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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융건릉 둘레길" 250여년전 조선의 가슴아픈 역사와 함께 걷는 길

조선왕릉

by 碧巖 2017. 9. 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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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여년전 조선의 가슴아픈 역사와 함께 걷는 길 융건릉 둘레길"

정조의 아픔과 애환과 정성이 깃든 곳 융건릉


아버지 영조가 아들인 세자에게 명한다. "어서 자결하라!”

따를수 없는 명을 내린 영조의 뜻을 거역하자 세자를 폐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깊이 가두라!”

아버지와 단 하나뿐인 아들,

임금과 그 임금의 왕권을 물려받을 세자

그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이 사건은 모략과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조선시대 구중궁궐 당파싸움에 의한 암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대리청정 세자의 대리청정은 불행의 씨앗이었으니,

노론이 외면한 사도세자의 대리청정이 순탄할 리 없었고,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괴이한 행동을 보였던 사도세자는 끝내 영조의 미움을 사고,

결국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고 말았다.

 

그 후 아들을 죽인 비정한 군주 영조는 이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그의 손자인 정조를 세자로 책봉하게 되었고,

영조가 죽고 손자인 정조는 조선의 제21대 왕으로 즉위한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고 가장 먼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증하고

능침을 양주시 배봉산에서 화성시 안녕동으로 융릉을 옮기고,

능을 모시기 위해 원찰인 용주사를 옆에 건립하여 해마다 이곳을 행차하여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 곁에 있기를 바랐던 효성 지극한 정조는 융릉 곁에 묻혔는데, 이를 건릉이라고 한다.


융건릉은 화성팔경 중 제1경이라 하는데,

두 개의 왕릉과 왕릉을 감싼 아름다운 숲길은 역사의 향내가 물씬 ...

 

 

가는 길가 기품 있는 소나무들 사이로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둘레길 4km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한 여름 무더위를 날리며,  

가을은 수북히 낙엽쌓인 운치속에 사색에 잠기며

역사의 흔적을 되 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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