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림동 거연정 花林洞 居然亭
명승 제86호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육십령로 2582
花林洞 磎谷 화림동 계곡
거연정 居然亭
명승 제86호
고려 말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전시서(全時敍)가 지은 정자로
1640년(인조 18)경 그는 서산서원을 짓고 거연정의 위치에 억새로 만든 초정을 처음 지었다.
화림교 앞에 세워져 있는‘화림재전공유허비'에는“옛 안의현 서쪽 화림동에 새들마을이 있으니
임천이 그윽하고 깊으며 산수가 맑고 아름답다.
화림재 전공이 세상이 어지러워 이곳에 은거했다”라고 쓰여 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산서원은 훼철되었다.
이후 1872년 전시서의 7대 손인 전재학과 전민진(全愍鎭) 등이 억새로 된 초정을 철거하고,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중수해 오늘에 이르렀다.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흐르는 계곡물과 우거진 숲, 가설해 놓은 구름다리 등이 조화를 이루어
한폭의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아름다운 곳으로 자연(自然)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한다.
거연정 앞 일월대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암각명과
일제의 한일합방에 울분을 토하며 자진한
애국지사의 암각명이 공존하고 있으니 ????
趙同熙조동희 암각명
1856년(철종 7)∼1934년 5월 26일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규장각경, 궁내부특진관, 한성부우윤을 지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한다.
본관은 양주(楊州). 字는 유선(有先). 서울 출신.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의 손자로, 조병섭(趙秉燮)의 아들이나, 조병집(趙秉集)에게 입양되었다.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1839~1912) /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암각명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대손으로
송병선의 동생으로 字는 동옥(東玉)이며 號는 심석재(心石齋)이다.
고종 25년(1888)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얼마후 사퇴하고 유학 연마에 더욱 몰두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토왜(討倭)의 격문(檄文)을 지어 8도에 돌렸으며
1910년 망국의 비보를 듣고 통분하며 두문불출하였고
일제의 온갖 회유도 마다한 채 끝내 형의 뒤를 따라 음독 순의(殉義)하였다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대손으로
字는 화옥(華玉)이요, 號는 연재(淵齋)라 하였다. 이 호를 취한 까닭은 그의 연보(年譜)를 보면,
《중용(中庸)》에 나오는 "연천(淵泉)"의 뜻으로 유학에 힘쓰겠다는 것이고 좀더 부연하면
"정이입지필이위대 자기제행필이고결위상 수고궁지조
(正而立志必以違大 自期制行必以高潔爲尙 守固窮之操
[바르어서 뜻을 세움에 반드시 멀고 크게 함과 제어하고
행동함에 스스로 기약해서 반드시 높고 깨끗하게 함을 숭상하며, 본디 궁한 절조를 지킨다]"라 하였듯이
유학자 본연의 정신적 태도와 절조를 잃지 않겠노란 뜻이라 하겠다.
그는 이같은 자세로 선현(先賢)의 학문을 계승하여 한말 사림의 종장(宗匠)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시대는 외세의 침략이 물밀듯 다가와서
국가의 존망과 유교의 흥폐가 언제 어떻게 될지 예측키 어려운 위급한 상황이라,
그는 유학자로서 구국과 위정척사(衛正斥邪)를 펴기 위해 고종 13년(1876)
정암(靜菴)조광조(趙光祖)/퇴계(退溪)이황(李滉)/율곡(栗谷)이이(李珥)/사계(沙溪)김장생(金長生)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 5賢의 서적에서 그 요령(要領)을 발췌해 근사속록(近思續錄)을 간행 유포하였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서연관(書筵官), 경연관(經筵官)등 관직을 누차 내렸으나 출사 않았고
고종 23年(1886) 옥천(沃川)에 누벽정(樓碧亭)을 짓고
후학들에게 유학을 강론하여 도맥(道脈)을 이으려함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을사협약(乙巳脅約)의 비보를 듣자
즉시 상경하여 고종에게 조약을 파기하고 적신(賊臣)을 처참할 것을 진언하여 그 실행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다시 궁으로 입시하려다 일헌(日憲)에게 강제로 기차에 실려 대전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통탄한 나머지 마지막으로 친일제적(親日諸賊)의 처단과
조약의 폐기로 국권의 회복을 갈망하는 유소(遺疏)를 올리고 이어 음독 순도(殉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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