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 노씨 대종가(豊川 盧氏 大宗家)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3호
풍천 노씨 대종가(豊川 盧氏 大宗家)
순조 24년(1824)건립하고 약 70여년 전 중수하였다고 한다.
풍천 노씨 대종가는 세조 때의 청백리
송재 노숙동(松齊 盧淑仝, 1403~1463)이 경남 창원에서
처가(일두 정여창의 고모집 사위)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이사를 오면서 지은 집으로
70여년 전에 중수할 당시 재목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여 중수하였다고 한다.
송재 노숙동(松齋 盧叔仝)[1403~1463]
본관은 풍천(豊川). 字는 화중(和中), 號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노언(盧焉)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군기시소윤을 지낸 김양귀(金良貴)의 딸이다.
노숙동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1435년(세종 17) 감찰을 지냈다.
1443년(세종 25) 응교를 역임하고, 1446년(세종 28) 사인에 이어 1448년(세종 30) 사간원 지사가 되었다.
1450년(세종 32)에 집현전 직제학으로 있으면서 우보덕(右輔德)으로 있었고,
1451년(문종 1)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452년(문종 2)에 좌부승지로 있다가 단종이 즉위하면서 좌승지가 된 데 이어 우승지가 되었다.
1453년(단종 1)에 다시 좌승지가 된 데 이어 호조참판이 되었고,
1454년(단종 2)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예문관 제학이 된 데 이어 경연동지사가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좌익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1456년(세조 2) 형조참판이 된 데 이어 도진무(都鎭撫)가 되었고,
1457년(세조 3)에 덕녕부윤(德寧府尹)이 된 데 이어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다시 예문관 제학 겸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가 곧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458년(세조 4) 호조참판이 된 데 이어 형조참판이 되었고,
1459년(세조 5)에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형조참판을 사직하고 판진주목사가 되었다.
1461년(세조 7)에 중추원 행첨지사가 된 데 이어 중추원 부사 겸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1463년(세조 9)에 한성부윤과 중추원 동지사가 되었으며,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그 해에 졸하였다.
묘소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부롱(釜隴)의 언덕에 있다.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세운 도곡서원(道谷書院)에 봉향되었다.
도곡서원은 대원군 때인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2001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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