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안동-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權幸)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9. 2. 22:46

본문

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權幸)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산11

 

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權幸墓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권행묘

 

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權幸)

본관은 안동(安東).  안동권씨의 시조이다.

『고려사(高麗史)』 태조 세가에는 ‘행(行)’이라 하였으며,  본성은 김(金)이라고 한다.

 

930년(태조 13)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고창군(古昌郡: 경상북도 안동(安東)의 옛이름)을 포위하여 전세가 고려에게 매우 불리하였으나,

공은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같이

왕건(王建)을 도와 930년 초에 벌어진 병산전투에서 왕건의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하였다.

이 승리는 당시 고창지방 호족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협조를 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으로 태조는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하고, 대사(太師)라는 관직을 내려주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로 봉해진 기록도 보인다.

공의 묘소는 실전 되었다가

1470년경 대손 평창군사(平昌郡事) 권옹(權雍)에 의하여 지석이 발견되어 묘역을 정비하였다.

묘비의 후면 음기는 문충공 서애 유성룡이 찬 하였다.

1659년 25세손인 영천군수 호연 권성원(浩然 權聖遠)이 신도비의 수갈을 발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신도비문은 1661년 한성부 우윤 탄옹 권시(炭翁 權諰)가 찬 하였으며

외손인 익헌공 묵호 이경휘(翼憲公 默好 李慶徽)가 서 하였으며

전액은 ‘고려태사권공행신도비명(高麗太師權公幸神道碑銘)’ 이라

의정부 우의정 문정공 미수 허목(文正公 眉叟 許穆)이 썼으며,

음기는  高麗三韓璧上三重大匡亞父功臣太師權公神道碑銘)

         (고려삼한벽상삼중대광아보공신태사권공신도비명)이라고

         외손 예조참판 송곡 조복양(松谷 趙復陽)이 짓고

         외손 병조판서 귀계 김좌명(歸溪 金佐明)이 썼다.

안동권씨 시조 태사 권행(權幸) 묘역후경

 

권태사 신도비각(權太師 神道碑閣)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374

 

안동권씨능동재사

안동시 서후면 권태사길 87, (성곡리 393)

譜版閣보판각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