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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여성군 민무질 묘(驪城君 閔無疾), 여흥민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1. 1. 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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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민씨 여성군 민무질(驪城君 閔無疾)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52-1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52-12

 

定社佐命功臣正憲大夫 驪城君驪興閔公無疾神道碑

정사좌명공신정헌대부 여성군여흥민공무질신도비

 

 

 

 

 

 

 

法學士驪興閔公徽植善行碑

법학사여흥민공휘식선행비

 

여성군 민무질(驪城君 閔無疾, ? ~ 1410년)

본관은 여흥(驪興).

증조부는 민적(閔頔), 할아버지는 민변(閔忭)이며,

아버지는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이며,

어머니는 여산송씨로 여양군(礪良君) 송선(宋璿)의 따님이고,

태종비 원경왕후(元敬王后)의 동생으로 부인은 정경부인 청주한씨로 한성부윤 한상환(韓尙桓)의 따님이다.

형님은 민무구(閔無咎)이며 동생은 민무휼(閔無恤)과 민무회(閔武悔)이다

1398년(태조7)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 2등으로 책록되었다.

1400년(정종2) 제2차 왕자의 난 때는 좌명공신 1등으로 여성군(驪城君)에 봉해졌으며,

좌군총제와 우군도총제 등을 역임하고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07년(태종7) 7월에 형 민무구(閔無咎)와 함께

어린 세자를 끼고 권력을 잡으려 하였다는 협유집권(挾幼執權)의 혐의를 받아

1408년 10월의 교서에서 그들의 죄목을 10가지로 열거했는데,

가장 중요한 죄목이 협유집권(挾幼執權)의 도모였다.

즉, 1402년 왕이 창종(瘡腫)을 앓아 고생하고 있을 때 그들이 몰래 병세를 엿보며

어린 세자를 세우고 권력을 잡으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태종의 제1차 선위 파동으로 민무질 형제의 옥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세자 정혼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세자의 정혼 문제는 정부와 대간의 시비로 발전하여,

1407년 7월 정부와 대간이 개편되어 호정 하륜(浩亭 河崙)이 좌의정에서 물러났다.

6일 후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이화(李和) 등이 민무질(閔無疾) 등을 탄핵하여 옥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화(李和) 등이 열거한 민무질(閔無疾) 형제의 죄는

선위 파동 때 태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기를 은근히 기대하여 협유 집권을 도모한 점과,

이무(李茂)의 집에 가서 왕에 대한 불평을 토로한 것 등이었다.

옥이 발생한 지 2일 후 민무질(閔無疾)을 장단(長湍)에 송치하고,

19일 후 공신녹권(功臣錄券)을 환수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다시 대구에 유배시켰다.

아버지 민제(閔霽)가 죽고 한 달이 지난

1408년 10월 그들의 죄를 비난하는 교서를 반포하고 곧 삼척진(三陟鎭)에 옮겨졌다.

그 뒤 이무(李茂)의 옥으로 다시 제주도에 옮겨지고,

예문관태학사 조호(趙瑚)의 난언이 드러난 지 2일 만에

독곡 성석린(獨谷 成石璘) 등의 강경한 처단 건의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명하였다.

 

민씨 형제의 옥을 만들어내고 확대시킨 주동 인물은 이숙번(李叔蕃)이었다.

개국 공신인 이숙번 일파가

고려의 구가세족(舊家世族)인 호정 하륜(浩亭 河崙)을 중심으로 한 일파를 제거하려는

정치 파동 속에서 민씨 형제의 옥이 일어났던 것이다.

태종 또한 이 옥을 외척 제거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 1등으로 여성군(驪城君)에 봉하여지고,

1403년 예문관 총제로서 왕명에 따라 <시전>을 자본으로 하여 구리로 활자 수십만 자를 주조하였다.

일찍이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의 음모 사실을 태종에게 밀고한 바 있었으나 후에

1410년 이화(李和) 등의 탄핵을 받아 장단에 유배된 뒤 형 민무구(閔無咎)와 함께 사약을 받았다.

여성군 민무질(驪城君 閔無疾) 배위 정경부인 청주한씨

정경부인 청주한씨 묘역후경, 여성군 민무질과 上下 묘로 되어 있다.

 

여성군 민무질(驪城君 閔無疾) 직계후손 납골묘

 

驪興閔公無疾神道碑

여흥민공무질신도비

 

推忠協贊靖難定社佐命功臣正憲大夫 驪城君神道碑銘

추충협찬정난정사좌명공신정헌대부 여성군신도비명

 

司僕寺正全歸堂 閔公矗之墓

사복시정전귀당 민공촉지묘

 

副司正 閔公森之墓

부사정 민공삼지묘

 

修義副尉閔公應禎之墓

수의부위민공응정지묘

 

贈嘉善大夫兵曹參判閔公協之墓

증가선대부병조참판민공협지묘

 

贈工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閔公宗義之墓

증공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민공종의지묘

 

//여흥민씨 여성군 민무질(驪城君 閔無疾) 가계//

   증조부 민적(閔頔)

할아버지 대광 여흥군 민변(大匡 驪興君 閔忭)( ? ~ 1377)

   아버지 여흥부원군 어은 민제(漁隱 閔霽, 1339~1408)

   어머니 부부인 여산송씨, 여량군(礪良君) 송선(宋璿)의 따님

            형님 민무구(閔無咎, ? ~ 1410)

                    조카 민추(閔麤)

            동생 민무휼(閔無恤, ? ~ 1416)

            동생 민무회(閔無悔, ? ~ 1416)

                    조카 민뇌(閔磊)

            누이 태종비 원경왕후(元敬王后)

             여성군 민무질(驪城君 閔無疾), 여흥민씨 12세

             배위 정경부인 청주한씨, 한성부윤 한상환(韓尙桓)의 따님

                    장남 정귀당 민촉(全歸堂 閔矗) 사복시정

                             손자 민연은(閔然誾), 민기(閔奇), 민흥(閔興), 민섭(閔攝)

                    차남 부사정 민삼(閔森)

                            손자 증 호조참의 민희념(閔希念)

                                   증손자 현령 민변(閔蕃) 민무(閔茂)

                                         현손 수의부위 민응정(閔應禎)

                                                 5대손 증 병조참판 민협(閔協)

                                                         6대손 증 공조참판 민종의(閔宗義)

                    삼남 민분(閔犇)

                            손자 민오(閔悟)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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