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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문효공경재 하연 文孝公 敬齋 河演,

구름에 달

by 碧巖 2018. 10. 1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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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 河演

1376(우왕 2)1453(단종 1)

경기 시흥시 소산서원길 20 (시흥시 신천동 산12)






        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河演之墓 配貞敬夫人星山李氏合祔

        대광보국숭록대부영의정부사하연지묘 배정경부인성산이씨합부



              領議政文孝公敬齋河先生之墓 配貞敬夫人星州李氏祔左

              영의정문효공경제하선생지묘 배정경부인성주이씨부좌


하연 河演

1376(우왕 2)1453(단종 1)

본관은 진주(晉州). 는 연량(淵亮), 는 경재(敬齋신희(新稀).

하즙(河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하윤원(河允源)이고,

아버지는 부윤 하자종(河自宗)이며, 어머니는 정우(鄭寓)의 딸이며,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96(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녹사를 거쳐,

직예문춘추관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동부대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한 자세로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치하했다 한다.

 

세종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조심스럽게 처사하여 신임을 받아 예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23(세종 5)에는 대사헌으로서 조계종(曹溪宗) 등 불교 7종파를 선(() 양종(兩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고자 하여 채택받았다.


1425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한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1437년 의정부에 들어가서는 판이조사로서 이조의 일을 맡아 공세법(貢稅法: 연분9, 전분6)을 마련했으며,

1442년에는 각품의 행수법(行守法)을 제정하였다.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70세로서 궤장(几杖)을 받았다. 이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49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으로 있던 1451(문종 1)에 문종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치사(致仕)하였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간

문안에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았고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진양연고(晉陽聯藁)가 있다. 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증조부 하즙(河楫) 문하찬성사

   조부 하윤원(河允源, 진산부원군 사헌부대사헌)

아버지 하자종(河自宗) 병부상서(兵部尙書),판청주목사(判淸州牧使), 증좌의정

어머니 晉州鄭氏, 좌상시(左常侍이조판서(吏曹判書) 정우(鄭寓)의 딸

   하연 河演 문효공(文孝公)

    배위 성주이씨 개성부윤 이존성(李存性)의 딸

       장남 하효명 河孝明 군자감부정 증이조참판)

       차남 하제명 河悌明 예조좌랑

              손자 하중호河仲浩

                    증손 河潤文하윤문-한성판관, 河漢文하한문 한성부좌윤

       삼남 하우명河友明 연당蓮塘 동지중추부사

              손자 하철석河哲石

     형 : 하왕(, 병조판서)

     형 : 하형(, 관찰사)

  동생 : 하결(, 대사간)

  동생 : 하박(簿, 증영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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