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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면앙정俛仰亭. 전라남도기념물 제6호,면앙정가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 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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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앙정 

 전라남도 기념물 제6.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 면앙정 송순이 후학을 기르던 곳, 면앙정 *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위치한 면암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신(侍臣)이었던 송순(宋純)

1533(중종 28) 건립한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로

만년에 벼슬을 떠나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며 한가한 여생을 지낸 곳이다.

 

송순은 41세가 되던 1533(중종 28)에 잠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이 정자를 짓고,

면앙정삼언가(俛仰亭三言歌)를 지어 정자이름과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한다.

1597(선조 30) 임진왜란으로 파괴되고 지금의 정자는 후손들이 1654(효종 5)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동남향하고 있으며, 한가운데에 한 칸 넓이의 방이 꾸며져 있다.

기둥은 방주(方柱)를 사용하였으며 주두(柱頭)조차 생략되고,

처마도 부연(浮椽: 처마 끝에 덧 얹어진 짤막한 서까래)이 없는 간소한 건물이다.

주위에는 상수리나무·굴참나무·밤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속에는 아름드리 나무도 간간이 서 있다.

주된 전망은 후면에 해당하는 서북쪽으로 평야 너머로 연산(連山)이 보이고 서남쪽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다.

 

면앙정의 풍류운치는 당대에 명사들에게 흠모되었는데,

송순이 지은 잡가(雜歌) 2편에서 그 풍취를 살펴볼 수 있으며,

이 글은 또한 청구영언등 가집(歌集)에 무명작으로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십년을 경영해야 초당삼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대 업스니 돌려두고 보리라.”  

이 노래는 만년에 이 정자를 두고 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건물은 간소한 양식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의의가 크기에 1972년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신평선생으로 불리던 면앙정 송순에 대하여 *

俛仰亭면앙정은 송순의 號에서 따온 것이다.

송순(宋純)(1493-1583)의 성종 24(1493) 담양군 봉산에서 출생하여,

중종 14(1519) 별시문과(別試文科)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명종 2(1547) 봉문사(奉聞使)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이후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쳐 1550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되었다.

1569(선조 2) 대사헌(大司憲),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었으며,

의정부 우참찬(議政府 右參贊) 겸 춘추관사(春秋館使)를 지내다 사임하였다(77).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내려와 면앙정을 짓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양성하여 문인들이 신평선생(新平先生)이라 불렀다.

 

그의 문학작품을 보면 가사(歌辭)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1,

 잡가(雜歌) 2, 면앙정단가등과 오륜가(五倫歌)5편 등이 그의 문집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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