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성지明月城址 도기념물 제29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223
명월성지明月城址
1510년(중종 5)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장림(張琳)이 명월포(明月浦)에 쌓았던 성터로서
당시 비양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목성으로 축조한 진성이며,
1976년 9월 9일 제주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1510년(중종 5)에 장림 제주목사는 비양도를 왜구가 침공하기 쉬운 곳이라 판단하여 이곳에 목성을 쌓았다.
이후 1592년(선조 25)에 이를 석축으로 바꾸었다.
성 안에는 풍부한 양의 감천이 있고, 동·서·남으로 1칸의 초루(醮樓)가 있었다.
1764년(영조 40) 어사 이수봉(李壽鳳)이 왕에게 아뢰어
조방장(助防將)을 만호로 승격시키고 제주인으로 하여금 삼망(三望)하여 임명하도록 하였다.
명월성은 제주목 서쪽 끝에 있는 큰 진(鎭)이라 진사(鎭舍: 3칸), 객사(客舍: 3칸), 사령방(使令房: 2칸),
공소(供所: 2칸), 공수(供需: 2칸), 무기고(武器庫: 4칸), 도청(都廳: 4칸), 진고(賑庫: 4칸), 창대청(倉大廳: 3칸),
중화청(仲火廳: 2칸), 진졸청(鎭卒廳: 3칸)과 창고 4동(각각 2칸)이 있었다.
만호 1명, 치총(雉摠) 4명, 수솔군(隨率軍) 82명,
성정군(城丁軍) 330명, 유직군(留直軍) 99명, 진리(鎭吏) 22명,
서기(書記) 30명, 봉수 연대 별장(別將) 54명, 봉군(烽軍) 132명이 있었다.
이 성에는 3개의 옹성이 있었다고 하나 남문지(南門址)와 서문지(西門址)의 옹성은 모두 유실되었고,
동문지(東門址)의 옹성만이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외벽만 일부 남아 있고, 옹성 자리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남문지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살펴보면 남문지와 동문지 사이에는 3개소의 치성이 있고,
외벽의 일부가 전 구간에 걸쳐 남아 있으며,
영조40년인 1764년부터 고종32년인 1895년까지 131년간 112명이 만호가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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