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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익평공 하계 고형산(翼平公 荷溪 高荊山),위열공 하계 고형산(威烈公 荷溪 高荊山), 횡성고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17. 11. 2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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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평공 하계 고형산(翼平公 荷溪 高荊山)

위열공 하계 고형산(威烈公 荷溪 高荊山)

익장공 하계 고형산(翼莊公 荷溪 高荊山)

(1453,단종1~ 1528,중종23)

강원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 산 207-1

 

 

 

 

 

 

 

하계 고형산(荷溪 高荊山)

(1453,단종1~ 1528,중종23)

조선 전기의 훈구파 문신

정숙(靜叔),  호는 하계(荷溪), 

시호는 익평(翼平), 위열(威烈), 익장(翼莊)으로 나누어져서 정리된 것이 없다.

본관은 횡성(橫城)이다.

 

제주고씨 화전군파 익평공(翼平公)

 

 할아버지 : 금성현령 고습(高襲), 

   아버지 : 고사신(高思信)

고형산이 속한 횡성고씨는 제주도 고을나(高乙那)의 후손인 제주 고씨 계열이다.

그러나 고형산이 속한 고을나(高乙那)계 외에

고인승 계열의 또 다른 횡성고씨가 존재하는 것이 1990년경 알려졌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483(성종 1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연산군 때 해주목사·함경북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중종 때 강원도관찰사와 형조·호조·병조의 판서 등 요직을 차례로 역임하고 우찬성에 이르렀다.

1507(중종 2)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 부국강병을 위한 제도개혁을 상소한 바 있다.

조광조(趙光祖) 일파의 정치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한 사람으로 현량과(賢良科)의 실시 등을  반대하였으며,

1519년 남곤(南袞) 일파와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진세력을 축출하였다.

곧고 근검한 성품으로 수리(數理)에 밝아 행정능력이 뛰어났다.

뒤에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諡號는 익장(翼平)이다.

 

 

그는 1483(성종 14)에 별시문과에 병과(兵科)로 급제하였다.

성종 25년에는 지평 현감(砥平縣監)으로 있다가 승훈랑에 제수되었으며,

연산군 5년에는 종사관,

연산군 6년에는 사헌부 장령이 되었다가 잠시 함경도 경차관을 지냈으며,

연산군 7년에는 사간원 사간이 되었다.

   그해에 한치형 등이 고형산을 포상할 것을 청하여 두 품계가 오른 종사관이 되었으며,

연산군 8년에는 사헌부 집의를 겸직하게 되었다.

연산군 9년에는 두 품계가 더 올라 해주목사가 되었으며,

연산군 10년에는 함경북도 절도사로 재직하면서 가선(嘉善)을 특가(特加)받게 되었다.

 

 

중종 2년에는 함경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그는 함경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경흥부(慶興府)와 무이보 등에 창고 설치를 추진하였다.

중종 6년 대간(臺諫)에서 그가 함경도가 농사를 그르쳐서

춘하등(春夏等)의 포폄을 물려서 정하기를 청했다고

      하여 이를 추고(推考)하고 등제(等第)하여 계문(啓聞)할 것을 청하였으나,

      중종은 포폄(褒貶)의 시기가 법령에  있으므로 등제하여 계문하라고 하고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았다.

중종 11년에 왜적을 방비하는 계책을 올리기도 하였고,

      사창법(社倉法)을 써서 구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행해지지 않았다.

중종 5년에는 함경도 관찰사직을 마치고 동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았으며,

그해 10월에는 형조참판이 되었다가 바로 형조판서가 되었다.

중종 6년에는 고형산이 계모의 나이가 79세가 되어

쇠질(衰疾)한 사실과 자신의 신병을 칭하며 사직하고 돌아가 봉양하면서 병을 조섭하기를 청하였으나,

중종은 고향 근처 관찰사직에 결원이 있으면 차견(差遣)하겠으니 사직하지 말라 하고,

그해 11월에 강원도 관찰사를 제수하였다.

그는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강릉진, 삼척진,동포,울진포,대포 등의

다섯 진포(鎭浦)의 성 쌓는 일에 대한 방법을 보고하기도 하였고,

백성들에게의 쌓여있는 행정상의 불만을 정리하여 상소하기도 하였다.

