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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오정방吳正邦,오두웅,오전,오익영,오재유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5. 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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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衝將軍忠武衛司直  吳正邦 墓域

절충장군충무위사직 오정방 묘역

贈通訓大夫司憲府執義 行折衝將軍忠武衛司直 海州吳公正邦之墓 配淑人尙州黃氏祔

증통훈대부사헌부집의 행절충장군충무위사직 해주오공정방지묘 배숙인상주황씨부

曾祖父 吳壽千오수천 --吳壽億오수억

 

 

        吳正邦오정방

    子 吳應男오응남

    孫 吳오전

 曾孫 吳斗建오두건

 玄孫 吳基周오기주吳從周오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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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 工曹參議 吳應男 墓

증 공조참의 오응남 묘

贈工曹參議海州吳公應男之墓  配 贈淑夫人全州李氏祔

증공조참의해주오공응남지묘  배 증숙부인전주이씨부

 

吳應男오응남---1604년 선조37년생

인조(仁祖) 15(1637) 정축(丁丑) 별시(別試) 을과(乙科) ,  겸 사복(兼 司僕)

父 : 오언진(吳彦塵) 관직 : 겸사복(兼司僕)

: 오응지(吳應智)

 

 

訓鍊院僉正 吳翦 墓所

훈련원첨정 오전 묘소

 

贈工曹參判行訓鍊院僉正海州吳公翦之墓  配贈貞夫人水原崔氏祔

증공조참판행훈련원첨정해주오공전지묘  배증정부인수원최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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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憲大夫 秘書院卿 吳益泳之墓

자헌대부 비서원경 오익영지묘

 

吳益泳오익영 吳斗寅오두인의 七代孫

1849(헌종 15)∼?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는 우삼(友三). 1874(고종 11) 경과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5년 한권(翰圈)에 있었고, 이듬해 본관록(本館錄)과 도당록(都堂錄)을 거쳤으며,

1878년 홍문관부수찬을 지냈다.

1880년 사간원대사간, 이듬해 12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89년 이조참판이 되었고, 1890년 예방승지를 지냈다

1890년 7월 당시 사헌부대사헌 남정철(南廷哲)을 대신하여 대사헌직을 수행하다가

189110월 다시 이조참판에 올랐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7월에는 공주부관찰사에 나아가 지방행정에 참여하였다.

갑오경장 이후인 1895년 공주부관찰사로 재임중 중추원 1등의관에 임명되었으며, 동시에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8968월 경기관찰사로 임명되었고,

1898년 다시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같은 해 7월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가 되고 다시 비서원경이 되었으며 칙임관 3등에 올랐다.

그 해 11월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에 칙임관 3등으로 임명되었다.

 

1874년 과거에 급제하면서부터

홍영식(洪英植김홍집(金弘集) 등과 교유한 개화기의 온건개화파에 속하였던 인물이다.

 

祖父 吳致壽오치수吳致俊오치준

   父 吳達善오달선

     吳益泳오익영

   弟 吳學泳오학영

본생가 형 : 오원선(吳元善)

본생가 형 : 오일선(吳一善)

본생가 형 : 오길선(吳吉善)

資憲大夫秘書院卿海州吳公益泳之墓 貞夫人楊州趙氏祔 貞夫人隋城崔氏祔

자헌대부비서원경해주오공익영지묘 정부인양주조씨부 정부인수성최씨부

 

 

珍山郡守 吳載維 墓所

진산군수 오재유

오재유(吳載維)

생졸년 미상. 본관은 해주(海州). 는 지경(持卿).

형조판서(刑曹判書) 오두인(吳斗寅)의 증손(曾孫)으로

기사사화(己巳士禍)의 사손(嗣孫)으로 녹용(錄用)되어 의릉참봉(懿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

양지현감(陽智縣監), 진산군수(珍山郡守)를 역임(歷任)하며 치적(治積)을 쌓았다.

36세로 요절(夭折)하였다. 1881(고종 18) 사복시 정(司僕侍正)을 추증(追贈)하였다.

 

               中直大夫珍山郡守 吳公載維之墓 配淑人杞溪俞氏祔

               중직대부진산군수 오공재유지묘 배숙인기계유씨부

參奉吳公潤根紀績碑

참봉오공윤근기적비

慕堂吳公元根紀績碑

모당오공원근기적비

參奉吳公正根紀績碑

참봉오공정근기적비

海州吳公準根紀績碑

해주오공준근기적비

 

吳正根오정근

1868(고종 5)∼?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오인영(吳寅泳)의 아들로 승지 오준영(吳俊泳)에게 입양되었다.

종친과 고관의 후손을 다수 입격시킨 1885(고종 22)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현종의 3녀인 명안공주(明安公主)의 종손이었으므로 사악(賜樂)을 받았다.

그 뒤 관계에 올라 주로 홍문관정자와 세자시강원·설서·필선 등 정7품에서 정4품의 관직을 순조롭게 천임하였다. 1892년 성균관대사성, 다음해 승지가 되었다.

 그러나 친일세력 주도하에 갑오경장이 시행되면서 많은 관리들이 신식제도에 어둡고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강제로 퇴직당하였는데, 역시 그때 관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다시 정계에 복귀한 때는 아관파천으로 수구파가 정권을 공고하게 잡은 1899년이었다.

그 뒤 많은 구 관료 출신들처럼 주로 왕실의 전례·의장에 관련된

 장례원소경·궁내부특진관·규장각학사·봉상사제조·경효전제조와 같은 직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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