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昌侯崔先生神道碑
문창후최선생신도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
신도비는 납작한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을 세우고, 용무늬를 새긴 머릿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비문에는 최치원(857~ ?) 선생이 천령군 태수로 있을 때
이 고장의 홍수를 막기 위하여 제방을 쌓고 숲을 만들었던 일과 민심을 위로하였던 공적 등이 적혀 있다.
1923년에 만든 것으로, 최씨 문중에서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 놓았다 한다.
문창후 최치원은 12세의 어린나이로 당나라에 유학가서 7년만인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후 2년동안 중국의 낙양지역에 머물면서 시를 짓는데 몰두하기도 하였다.
그가 문장가로서의 이름을 높이게 된 계기는 879년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당시,
고변이 황소를 치러갈 때
최치원이 고변의 종사관으로 따라가 「토황소격문」이라는 격문으로 황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한다.
29세인 헌강왕 11년(885)에 신라로 돌아와 견당사에 임명되었다.
진성여왕 3년(894)에는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시무책 10여조를 여왕에게 올려 아찬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그의 개혁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신라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느껴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돌며 풍월을 읊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남은 생을 마치었다.
그 후 고려 현종 11년 1020년에 내사령에 추증되고 1021년 文昌侯문창후로 贈諡가 내려졌다.
역사인물공원
의병장 권석훈 상 義兵將 權錫薰
烈女學生林述曾妻 孺人密陽朴氏之閭
열녀학생임술증처 유인밀양박씨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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