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온은 1418년 영의정에 오르고 부마도 됐지만 억울한 죽음으로 집안은 몰락하고 식구들은 관노가 되며
소현왕후도 죄인의 딸이니 내쳐야 한다고
유정현, 박은등이 주청했으나 모함이라는 걸 알고있는 세종도 개의치 않았으나
태종이 죽은후 4년이 지나도록 세종은 장모를 관노에서 풀어주지 않았으며,
자신의 부인인 소현왕후를 폐출하라고 했던 유정현, 박은, 조말생도 벌하지 않았으며,
소헌왕후가 둘째아들 세조의 집에서 졸한 후,
문종 임금때에 심온의 가족들이 복권되어
장손 심미(沈湄,큰아들 심준의 아들),
둘째 아들 심회(沈澮),
세째 아들 심결(沈決),
조카 강희안 등이 관직에 등용되었다.
심온 (세종의 국구이고,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의 아버지이며, 문종과 세조의 외조부이고, 태종 이방원과 사돈지간이며,
태조 이성계의 부마인 심종의 형임, {고려 말, 11세에 일찍, 진사가 되고, 문과에 급제,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조선 초, 태조 이성계 때, 병조 의랑<병조 정랑>, 정종 때, 대호군, 태종 이방원 때, 상호군을 거쳐, 우부대언<우부승지>으로 있었을 때인 1408년<태종 8년>에, 그의 딸이 충녕군<세종>의 부인이 되어, 경숙옹주<군부인>에 책봉되었고, 이후에, 좌부대언<좌부승지>을 거쳐, 풍해도 도관찰사<황해도 관찰사>로 있었을 때인 1412년<태종 12년>에는, 그의 사위 충녕군<세종>이 충녕대군<세종>으로 진봉되었다. 이후에, 참지의정부사, 경성 수보 도감 제조를 지내고, 1413년<태종 13년>에, 대사헌으로써, 태종에게 육조 직계제의 시행을 건의하였고, 이후에, 의흥삼군부 우군 총제, 의흥삼군부 좌군 총제, 노비 변정 도감 제조, 의금부 제조, 형조 판서, 호조 판서, 의흥삼군부 좌군 도총제, 의정부 참찬, 판한성부사, 진헌색 제조를 거쳐, 이조 판서로 있었을 때인 1417년<태종 17년>에, 앞서 충녕군<세종>이 충녕대군<세종>으로 진봉됨에 따라, 그의 딸도 삼한국대부인<부부인, 대군부인>으로 진봉되었다. 이후에, 공조 판서로 있었을 때인 1418년<태종 18년> 6월 5일에, 충녕대군<세종>이 형인 폐세자<양녕대군>를 대신하여, 새 왕세자<세종>에 책봉되자, 그의 딸도 경빈<왕세자빈>에 책봉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도 다시, 이조 판서가 되었다. 이후 의정부 참찬을 거쳐 의정부 찬성으로 있었을 때에 충녕대군<세종>이 왕세자<세종>가 된지 두 달만인 1418년<태종 18년> 8월 11일에, 태종 이방원의 양위로, 왕세자<세종>가 왕<세종>으로 즉위하자, 그의 딸도 세종의 왕비<공비, 소헌왕후, 조선 최초로 왕비에 책봉됨.>에 책봉되었고, 그는 세종의 국구가 되어, 청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영의정<영상, 수상>에 특별히 제수되었으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소헌왕후의 밀정인 강상궁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궂이, 조선 한양으로 귀국하는 도중, 상왕 태종 이방원의 외척 제거 정책에 의하여, 누명을 쓰고, `강상인의 옥' 사건의 수괴로 지목되어, 의주에서 피체되어,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어, 심한 심문을 받고, 수원으로 압송되어, 억울하게 사사되었다. 후에, 무고로 밝혀져, 외손자인 문종 때, 신원 복관작되었다.
시호는 안효이다.
