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금수정(金水亭) 포천영평8경중 2경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46, 포천시 향토유적 제17호
포천 금수정(金水亭)은 포천 영평8경중 2경으로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46에 영평천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천시 향토유적 제17호로 지정되어 1989년 복원되었고 인근관광지는 창옥병, 옥병서원, 연화암 등이 있다.
"금수정은 영평천으로 둘러싸인 옛 영평현의 구읍지와 인접한 이곳 절벽위에 위치하여
옛부터 영평 8경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이 정자는 본래 부사 김호가 세울 당시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소의 머리 형국이라 해서 우두정이라 했다가
1608년경에 봉래 양사언이 금수정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주위에는 창옥병을 비롯해서 준암 연화함 동천석문 등 기승지가 펼쳐져 있다.
옛부터 시인 묵객들이 이 정자를 찾아와 시화와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에는 일세의 시인이며 명필인 양사언을 비롯하여
사암 박순, 한음 이덕형, 석봉 한호, 척약재 김구용, 한호, 강산 이서구 등
역대의 명류들과 얽힌 일화와 유적이 남겨져 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동북쪽 암벽에 금수정이란 양사언 선생의 글씨를 비롯하여
10미터 위 바윗돌에 새긴 "취대"라는 글씨
그리고 냇가 한복판 바위에 "경도"라고 쓴 각자 등은 그 옛 자취의 일부이다.
양사언 선생의 편액이 달려있던 본래의 금수정은 6.25때 멸실되었고
그 기단과 장초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80년 관계 문헌과 현지답사 등의 고증을 받아 포천시에서 현 건물을 복원 중수한 것이다."
▲ 금수정. 조선시대 문인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시냇가에 지어진 정자 가운데 으뜸으로 쳤다.
안동김씨 문온공 종손가의 상징, 금수정(金水亭)
동주 이민구 선생은 <금수정시서(金水亭詩序)>에서
“영평천 강물이 빙빙 돌면서 흘러들어 고요한 소[潭]를 이루는데
그 위에 새가 날개를 펼친 듯 사뿐히 내려앉은 정자가 바로 금수정(金水亭)이다.”라고 하였다.
금수정이 있는 종택 인근은 쇠머리처럼 생긴 길지(吉地)라고 한다.
이곳은 보장산에서 뻗어내린 지맥이 종택을 지나 영평천에 이르러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이루는데,
동양위 신익성(申翊聖) 선생은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에서 이곳 풍광을 “절벽이 푸른 강물에 내리꽂힌 듯하다.”고 하였다.
금수정에 관한 내력은 금수정 바로 옆 안동김씨세천비에 자세히 적혀 있다.
금수정이 6·25동란으로 인해 불탔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은 아군이 철거한 것으로
이때 봉래 양사언 선생이 쓴 금수정 현판을 종택에 보관했는데,
귀퉁이가 깨지긴 했어도 글자는 온전했다고 한다.
그 뒤 포천시에서 금수정을 복원하면서 봉래 선생 후손이 그 현판을 가져갔다고 하며,
금수정 아래 절벽에 봉래 선생 필적으로 전해지는 금수정 암각문이 있다.
지금 정자에 걸려 있는 현판은 바로 이 암각문을 탁본해서 보필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그 암각문 탁본을 보고 임서(臨書)한 것이라고 한다.
안동김씨 세천비
▲ 포천 금수정(金水亭) 정자 옆 문온공 척약재 김구용 시비
문온공은 고려 말에 목은 이색 선생을 비롯한 당대 석학들과 함께
성균관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등 유학 진흥의 선구자로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학자이자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분이기도 하다.
시비(詩碑) 앞면에는 문온공의 대표작 <범급(帆急)>을,
뒷면에는 평소 문온공과 막역한 관계였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등 세 분 선생의 시를 새겼다.
문온공 시비 바로 곁에는 영평천을 향해 봉래 양사언 선생 시비가 서 있다.
봉래 선생은 금수정 주인 琴翁(금옹) 金胤福(김윤복) 의 사위라고 한다.
봉래시집(蓬萊詩集)에 <금옹에게 드리다(贈 琴翁,증 금옹)>이라는 시가 실려 있는데,
제목 옆에 작은 글씨로 세주(細註)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그 글귀에 “금옹은 금수정 주인이다. 이 시를 준암에 새겼다.
(琴翁。錦水亭主人也。刻此詩於尊岩。)”라고 하였다.
琴翁 金胤福금옹 김윤복은 金禮生(김예생)의 서자(庶子)로,
김예생은 예안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충렬공 김방경의 묘소에 묘갈을 세웠다.
금옹 김윤복은 아드님이 없이 따님만 한 분 두었는데, 그분이 봉래 선생에게 출가 하였다.
이 때문에 금수정이 한동안 봉래 양사언선생이 관리하였고,
그 후 봉래 선생 사후에 철원부사공 金穫(김확) 이 사들여서 오늘날까지 문온공 종손가에서 소유하고 있다.
이처럼 봉래 양사언 선생은 직접 자신의 시에 금수정 주인이 금옹이라 적었다.
▲ 포천 금수정(金水亭) 정자 옆에는 봉래 양사언 선생의 시조인 “태산이 높다하되…” 시조비가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8호, 안동김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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