또한 모든 고을의 옛 현리(縣吏)들이 진봉(進奉)에 참여하여 생기는 폐단을 아뢰어 이를 중지시켰다.

중종 7년에는 전운사(轉運使)로 재직하다가 계모의 상사(喪事)로 인해서 사직하였다.

이후 횡성으로 내려가 있다가 병을 얻었는데 중종이 친히 약물을 내리고 개소(開素)하기도 하였다.

중종 9년에는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제수 받았으며, 곧이어 호조판서가 되었다.

그해 11월에는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그러나 간원(諫院)의 논핵으로 인해 대사헌에서 체직되었다.

이에 대해서 사신(史臣)이 논하기를 간원에서 고형산은 강직한 기풍(氣風)이 없어서

사헌부의 장관(長官)에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논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외모는 비록 순박하고 진실하여 문식(文飾)은 적지만 기국(氣局)이 굉위(宏偉)하고

 심지(心志)가 견직(堅直)하며,

처결할 때 임해서는 굳건하여 흔들리지 않고 일에 따라 치밀하게 다스렸으므로,

그때의 사람들이 의지하고 중하게 여겼다고 하였다.

그해 12월에는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바로 호조판서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후 병조판서를 거치면서 벼슬이 우찬성에 이르렀다.

 

그는 조광조(趙光祖) 일파의 정치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한 사람으로

현량과(賢良科)의 실시 등을 극력 반대하였으며,

1519년 남곤(南袞), 심정(沈貞), 홍경주(洪景舟)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진세력을 축출하였다.

고형산은 함경도 도사, 함경도 경차관(京差官), 해주목사, 함경북도 절도사,

함경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면서 누구보다도 북방(北方)의 일에 능통해 있었고,

평소 성질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매우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다.

또한 오랫동안 군의 병사와 금전(金錢)과 양곡(糧穀)을 관리하는 직임을 맡아 처리가 매우 정밀하였으며,

일을 정비한 것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도로를 개통한 그의 업적은 높이 살만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주문진에 상륙한 적군이 이 도로를 따라 한양을 함락시켰다 하여,

국왕이 대노하였고 고형산은 무거운 죄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 후 그에 의한 경강선(京江船) 개통에 대한 재평가로 무고함이 밝혀지고

그에 대한 업적의 지대함에 대한 보상으로 나라에서는

묘역이 있는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 망백 마을의 사방(四方) 십리(十里)의 땅을 하사 하였다.

시호는 익장공(翼平公)이다.

 

 

 

 

 

 

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高公之墓 貞敬夫人尹氏之墓

숭정대부의정부우찬성고공지묘 정경부인윤씨지묘

 

 

           

 

 

 

 

 

 

 

 

 

고형산묘역 측면

 

 

 

고형산 묘소 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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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산(高荊山)의 아버지 고사신(高思信) 묘

 

 

 

        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 判義禁府事高公之墓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 판의금부사고공지묘

 

 

 

 

 

 

 

 

고형산의 할머니 정경부인 경주이씨묘소

 

 

 

정경부인 경주이씨지묘

 

 

 

 

 

 

 

 

/조선의 명재상 대관령 옛길 개척자 하계 고형산(荷溪 高荊山) 가계//

고조부 고천세(高天世)

증조부 증 병조참판 고용경(高用卿,1363~ ), 개국원종공신

   조부 금성현령 증 이조판서 고습(高,1381~1462)

   부친 증 좌찬성 고사신(高思信,1417~1494)

           익평공 하계 고형산(翼平公 荷溪 高荊山,1453~1528)

           위열공 하계 고형산(威烈公 荷溪 高荊山,1453~1528)

           익장공 하계 고형산(翼莊公 荷溪 高荊山,1453~1528)

           배위 정경부인 파평윤씨,

                   아들 혜민서주부 고절(高浙), 일명 고지손(高砥孫,1479~)

                   따님 횡성인 조준(趙俊)--조응세(趙應世)

                   따님 강릉인 김용려(金用礪)

                   따님 여흥인 민만손(閔萬孫)

 

하계 고형산(荷溪 高荊山)의 시호가 세가지로 나오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

위열공(威烈公), 익평공(翼平公), 익장공(翼莊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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