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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삼성혈三姓穴, 모흥혈(毛興穴), 사적 제134호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6. 2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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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삼성혈濟州三姓穴, 모흥혈(毛興穴)

사적 제13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313(삼성로 22)


제주삼성혈濟州三姓穴, 모흥혈(毛興穴) ---탐라국의 신화와 관련된 유적.

제주도 원주민의 발상지로 고((: 뒤에 으로 고침()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구멍이다.

세 신인은 수렵생활로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다가

오곡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또는 日本國)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하고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한 인물들이다.

삼성혈은 지상에 패인 세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구멍은 품자(品字)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둘레가 6자이고 깊이는 바다까지 통한다고 하며,

나머지 두 구멍은 둘레가 각기 3자인데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흔적만 남아 있다.

위쪽 구멍은 고을나, 왼쪽 구멍은 양을나, 오른쪽 구멍은 부을나가 솟아난 곳이라 전한다.

19646월에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공덕비가 주욱 도열하여 있다.



제주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梁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신화가 전하는 3개의 구멍이다.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제주 삼성혈의 성역화는 1526(중종 21) 이수동(李壽童) 제주 목사가

()의 북쪽에 홍문(紅門혈비(穴碑)를 세우고 돌로 담을 쌓아

··부씨의 후손들에게 혈제(穴祭)를 지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1698(숙종 24)에 유한명(柳漢明) 목사 때

혈의 동쪽에 위패를 모시는 삼을나묘(三乙那廟)[지금의 삼성전(三聖殿)]를 세우게 하였다.

1702(숙종 28) 이형상 목사 때 삼성묘를 가락천 동쪽으로 이건하였으나 홍수로 인해 다시 원위치로 이전하였다.

1772(영조 48) 양세현(梁世絢) 목사 때는

외장을 축조하고 소나무를 증식하고 제전을 마련하여 건시대제(乾始大祭)를 봉행하였다.

1785(정조 9)에는 양경천(梁擎天)의 상소로 삼성사(三姓祠)’라는 사액이 내려졌으며,

고택겸(高宅謙) 교리가 어제제문(御製祭文)을 받들고 와서 봉제하였다.

1827(순조 27)에 전사청(奠祀廳)이 건립되었고,

1849(헌종 15)에는 숭보당(崇報堂)이 건립되어 재생(齋生) 교육이 실시되었다.

1871(고종 8) 사우 철폐령으로 인해 위폐가 철회되었다.

1889(고종 26) 재건 운동으로  전사청, 삼성전 등이 중건되었다.

제주 삼성혈은 현재 고양부 삼성사 재단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다.

제례는 삼성의 후손들이 삼성전에서 매년 양력 410일에 춘제와 1010일에 추제를 지낸다.

헌관은 삼성이 돌아가며 맡는다. 1210일에는 제주도민이 건시제로 혈단(穴壇)에서 지낸다.

초헌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유지 중에서 선임된다.

 

제주 삼성혈은 제주 고유의 건축물과 제사 모습 등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며,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성소(聖所)이다.

이 유적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벽랑국의 세 공주가 타고 온 나무 상자가 발견된 해안 황루알,

세 신인이 세 공주와 혼인한 혼인지(婚姻池),

이들이 혼인한 뒤 영역을 가리기 위하여 화살을 쏘았다는 삼사석(三射石)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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