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춘천-춘기계심 순절비, 윤용성영세불망비, 공병중대전적지, 춘천절기 전계심

구름에 달

by 碧巖 2019. 10. 16. 23:02

본문

728x90

 

 

春妓桂心 殉節碑

춘기계심 순절비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1가 산 1-1

 

春妓桂心殉節之墳

춘기계심순절지분

 

 

절개 있는 기생으로 전()은 성이요 계심(桂心)은 이름인데,

어려서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어서 교방(敎坊)에 적을 두었네.

단출하고 바른 자태와 그윽하고 고요한 성품을 지녔으며, 몸가짐은 안방에서 거처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네.

열일곱에 고을 관청의 관리집안으로 시집가서, 아들에게 허락하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네.

분단장한 여인들 속에서 겸손하게 스스로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교태와 웃음 바치는 것 배우지 않았지.

누구의 부탁으로 상방(尙方;궁궐에서 왕실의 의복과 장신구를 제작하던 관아)으로 옮기게 되니,

혼례복 챙겨서 한양으로 갔네.

서울에는 비뚤어진 마음 가진 악한들 많아, 이슬 젖은 길에 포악한 사람 만날 걸 생각했네.

치마엔 호신용 칼 차고 주머니엔 약 넣어, 기러기 털처럼 가볍게 죽으리라 다짐했네.

이별할 때 은근히 하늘에 맡겼으나, 못난 자식 오히려 마음은 쇠처럼 굳고 단단하네.

배 안의 태아 누()가 되어도, 차마 내 손으로 베어 떼어 낼 수 있으랴.

옷 더럽히고 몸 망가뜨려 스스로 더러워지니, 한 번 죽기를 각오하자 마음은 더욱 굳어지네.

달 밝고 인적 고요한 중원(中元;백중(伯仲). 음력 715) 날 밤에, 조용히 사탕 먹듯 독약 마시니,

옆 사람 놀라 구했지만 이미 늦어, 숨 넘어 가려 하자 겨우 목소리를 들으니,

체머리 팔아 관 준비하고 뒷일 부탁하며, 살갗 드러나지 않게 염습하고 안치를 잘해 달라 하네.

세 차례 온 집안의 편지 허리춤에 매어 달라 하면서, 이것저것 부탁하는 사별의 말 그 울음 슬프구나.

남편이 끌어안고 호리(蒿里;무덤)으로 돌아오니, 죽은 영혼 사라지기 어려워 꿈속에서도 감동하게 하네.

옥이 깨지고 구슬 물에 빠져 푸르러졌어도, 절의(節義)로써 떳떳이 지켜내니 가을 서리보다 매섭구나.

순상(巡相;순찰사) 이공(李公)께서 그 일을 듣고, 금수(錦水)의 경랑(瓊娘) 위해 두 깃발 날리며 와,

급이 돌 다듬고 작설(綽楔;홍살문)로 바꾸라 하시고, 공사 비용 관아에서 지출하게 하셨으며,

새로 부임한 부사 또 녹봉 내시어묘 앞에 석 자 남짓 묘비 세웠네.

춘주(春州)에 매여 전기 쓰는 나그네,   속뜻을 주워 모아 이 비명 짓누나.

가경(嘉慶) 원년(元年) 병진년(丙辰年:1796) 5월  일.

금성 박종정(錦城 朴宗正) 짓고,

문화 류상륜(文化 柳尙綸) 쓰고,

김처인(金處仁)이 공사를 살폈다.

 

 

 

=====================================================================================================

소양정 앞

龍成 永世不忘碑 春本學校設立者

용성 영세불망비 춘본학교설립자

 

尹公龍成氏永世不忘碑 春本學校設立者

윤공용성씨영세불망비 춘본학교설립자

 

춘본학교(春本學校)1942년에 교육자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윤용성(尹龍成)씨가

1942년 춘천 소양로 2가에 가난한 소년과 제때에 배우지 못한 소년 및 장애인들을 위해 세웠던 사립학교로서

춘본학교(春本學校)로서 설립자인 윤용성 교장은 광복 직후에 중앙로에 있던 일본(미도리) 학교 터에

춘주(春州)학교를 새로 세우면서 춘본학교 학생들을 춘주학교에 편입시켰는데,

그에 따라 자연히 춘본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그 당시 1945년 춘본학교의 학부형들이 설립자 윤용성 씨를 기념하여 봉의산 기슭에 공덕비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춘주학교는 6.25전쟁 뒤에 춘천 중앙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으며,

현재 춘천 중앙초등학교라 한다.

설립자 윤용성(尹龍成) 교장은

19506.25 전쟁시 가족들과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라 피란중에 폭격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장남 춘암 윤학재(春岩 尹鶴載)는 강원도청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하였는데

후손들은 불망비를 중앙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주길 바란다고 한다. 

 

 

 

=======================================================================================================================================================

 

 

 

 

소양정 앞                    공병중대 전적지

6.25동란 초기 이곳에 배치되었던 6사단 공병대대 1중대가,

소양교를 건너 공격해 오는 적과 혈전을 전개했던 장소로서,

보병보다도 더 용감히 싸웠고,

"공격시에는 가장 앞에 나가고 방어시에는 가장 나중에 나온다"

공병의 정신을 지킨 공병중대 장병들을 기리는 표지석을 볼수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