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462-22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
북학파 실학자의 한 사람이며,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하는 등
조선 후기 과학사상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본관은 남양.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홍지.
할아버지는 대사간 홍용조(洪龍祚)이며, 아버지는 목사 홍력(洪櫟)이다.
일찍이 당대의 석학이자 노론학파의 중심적 인물인
문경공 미호 김원행(文敬公 渼湖 金元行,1702~1772)에게서 주자학을 배웠다.
천문(天文), 역사(歷史), 과학에 뛰어난 이론을 전개한 선생은
‘지구자전설(地球自轉說)’과 「우주무한설(宇宙無限說)」 등을 주장하였으며,
혼천의(渾天儀)라는 천문시계(天文時計)를 제작하여
사설 천문관측소인 농수각을 세우고 연구에 몰두하였다.
1774년 영조 50년에 선공감역(繕工監役)이 되고
그 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영주군수(永州郡守) 등을 지내면서
철학과 역사 그리고 과학이 담긴
담헌기(湛軒記), 의산문답(醫山問答), 주해수용(籌解需用) 등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과학사상가
조선의 지성
조선 후기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
조선 후기 북학파 천문학자
1783년 10월 23일 53세로 잠들다.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하여 중앙정계에 진출하지 못한 가운데 박학다식한 학문적 소양을 쌓아나갔다.
1765년(영조 41)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는 숙부 홍억(洪檍)을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따라가
3개월 동안 베이징[北京]에 체류했다.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은
이때 중국인 학자 소음 육비(篠飮 陸飛,1719~ ?),
철교 엄성(鐵橋 嚴誠,1732~? ),
추루 반정균(秋廔 潘庭均, 1742~? ), 등과 친교를 맺고,
청나라 고증학과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사상체계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의 베이징행은 북학파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 당시 교우관계에 있던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1737~1805), 형암 이덕무(炯庵 李德懋,1741~1793),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1750~1805) 등에게 영향을 주어 북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베이징에서 돌아와 3년간 중병을 앓은 후,
1774년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이 되고 곧 세손익위사시직이 되었다.
1777년(정조 1)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며 1778년 태인현감, 1780년 영천군수(榮川郡守)가 되었다.
1783년 모친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온 후 곧바로 중풍에 걸려 졸하였다.
그의 실학적인 학문경향은 18세기 중엽 민중의 생활안정과 번영을 추상적인 도덕론보다
상공업의 발달과 기술혁신을 통해 이룩하자는 북학파의 효시를 이루었다.
혼천시계는 조선후기 북학파 천문학자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1731~1783년)과
호남의 과학자 석당 나경적(石塘 羅景績, 1690~1762년)이 1762년에 창제한 기계식 천문시계이다

당시 천문학·수학·의학 등 자연과학은 신분상 특수 계층이 담당하는 낮은 학문으로 취급되고 있었는데,
그는 과학기술을 '정신의 극치'라고 보아 중시했다.
자연과학 가운데서도 특히 천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베이징에 갔을 때도
흠천감의 할러슈타인과 고가이슬을 만나 많은 질문을 하고 천문시설 등을 자세히 관찰했다.
천문학과 관련된 그의 가장 대표적인 주장은 지전설이다.
그는 지구의 둘레는 9만리, 하루는 12시간이고 하루 동안 지구가 1번 돈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전설은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학설에서 시사받은 것이었다.
그가 베이징에 갔던 무렵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중국에 비교적 널리 소개되어 있었다.
당시 지구가 둥글다는 지구설(地球說)은 이미 우리나라에 들어와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1637~1693)과 성호 이익(星湖 李翼,1681~1763) 등이 언급했고,
지전설은 17세기인 조선후기 천문과학자 이민철(李敏哲,1631~1715)과
역학도해(易學圖解)를 저술한 김석문(金錫文,1658~1735) 등이 말했으나
그의 지전설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시사받으면서도 그것을 사고하고 체계화시키는데
동양적 논리를 전개했으며 또한 당시 중국의 서양선교사나 천문학자들에 의해
지전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지구의 자전만을 말한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도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다.
한편 그는 〈주해수용 籌解需用〉을 저술하여
일반 산술에서 대수학·기하학에 이르는 수학 전반을 정리했다.
또한 베이징에서 사귄 친구들이나
베이징에 왕래하는 사람들을 통해 과학관계 서적과 기구를 들여왔는데,
천주교 및 서양 과학의 총서인 〈천학초함 天學初函〉을 10년에 걸쳐 구입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집에 농수각(籠水閣)이라는 별실을 지어
혼천의와 서양에서 만든 자명종(自鳴鐘)을 두고 연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담헌서 湛軒書〉가 있다.


湛軒洪公大容之墓 淑人韓山李氏祔左
담헌홍공대용지묘 숙인한산이씨부좌

崇禎紀元後四丁巳孟春 大匡輔國崇祿大夫 判中樞府事 安東金興根 謹撰
숭정기원후사정사맹춘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안동김흥근 근찬
1857년 정사년 1월 안동인 김흥근 짓다.



//남양홍씨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가계//
6대조 충목공 청회 홍진도(忠穆公 聽檜 洪振道,1584~1649)
5대조 평시령 홍부(洪溥)
고조부 첨지중추부사 익성군 홍성원(益城君 洪聖元)
증조부 남계군 홍숙(南溪君 洪潚)
조부 충청감사 대사간 홍용조(洪龍祚)
부친 나주목사 홍력(洪櫟,1708~1767)
숙부 병조판서 홍억(洪憶)
모친 숙인 청풍김씨, 군수 김방(金枋)의 따님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
배위 숙인 한산이씨, 이홍중(李弘重)의 따님, 1남 3녀
자 홍원(洪薳)
녀 조우철(趙宇喆)
군수 민치겸(閔致謙)
유춘주(兪春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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