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沈溫심온 領議政 靑川府院君 安孝公 沈溫
6세 沈濬심준(영중추공) 沈澮심회 沈決심결(정이공)
7세 沈湄심미(동중추공) 沈淄심치, 沈洙심수, 沈湍심단
8세 沈汾심분(서산공),沈光宗심광종(창녕현감), 沈淇심기, 沈洧심유
8세 沈淇심기 龍潭縣令 贈通正大夫 承政院左承旨
9세 沈義儉심의검 儀賓經歷 贈 領議政 靑松府院君(生父 沈光宗 昌寧縣監)
10세 沈嶐심융, 沈嶪심업, 沈巖심암, 沈訔심은, 沈岱심대(충장공)
▲ 8세 龍潭縣令 贈通正大夫 承政院左承旨 龍潭公 沈淇심기 墓域
配 淑夫人 金堤趙氏금제조씨
配 淑夫人 安東權氏
▲ 13세 原州牧使公 沈瑞肩 墓域
父 監司公 沈演심연, 子 沈得元심득원
▲ 14세 處士公 諱 沈胤元심윤원 墓域
父 拙齋先生 沈瑞奎, 生父 原州牧使公 沈瑞肩, 子 沈壽根심수근.
▲ 15세 贈 司憲府持平 持平公 沈壽根 墓域
父 處士公 沈胤元윤원
▲ 9세 經歷公 沈義儉 墓域
沈義儉(심의검) 龍潭縣令 沈淇의 子
字 文仲(문중)
贈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經筵觀象監靑松府院君
行通訓大夫 儀賓府經歷
配 贈貞敬夫人 高靈申氏 판서 좌찬성 신광한의 딸
심온의 현손으로 昌寧縣監(창령현감) 沈光宗(심광종)이 生父이다.
墓表의 글씨를 石峯(석봉) 韓濩(한호/1543~1605)가 썼다.
墓表의 글씨를 石峯(석봉) 韓濩(한호/1543~1605)가 썼다.
▲ 10세 司評公 沈 嶐 墓域 沈義儉의 長男
沈嶐(심융) 司評公사평공 1523~1602
字 士仰(사앙) 配 贈 淑夫人 羅州朴氏
贈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 經筵參議官 行 折衝將軍 龍驤衛護軍
증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의관 행 절충장군 용양위호군
1555년(明宗10년) 生員이 되고 出仕하여 司評(사평)을 거쳐 龍驤衛護軍(용양위호군)을 역임.
▲10세 水使公 沈 巖 墓域 沈義儉의 三男
沈巖(심암) 水使公 字 洞賓(동빈) 1532~1587
武科及第후 관직에 진출 全羅左水使(전라좌수사)
配 全州李氏
▲ 10세 寧越公 沈訔 墓域 沈義儉의 四男,
沈訔(심은) 영월공 1535~ ? 字 士和(사화)
贈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兼 領經筵參議官 行寧越郡守
충장공심대장군 忠壯公沈岱將軍 청원군(靑原君) 沈義儉의 五男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산119-1[처인성로827번길 116-5]
심대(沈岱)[1546~1592]
字 공망(公望), 號 서돈(西敦), 諡號 충장(忠壯)이다.
<심대장군 가계도>
五代祖 沈溫심온 安孝公
高祖父 沈濬심준 領中樞公
曾祖父 沈湄심미 同中樞公
祖父 沈淇심기 龍潭縣令
父 沈義儉심의검 儀賓經歷
母 우참찬 신광한(申光漢)의 딸이다.
兄 沈嶐심융, 沈嶪심업, 沈巖심암, 沈訔심은
沈岱심대
子 沈大復심대복, 沈大臨심대림, 沈大頤심대이, 沈大濟심대제, 沈大孚심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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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세 觀察使公 沈演 墓域
沈演 심연 1587~1646 文臣. 經歷公 沈義儉의 曾孫.
司評公 嶐융의 孫子, 進士 沈大亨(심대형/1567~1603)의 子. 심택의 兄
字 潤甫(윤보) 號 圭峰(규봉)
配 는 한중겸(韓重謙)의 딸이다.
嘉善大夫 咸鏡道觀察使 兼 兵馬水軍節度使 巡察使 咸興府尹
(가선대부 함경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함흥부윤)
子 原州牧使 沈瑞肩서견
1612년(광해군 4년) 진사시에 합격
1624년(인조2년) 李适(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공주로 호종하여 내시교관이 되고 1626년 獻陵參奉(헌릉참봉)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때는 강화도로 왕을 호종하여 造紙署別提(조지서별제) 의금부도사를 역임,
당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司贍寺直長(사섬사직장)에 임명되었다.
그 뒤 持平(지평), 正言(정언), 校理(교리)를 거쳐 1633년(인조11년)에는
都廳(도청)이 되어 정묘호란으로 파괴된 창덕궁의 보수공사를 총괄하였고, 공사가 끝나자 통정대부로 승진.
같은 해 현으로 강등되어 다스리기 어려운 곳이라는 光山縣監(광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재판을 공정히 하고 선정을 베풀어 현을 주로 승격시키고 光山牧使(광산목사)가 되었다.
163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휘하 군대를 이끌고 雙嶺(쌍령)에서 싸웠으나 패하고 문경에서 재기를 꾀하던 중 화의가 성립되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전라도 臨陂(임피)에 유배.
1638년(인조 16년)사면, 제주목사 부임 백성을 덕으로 잘 다스린 업적을 인정받아 비변사 당상으로 승진.
이어 한성부판윤, 승지, 대사간을 거쳐 황해도, 평안도의 순찰사거치고
평안도와 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한 뒤 함경도관찰사로 임지에서 卒 하였다.
▲ 13세 拙齋先生 沈瑞奎(심서규) 1617~1641 沈義儉의 玄孫.
司評公 嶐융의 曾孫, 進士 沈大亨(심대형/1567~1603)의 孫子
平安監司 沈澤(심택/1591~1646)의 子, 生父 沆항
字 休門휴문 號 拙齋(졸재)
配 豊川任氏
병자호란 후 과거를 단념하고 스스로 학문을 닦았으나 젊은 나이에 卒 하였다.
저서로 『拙齋集(졸재집)』이 전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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