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서원 관수루, 龜淵書院 觀水樓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22호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9번지
구연서원의 문루
구연서원의 문루인 관수루는 구연서원을 짓고도 한참이 지난 1740년에 건축됐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남계서원의 풍영루와 마찬가지로
누 아래는 출입문인 외삼문 역할을 하고 누 위의 마루는 주변경관을 감상하며 휴식을 하거나,
시회를 열고 강학하는 곳이다.
‘관수’는 《맹자》〈진심장구〉상편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흐름을 봐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
觀水有術 必觀其瀾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에서 가져왔다.
◆산고수장-요수 신권愼權1501~1573
◆석곡성선생유적비- 성팽년成彭年
成彭年 1540(중종 35)∼1594(선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字는 이옹(頤翁), 號는 석곡(石谷). 안음(安陰) 출신. 아버지는 교위(校尉) 성한량(成漢良)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있었다.
그러던 중 1569년(선조 2) 아버지가 죽자 학업을 그만두고 오직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효행으로 천거받아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金沔)이 고령·거창·현풍 등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 정유명(鄭惟明) 등과 함께 안음에서 기병유사(起兵有司)로 창의문(倡義文)을 발통하는 등 김면의 참모가 되어 의병활동을 하였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고, 의약(醫藥)·복서(卜筮)·산경(山經)·지지(地誌) 등 유학 이외의 분야도 두루 섭렵하였다. 지평에 추증되고, 안의(安義)의 구연사(龜淵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문집인 『석곡집(石谷集)』이 있다.
구연서원은 원래 조선 전기의 학자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선생이
1540년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던 구주서당(龜州書堂) 자리였는데,
1694년(숙종 20)에 그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구연서원의 문루인 관수루는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 문루는 구연서원 건립 후 반세기 가량 지난
1740년(영조 16)에 문인 화가로 유명한 조영석(趙榮祏)이 안음현감을 역임할 때 지었다고 하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될 때 이 건물도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다시 구연서원 건물이 중수될 때 이 문루도 함께 중건된 것이라 한다.
거창-용암정(龍巖亭),경남 문화재자료 제253호, 명승 제88호, 용암 임석형(龍巖 林碩馨) (0) | 2017.09.18 |
---|---|
거창-거창 수승대 居昌 搜勝臺 (0) | 2017.09.15 |
거창-효열각孝烈閣, 신성열정려,진양강씨정려,신성진정려,안동권씨정려,신동건지려 (0) | 2017.09.14 |
거창-수승대 요수정 거북바위 암각문(搜勝臺 樂水亭 龜淵岩 巖刻文)구연암(龜淵岩) (0) | 2017.09.14 |
거창-요수정 居昌樂水亭 , 경남 유형문화재 제423호 (0) | 2017.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