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옥천 고분군(海南 玉泉 古墳群)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 500-1번지,
영춘리 389-10 번지 등
해남 옥천 고분군(海南 玉泉 古墳群)은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2015년 4월 23일 전라남도의 기념물 제248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만의총 고분군은 삼국시대 고분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고 발굴조사를 통하여 출토된 유물도 가치가 있다.
발굴조사(국립광주박물관, 동신대박물관)와 학술대회를 실시한 바 있다.
1호분의 석곽묘는 내부 목관과 외부 석곽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이며,
석곽 내외에서 확인된 백제, 신라, 가야, 왜 등 범지역적인 유물조합으로 보았을 때 그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3호분은 삼국시대 횡구식석실의 구조와 장법을 밝힐 수 있는 자료이다.
만의사지총 비문
대저 여기에 비를 세워 기록하는 것은 옛날부터이다.
서경에 이르기를 7세(7世)를 모신 사당에서 그 아름다운 덕행을 7척의 비에서 볼 수 있다 하더니
어허 여기 만의사의 몸부림에서 또한 그 충절을 볼 수 있다 하겠다.
이곳은 선조 30년 정유왜란 때에 창의 모병하여 살신성인하신
충절의 유구한 역사와 전적을 지닌 유적지로서 합장한 묘이다.
왜적은 선조 임진난 때 전라도 지방을 침공해오다 금산전투에서 7백의사의 최후 1인까지 싸우는 것을 보고
그만 전라도를 침공해오지 못하였다.
왜적은 정유 재침을 하면서 전라도를 침공한 후 북진할 계획으로 수륙 양병이 해남을 공격해 왔다.
우리 군대는 해남에서 양성한 의병이 3천 명, 영암의병이 1천2백 명, 강진의 의사 2천5백 명,
보성 장흥의 모의장병 2천 명, 송 백현산에서 창의장병이 1천5백 명 약 1만 명이었다.
적은 5만 6천 명이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남원성을 침공했고 계속 남침하여 왜적 2만여 명이
마침내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을 치열한 격전 끝에 거의 전사하고 왜병은 패하여 달아났다.
우리 의병장은 왜적을 추격하여 강진 장흥에서 순절했다.
한편 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은 9월 12일에 진도 벽파진에 도착하여
15일에 벽파에서 왜적선과 전초전을 하였으며 16일에 명량해전의 대첩을 거두었다.
이날 만일 옥천평야에서 만의사의 치열한 격전이 아니 있었다면 이 명량대첩이 어찌 이루어졌겠는가.
이곳 옥천평야는 해남 수성(守城)의 보루지요 명량대첩의 전초지로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될 유적이며 이날 만의사의 전사는 위국진충의 고귀한 희생이요 혁혁한 수훈으로
우리 청사에 영원히 빛날 영혼의 무덤이다.
왜적이 물러간 뒤 사람들이 울며 시신을 거두어 여러 무덤을 합장하고 만의사의 몰무덤이라 이름 하여 오다가
왜정 때 퇴비(頹圮)되어 여기저기 산재한 6기가 잔재하였더니
광복 후 과도 년간에 수 3기가 없어져서 인근마을의 뜻있는 선비들이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이 전적지마저 장차 인멸될까 걱정하여 묘역에 나무를 심고 주민들이 뜻을 모아 관리해오다가
지난 1990년 군(郡)의 협력을 얻어 도로변의 묘 1기를 단장하고
1996년 춘(春) 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주잔 헌화(酒盞獻花)를 드리고 있다.
아 아쉽고 한탄스러운 일이다.
이 대교들 전투가 남원전투와 금산전투에 어찌 우열이 있겠는가.
오랜 세월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수백 년 원한 속에 비바람에 시달리며 황폐해가는 충절의 무덤은
참으로 천도(天道)를 의심케 하였다.
통한히 여기지 않는 이 없던 터에 때마침 천리가 회운하여
1997년 군(郡) 당국의 각별한 배려로 이곳 묘 1기를 수치(修治)하고
이 비를 세워 만의사의 충의고절을 재조명하여 온 세상에 널리 천양하여
그늘에서 헤이던 원혼을 위안함과 동시에 우리 후진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충의정신을 일깨워주고 우리 삶을 이끌어주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이에 명(銘) 왈(曰) 왜적들 날뛰어 선조 임진 정유 전란 일으키니 온 나라 어지러웠네.
우리 고장 만의사(萬義士) 의분(義奮)에 함께 맹서하고 적과 싸워 살신성인의 피를 뿌리셨네.
쌓인 시체 산 같으니 옥천평야 대교들에 합장되시었다.
춘추대의 빛날 업적 구국 홍업 남기셨네.
위국충절의 혼백 묻히신 곳 7척 비에 글을 새겨 천만 년 밝히리라.
단기 4331년 4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위원 윤재진 근찬
해남 윤재혁 근서 만의총 유적보존회 근수
옥천 성산 만의총
성산리(星山里) 대교들에 위치한 이 무덤들은 본래 6기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1960년대에 경지정리작업으로 소멸되고 현재는 3기만이 남아 있다.
현재는 만의총(萬義塚)으로 불리고 있으며 역사적인 전거는 미약하다.
다만 1597년 발생한 정유재란 때 우리 지역에서 창의한 의병들과 왜군들이 교전하여 쌓인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마을에 남아 있던 남녀노소의 주민들이 시신을 거두어 합장하고
만의총이라 이름 하였다는 구전만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옥천주민들은 그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향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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