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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의암 주논개(義岩 朱論介), 충의공 일휴당 최경희(忠毅公 日休堂 崔慶會)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7. 1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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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신안주씨지묘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540번지

 

 

 

의암 주논개(義岩 朱論介),    충의공 일휴당 최경희(忠毅公 日休堂  崔慶會)

 

이곳이논개무덤이라고 구전(口傳)되어온 이야기는

15936. 진주성이 함락된 이틀 뒤

호남 의병 몇 명이 지수목(진주시 대곡면 사봉면 지수면 경계지점)에서

최경회(崔慶會)장군의 시신을 수습하여 산기슭에다 무덤을 만들지 않고 평장(平葬)을 해두었고,

진주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려와서 논개의 시신을 건져 역시 평장을 했다.

그 뒤 호남 의병들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관을 두개 짜 맞추고

두 사람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구해 가기로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논개의 시신을 장수가는 길목인 함양군 서상면 방지마을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이곳 함양 금당면 방지마을은

조선 후기 이후 신안 주씨들이 유력 양반 사족으로서 상당한 지역적 기반을 가진 문중이었으며

또한 방지리는 논개의 부모가 일시 웅거했다고 전해지는 지역이고

논개의 출생지인 주촌마을 탑시기골과 고개를 넘어 왕래할 수 있는 지역이어서

그 타당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하여온 곳이라고 한다. 

 

 

 

 

위 묘역은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540번지의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서상IC부근의 전북 장수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의 방지마을에 위치해 있는데

논개부인의 친정 후손들에 의해 감추어져 오다가

전북 장수군의 의암사 사적보존회에서 십 수년동안 문헌과 구전을 토대로 현장 탐문 조사와

경상남도 문화재전문위원 및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76년에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 함양군에서는 이 이야기를 근거로 무덤을 새로 조성하고,

재실을 마련했으며 무덤 우측 동쪽에는 운구한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의암논개반장의병추모비(義巖論介返葬義兵追慕碑)를 세웠고

찾아오는 참배객의 편의를 위해 넓은 주차공간도 마련했다.

함양군 유림에서는 매년 논개를 추모하고 충절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하여

논개가 왜군의 진주성 함락 승전연회 때 의암 바위에서 적장과 함께 강물에 투신,

순절한 날인 음력 77일날 이곳에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義岩論介返葬義兵追慕碑

의암논개반장의병추모비

논개와 최경회장군의 시신을 수습해 운구한 의병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912월 함양군에서 추모비를 세웠다

 

 

 

 

의암 논개 반장 의병 추모비

남강의 시원()인 여기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탑시기골에

남강과 함께 푸르게 흐르는 찬란한 역사의 꽃 의암 논개 묘 있나니

진주성 무너져 흩어졌던 의병들이 진양벌 침수목의 남강 기슭에서

이제 막 원수 갚아 햇살같이 웃음 번진 열 아홉 청춘의 의암 논개 주검 건져

한여름 삼백리길 낮에는 왜병피해 사흘 밤 이슬 속에 총총히 반장하여가신

님의 고향 길목 의병들의 창의지인 덕유의 운봉 아래 양 바르게 묻었구려

이곳 함양은 천령의 옛 땅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 대대로 살았거니

그 밤 반장에 목숨건 의병 선인들이시여

오늘 이 고을 군민들이 비 하나 세우고 거룩한 충의를 삼가 추모 하옵나니

민족의 애인으로 영원할 의암혼이

충효와 정결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천령함곡 터전에서 전해지게 하소서

 

1989.12  .

함양군수 최낙건

 

 

 

 

 

 

 

 

義巖新安朱氏之墓

의암신안주씨지묘

 

 

 

 

충의공 일휴당 최경희(忠毅公 日休堂  崔慶會)

 

최경회 장군은 본관이 해주(海州)이고

()는 선우(善遇)이며. ()는 삼계(三溪) ·일휴당(日休堂)이고

시호(諡號)는 충의(忠毅)이며 능주(綾州:전남 화순) 출생.

1561(명종 16) 진사(進士)가 되고,

1567(선조 즉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영해군수(寧海郡守)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의병장이 되어

금산(錦山)무주(茂州)등에서 왜병과 싸워 크게 전공을 세웠으며

이듬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승진하였다가

이 해(1593) 6월 제2차 진주성(晉州城) 싸움에서 9주야를 싸우다 전사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고  능주의 포충사(褒忠祠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배향되었다.

1746(영조 22)에 충의공(忠毅公)의 시호를 받았다.

 

 

忠毅公贈左贊成行慶尙右兵使海州崔公慶會之墓

충의공증좌찬성행경상우병사해주최공경회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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