遺惠不忘碑)

재임:1877~1879

 

영장 이선재(李璿載)

영장 이공선재 영세불망비(營將 李公璿載 永世不忘碑)

재임:1890

 

영장 조존우(趙存禹)

영장 조공존우 청덕선정비(營將 趙公存禹 淸德善政碑)

 

영장 정하응(鄭夏應)

영장 정공하응 청덕선정비(營將 鄭公夏應 淸德善政碑)

재임:1841~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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