유명조선국대광보국숭록대부영의정부사영 관사청천부원군 증시안효심공지묘
묘갈의 글은 안평대군 이용의 글씨로
세조가 왕위에 오른뒤 안평의 글씨는 모두 없애라고 했지만
안평의 얼마 남지 않은 글씨중 하나인 외조부의 묘갈은 남았으며
묘갈은 현재 수원광교박물관에 위탁되어 있고 묘소에는 탁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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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領議政 靑川府院君 安孝公 沈溫)가계도
부친 : 문하시중 영삼사사 문하부좌정승 청성백 심덕부(靑城伯 沈德符)
모친 : 변한국대부인 청주송씨(卞韓國大夫人 淸州宋氏, 청원군 송유충(淸原君 宋有忠)의 딸)
생모 : 인천 문씨(仁川 門氏) 감문위낭장 문필대(監門衛郞將 門必大)의 딸 ?~?)
형 : 좌군도총제 심인봉(左軍都摠制 沈仁鳳)
형 : 인수부윤 심징(仁壽府尹 沈澄)
동생 : 청원군 심종(靑原君 沈悰)
동생 : 중군동지총제 심정(中軍同知摠制 沈泟)
영의정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領議政 靑川府院君 安孝公 沈溫)
배위 :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三韓國大夫人 順興安氏, ?~1444)
(안성시 향토유적 제30호)소재지: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 산32-1
1자 영중추부사 심준(領中樞府事公 沈濬)------------------------심미沈湄, 심치沈淄
2자 첫째 사위 충녕대군 세종, 조선왕족 전주 이씨------------정소공주,문종,세조,안평대군,광평대군
3자 둘째 사위 지돈녕부사 강석덕, 진주 강씨------------------강희안, 강희맹
4자 셋째 사위 동지돈녕부사 노물재, 교하 노씨----------------노사신(盧思愼--노공필(盧公弼
5자 넷째 사위 부지돈녕부사 유자해, 진주 류씨----------------유양(柳壤)---유순정(柳順汀
6자 다섯째 사위 자헌대부 지중추원사 이숭지, 전의 이씨----------무후无后
7자 여섯째 사위 부지돈녕부사 박거소, 순천 박씨----------------박중선朴仲善 --
8자 의정부 영의정 청송부원군 공숙공 심회(靑松府院君 恭肅公 沈澮)----심인,심한,심원
9자 판중추부사 정이공 심결(判中樞府事 靖夷公 沈決)---------------------심정원
안효공 심온의 장남 영중추부사공 심준 묘소
6세 심준(沈濬) 字 深夫(심부)
세종의 처남,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의 동생, 문종과 세조의 외숙부, 세종의 국구 심온의 장남,
태조 이성계의 부마 심종의 조카, 심회와 심결의 형, 사헌부 감찰,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태종의 국구 여흥민씨 문하좌정승 여흥백 문도공 민제의 삼남 지돈녕부사 여원군 민무휼의 사위,
보국영중추원사(輔國領中樞院事)였다.
원종좌익공신(原從佐翼功臣)에 록선(錄選)되였음.
조선국영중추부사 청송심공준지묘 정경부인여흥민씨묘재상
정경부인 여흥민씨묘소
안효공 심온의 장손 동지중추부사공 심미 묘역
7세 심미(沈湄) 字 海源
세종의 외조카이고,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의 조카, 문종과 세조의 외사촌, 단종과 덕종, 예종의 외당숙,
문종 때, 심온이 신원복권되자, 심온의 장남이며 아버지인 심준은 이미 죽었으므로,
심온의 장손이자 심준의 장남으로서 전농 직장으로 처음 벼슬길에 나아갔다.
세조 때, 지통례문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 여주목사, 공조 참의를 지내고,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심준의 장남, 한성부판관 심치(沈淄)의 형)
정부인의령남씨부좌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심공미지묘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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