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파두리항몽유적 缸坡頭里抗蒙遺跡
국가사적 제396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항파두리로 50, (상귀리 1012)
삼별초가 최후까지 대몽항쟁을 벌인 유적지.
항파두리항몽유적 缸坡頭里抗蒙遺跡
13세기에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에 저항하여 싸운 삼별초의 최후의 항쟁지이다.
1271년(원종 12) 5월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온 김통정 장군은 이곳에 내·외성으로 된 항파두성을 축조했다.
외성은 길이가 15㎞에 이르는 토성이었고, 내성은 둘레 800m의 석성이었다.
이 성을 본거로 삼별초는 2년여에 걸쳐 내륙 지방에 주둔한 여원 연합군을 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삼별초 회유에 실패한 여원 연합군은 드디어 1272년 11월 1만여 대군을 이끌고 함덕포로 상륙하여,
함덕포, 파군봉, 항파두리, 붉은오름 등 여러 곳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제주도는 몽고의 직속령이 되어 100년에 걸친 수난기를 맞는다.
고려 조정이 몽고군과 강화를 맺고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맞서 여몽 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했던 삼별초의 마지막 요새였다.
삼별초는 고려와 몽골과의 연합을 규탄하면서 승화후(丞化侯) 왕온(王溫)을 왕으로 삼고
1270년 강화에서 반란을 일으켜서 1,000여 척의 배에 병기와 식량을 싣고
그 해 8월에 전라남도 진도에 용장성을 터전으로 해상 왕국을 건설하였다.
삼별초가 제주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270년(원종 11) 10월경으로 보인다.
이 무렵 고려 조정에서도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올 것을 막기 위해
영암부사 광산인 김수와 제주인 고여림 장군을 제주로 보내어 방어케 했다.
삼별초의 장수 이문경이 명월포로 상륙하여 제주의 동제원에 진을 치고
김수, 고여림 장군 등 고려 관군과 송담천에서 싸워 승리를 하였다.
그 후 1271년(원종 12) 5월 15일에 진도가 여몽 연합군에 함락되자,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에 왔으며 남해현을 점거했던 삼별초의 장수 유존혁도 함께 들어왔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김방경(金方慶)과 원장(元將) 흔도(忻都)가 이끄는 여몽 연합군이
김통정 장군을 비롯한 삼별초군을 함락시키면서 1273년(원종 14) 4월에 삼별초의 항쟁이 끝이 났다.
삼별초가 제주도에 쌓았던 내·외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록에 의하면,
고토성, 고장성, 항파두리고성, 애월목성 등으로 보인다. 고(古)자는 예 성이란 의미에서 후대에 붙인 것이다.
특히 ‘고내촌 신축 2년’이라고 명문된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즉 신축 2년인 1241년(고종 28)에 고내촌에서 제작된 기와가 삼별초의 관아 시설에 사용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항파두리에는 1977년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가 세워졌고 전시관의 관리와 토성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와 상귀리 일대가
1976년 9월 9일 제주도 문화재(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정비 사업을 실시하여
1997년 4월 18일에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으로 변경되어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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