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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도갑사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

종교

by 碧巖 2021. 11. 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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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詵國師碑閣

도선국사비각

道岬寺 道詵· 守眉碑

도갑사 도선. 수미비

보물 제1395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 (도갑리 8)

도갑사 도선·수미비(道岬寺道詵·守眉碑)는 『금석집첩(金石集帖)』에 실려있다.

보물 제1395호 도선수미비는 도갑사를 창건한 통일신라시대의 도선국사와

도갑사를 중창한 조선시대 수미왕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인조 14년(1636년)에 시작하여 효종 4년(1653) 17년 만에 완성한

전체 높이 517㎝의 거대한 비(碑)로 현재는 보호각 안에 있다.

도선·수미비 전면 제액

月出山 道岬寺 道詵國師 守眉大禪師碑銘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비명

비제

月出山 道岬寺 道詵國師 守眉大禪師碑銘 幷序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비명 병서

전면 우측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 觀象監事 世子師 李景奭撰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이경석찬

正憲大夫 禮曹判書兼知經筵 春秋館事 弘文館提學 世子右賓客 吳竣 書

정헌대부  예조판서겸지경연  춘추관사  홍문관제학  세자우빈객  오준 서

資憲大夫刑曹判書 兼知義禁府春秋館事 藝文館提學 世子右賓客五衛都摠府都摠管金光煜 篆

자헌대부형조판서  겸지의금부춘추관사   예문관제학  세자우빈객 오위도총부도총관  김광욱 전

전면 좌측 작은글씨 비문

通訓大夫 弘文館副修撰 李壽仁 撰

통훈대부  홍문관부수찬  이수인 찬

成均進士 金時暕 書

성균진사  김시간 서

후면 제액

國師 道詵碑 陰銘

국사 도선비 음명

비제

有明朝鮮國 全羅道靈巖郡 月出山道岬寺 國師道詵碑 陰銘幷序

유명조선국  전라도영암군  월출산도갑사  국사도선비  음명병서

通訓大夫 弘文館校理 兼知製敎 鄭斗卿 撰

통훈대부  홍문관교리  겸지제교  정두경 찬

成均進士 金棐 書

성균진사  김비 서

成均進士 金時暕 篆

성균진사  김시간 전

비문에 의하면 본래 이곳에 있던 도선국사의 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웠다 한다.

비문은 전면 좌,우측에 2개, 후면(음기)에 1개 등 모두 3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 비석은 『금석집첩(金石集帖)』에는 전면의 탁본만 있고, 후면(음기)의 탁본은 없다.

도선국사(道詵國師)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활동한 승려로,

속성은 김(金), 호는 옥룡자(玉龍子), 전남 영암 출생이다.

15세에 지리산 화엄사(華嚴寺)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중국에 가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문수사(文殊寺) 터에 도갑사(道岬寺)를 세웠다.

그 후 전국 명산대찰을 두루 섭렵하고 나서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음양지리설, 풍수사상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수미선사(守眉禪師)는

조선 전기의 승려로 속성은 최(崔), 본관은 고랑주(古朗州), 호는 묘각(妙覺)이다.

13세에 출가하여 영암 월출산 도갑사(道岬寺)에서 수행하고 20세 때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서 신미(信眉)와 함께 수도에 정진하였으며, 선교를 부흥시키는 데 힘썼고,

1457년(세조 3년)에 도갑사로 들어가 절을 중수하였으며, 1458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도선· 수미비(道詵· 守眉碑) 옆의 부도군 진화문(真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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