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안성-오두웅吳斗雄 효자정문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5. 19. 15:45

본문

728x90

 

오두웅(吳斗雄) 효자정문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산55

 

오두웅(吳斗雄)

1648(인조 26)1716(숙종 42).

계명(季明)적만(敵萬), 은곡(隱谷) 본관은 해주(海州).

상서복야(尙書僕射) 오찰(吳札)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오정방(吳定邦),

   조부는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 증 좌찬성(贈左贊成) 오사겸(吳士謙)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지평지제교(司憲府持平知製敎) 오핵(吳翮)

   모친은 대군사부(大君師傅) 원진해(元振海)의 딸 원주원씨(原州元氏) 사이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오두광(吳斗光)오두룡(吳斗龍)이 있다.

   부인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정한기(鄭漢驥)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충효로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훈의 영향을 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6세 때 부친을 여의었는데,

나이가 어려 상례(喪禮)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을 평생 한으로 여겨 모친 봉양에 성심을 다하였다.

모친이 병환이 들자 모친의 변을 맛보며 병의 차도에 따라 병간호를 하였고,

목욕재계를 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며 모친의 병환을 자신이 대신 앓기를 기원하였다.

모친상을 치르는 3년 동안 매일 지극정성으로 묘를 살폈으며, 폭우와 강풍이 불어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묘 앞에 엎드려서 곡을 하던 자리에는 효성에 감복하여 풀마저 자라지 않았다.

조용한 성품에 과묵하고 물욕(物慾)이 없었다.

학문에도 독실하여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서 독서를 함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사후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슬하에 15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오종주(吳宗周)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