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孝公 月城尉 金漢藎 墓域 정효공 월성위 김한신 묘역(1720 ~ 1758년, 충남 문화재자료 189호)
김한신이 13세 때인 1732년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진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효공 김한신의 묘소로, 현재 묘역에는 화순옹주와 합장되어 있다.
본관은 경주(慶州), 字 유보(幼輔), 號 정미와(精美窩), 諡號 정효(貞孝)이다.
1720(숙종 46)∼1758(영조 34). 조선 후기의 문신
1732년 13세 때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영조 임금의 부마(駙馬)가 되어,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제용감제조를 역임하였다.
정효공 김한신은 키가 크고 인물이 준수했으며 재주가 총명하였다고 한다.
특히, 시문에 능하였던 그는 글씨도 잘 썼으며,
그 중에서도 팔분체(八分體)에 뛰어나, 애책문(哀冊文)·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고,
전각(篆刻)에도 뛰어나 인보(印寶:임금의 도장)를 전각하였다.
1758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애도의 정이 극에 달하여 곧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김이주가 그의 양자로 출계되었다.
현재 묘역에는 그와 화순옹주가 합장되어 있다.
이 묘의 특징은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라 하더라도 묘막을 설치할 수 없었으나
정효공의 묘역의 묘막은 정조대왕께서 특별히 하사하신 것으로 월성위에 대한 안타까움을 달랬다고 한다.
有明朝鮮綏祿大夫月城尉兼 五衛都摠府都摠管 贈諡貞孝金公之墓 和順翁主祔左
유명조선수록대부월성위겸 오위도총부도총관 증시정효김공지묘 화순옹주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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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父 金弘郁김홍욱 황해도관찰사
曾祖父 金世珍김세진 찰방
祖父 金斗星김두성 참봉
父 金興慶김흥경
金漢藎김한신,和順翁主
子 金頤柱 우참찬
孫 金魯敬(김노경,이조판서)·金魯永(김노영,병조참판)·金魯應(김노응,병조판서)·金魯翼(김노익)
曾孫 金正喜김정희, 金道喜김도희
벽암 두릉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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