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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성균진사 심수경(沈壽卿), 경안찰방 심평(沈枰),청송심씨 정이공파 부사공계

구름에 달

by 碧巖 2020. 12. 1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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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 정이공파 부사공계 진사 심수경(沈壽卿)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구장리 423-2

 

경안찰방 심평(沈枰)

 

靑松沈公枰之墓 配宜人寧越辛氏祔左

청송심공평지묘 배의인영월신씨부좌

 

 

 

 

 

 

 

성균진사 심수경(沈壽卿)

 

成均進士靑松沈公壽卿之墓 配宜人羅州朴氏祔左 配宜人高靈申氏祔右

성균진사청송심공수경지묘 배의인나주박씨부좌 배의인고령신씨부우

 

深谷書院
심곡서원 사적 제530,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를 모신 書院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203-2[심곡로 16-9]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 죽음을 당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효종 원년)심곡(深谷)’이라는 사액현판과 토지와 노비 등을 임금에게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무사했던 47개 서원 중 하나로, 선현들의 제사와 지방 교육을 담당하였다.

조광조의 묘소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원을 세우기 위하여 논의를 하였다.
그러나 재력이 부족하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제향하는 용인 충렬서원에 입향하였다가
1605(선조 38)에 위패를 옮겨왔다.
1631(인조 9)에 용인의 진사 유문서(柳文瑞)가 상소하여 사액을 요청하였으나 인조는 "서서히 하라"고 답하였다.
유문서의 상소 이후 19년이 지난
1650(효종 원년)에 이르러 용인의 유생 심수경(沈壽卿) 등이 다시 상소를 올리자
그 해 10월에 임금이 허락하여 심곡(深谷)’이라는 사액과 노비와 전결을 하사하였다.

 

 

 

 

靑松沈公墑 配丹陽李氏之墓

청송심공적 배단양이씨지묘

 

 

//청송심씨 안효공파 성균진사 심수경(沈壽卿) 가계//

    8대조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安孝公 沈溫) 

    7대조 영중추부사 정이공 심결(靖夷公 沈決), 원종좌익훈(原從佐翼勳)

    6대조  통정대부 전라좌수사 심정원(沈貞源)

    5대조 창녕현감 심광종(沈光宗), 생부 심미(沈湄)

   고조부 심의공(沈義恭)

   증조부 심곤(沈崑)

할아버지 증 통정대부 철원부사 심원해(沈源海,1536~1597) 

   아버지 경안찰방 심평(沈枰), 생부 심원하(沈源河)

   어머니 의인 영월신씨, 대사헌 신경진(辛慶晋)의 따님, 부제학 신응시(申應時)손녀

            형님 심수공(沈壽公)

                    조카 심세망(沈世望)

                            손자 심적(沈墑)

                                   증손자 심태영(沈兌英)

            성균진사 심수경(沈壽卿,1613~1660) 

            배위 의인 나주박씨, 부사 박대화(朴大和)의 따님

            배위 의인 고령신씨, 봉사 신곽(申瀖)의 따님, 서윤 신단(申湍)의 증손

                         장남 심세장(沈世章)

                                   손자 심항(沈沆)

                         차남 심세원(沈世援)

                                   손자 심부(沈溥)

                                   손자 심명(沈溟)

                         장녀 안동인 선전관 김정회(金正會), 효헌공 증 영의정 눌암 김찬(訥菴 金瓚)의 증손자

                         차녀 파평인 윤정(尹鋥)

            녀 의령인 남두정(南斗正)

            녀 안동인 김용(金用),  효헌공 증 영의정 눌암 김찬(訥菴 金瓚)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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