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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사락정(四樂亭), 사락정 전철(四樂亭 全轍), 정선전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2. 8. 1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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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락정(四樂亭)

경남 거창군 마리면 영승중앙길 21-8, (영승리 1213)

우농, 우상, 우어, 우초(右農, 右桑, 右漁, 右樵)

효도마을 지정비

영승(迎勝)마을은

1543년 중종38년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께서 영송(迎送)을 영승(迎勝)으로 고쳐 부른 마을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의군에서 거창군으로 편입됐으며

정선전씨(旌善全氏), 광주이씨(廣州李氏), 선산김씨(善山金氏), 파평윤씨(坡平尹氏)등이 세거하였다.

영승마을에 전래되는 효,열 행적의 유적으로

① 왜적도 꺽지 못한 정씨 부인의 절개

② 어머니를 안고 정절을 지킨 정선전씨의 죽음

③ 욕보다 죽음을 택한 열녀 완산이씨에 대한 정려비,각(旌閭碑,閣)들이 잘 보존되어

    생활속에 효열정신이 잘 전승되며 근년까지 많은 효행 표창이 수여된 모범 마을이다.          2012.12

 

 

功績碑공적비

이 비는 일본에 거주하는 전병수(全炳洙)가 14대조 장수지소(藏修之所)인

사락정(四樂亭) 제3차 중건을 거액의 성금으로 단독추진하여 조상의 얼을 빛나게 하였음.

이는 남다른 숭조애종 정신의 발휘로 모든 종인의 귀감이 되므로

그 공을 높이 찬양코저 전체후손의 뜻을 모아 이 비를 건립한다.                1998.  7.    .   사락정공후손일동

 

사락정(四樂亭)

사락정(四樂亭)은

문순공 퇴계 이황(文純公 退溪 李滉, 1501~1570)의 장인 권질(權 礩,1483~1545)이

예안의 유배지에서 해배되어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로 옮겨 살면서 자주 들리던 정자로

이곳 영승마을은 정선전씨의 집성촌으로

퇴계의 처 외숙 사직 전철(全轍,1481~1558)이

기묘사화시 낙향하여 선조가 물려준 초가 정자를 기와로 중수하여

형님인 진사 전식(全軾)과 같이 전원생활을 즐기던 정자라 한다.

권질은 사위 퇴계 이황에게 편지를 전하며 자신이 자주들리는 정자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여

퇴계는 시골에서 누릴수 있는 네가지 즐거움(농사, 누에치기, 나무하기, 고기잡기)이라는 의미의

사락정(四樂亭)이라 이름 짓고 시 한수를 장인에게 보냈다.

1543년 43세의 퇴계가 장인 권질의 회갑연에 왔다가 이곳에서 며칠 머무를 때

이곳의 지명이 영송촌(迎送村)이라 하니 고상하지 못하다 하여 영승촌(迎勝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장인 권질의 회갑을 축하하고자 영승촌을 방문한 기념으로

영승촌 조춘(迎勝村 早春) 이란 시를 남기었다.

마을 개울가에 세워져 있던 사락정은 1998년 중수되었으며 퇴계의 시를 차운한 시판들이 걸려 있다.

 

정자 이름을 ‘사락정(四樂亭)’이라 함은 시골의 네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우농, 우상, 우어, 우초(右農, 右桑, 右漁, 右樵)라,

즉 농사짓기와 누에치기, 고기잡기와 나무하기의 네 가지라 하네

 

●右農(우농) 농사짓기

我識田家樂

아식전가락-----나는 농가의 즐거움을 아니

春耕破土烟

춘경파토연-----봄에 밭을 갈면 흙먼지 일고

苗生時雨後

묘생시우후-----비 뒤에 새싹 돋아나고

禾熟晩霜前

화숙만상전-----벼는 늦서리 오기 전 익는다네

玉粒充官稅

옥립충관세-----옥 같은 쌀은 나라의 조세 채우고

陶盆會俗筵

도분회속연-----오지술동이는 마을 사람 잔치에 알맞네

何如金印客

하여금인객-----어떠한가 이러한 벼슬로

憂患送流年

우환송류년-----근심걱정을 세월속에 보내네

 

●右桑(우상) 누에치기

我識蠶家樂

아식잠가락-----누에치는 집의 즐거움을 아는가

年前曲簿修

연전곡부수-----지난해 채반을 수리해 두었네

光陰催種浴

광음최종욕-----누에씨 물에 담그는 때 다가오면

眠起趁桑柔

면기진상유-----잠 깨자마자 어린 뽕잎 따러가네

已喜全家煖

이희전가난-----온 가족 따뜻이 입는 것 기쁜데다

無憂欠債酬

무우흠채수-----빚도 다 갚았으니 걱정없네

何如紈綺子

하여환기자-----어떠한가 비단옷 걸친 여인이

嬌艷妬閒愁

교염투한수-----아리따이 차려입어 질투에 근심하는 것과는

 

●右漁(우어) 고기잡기

我識漁家樂

아식어가락-----어부로 사는 집의 즐거움을 아는기

柴門住岸傍

시문주안방----사립문 낸 물가의 집에 사네

禽魚慣情性

금어관정성-----물새와 고기들의 정성에도 익숙하고

雲月老滄浪

운월노창랑-----구름과 달 맑은 물결 함께 늙어가네

喚酒村酤美

환주촌고미-----술을 사오면 촌 술도 맛이 나고

烹鮮澗芼香

팽선간모향-----생선을 삶으면 시내 나물도 향기롭네

何如萬錢客

하여만전객-----어떠한가 만전(萬錢) 어치 먹는 사람이

覆餗禍難量

복속화난량-----망할 때 화(禍) 헤아릴 수 없는 것과는

 

●右樵(우초) 나무하기

我識樵人樂

아식초인락-----그대는 나무꾼의 즐거움을 아는가

生居洞裏村

생거동리촌-----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相呼入雲遠

상호입운원-----서로 불러 구름 속 멀리 들어갔다가

高擔出山昏

고담출산혼-----한 짐 가득지고 어두워야 산을 나오네

愛伴心同鹿

애반심동록-----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슴과 같고

忘形貌似猿

망형모사원-----치장을 잊으니 모습은 원숭이와 같아라

何如名利子

하여명리자-----어떠한가 명리를 쫓는 자가

平地見波翻

평지견파번-----평지에 풍파를 당하는 것과는

 

迎勝村 早春 영승촌 조춘

문순공 퇴계 이황(文純公 退溪 李滉, 1501~1570)이

장인 권질(權礩,1483~1545)의 회갑을 축하하며

영승촌을 방문한 기념으로 영승촌 조춘(迎勝村 早春)이란 시를 남기었다.

 

◆ 『迎勝村留題四樂亭癸卯正月初四日

영승촌에 머무르며 사락정을 제목으로 짓다.   1543년 1월 4일

 

迎勝村舊名迎送。爲其不雅。改送爲勝。取其聲相近也。村有泉石之勝。且時方早春。

景物向新。故謂之迎勝。所以記一時之勝也。四樂亭。臨溪新構。往年余所名而寄題者也。

영승촌의 옛 이름은 영송이다.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여

‘送(송)’을 ‘勝(승)’으로 바꿈에 있어 소리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

이 마을은 산수(山水)가 빼어나고 또한 마침 이른 봄이라 경치가 새로워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승(迎勝)’이라 하였다.

한 때의 좋은 경치를 기록하는 것은,

사락정(四樂亭)이

시내 곁에 새로 지었는데 몇 해 전에 내가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어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迎勝村 早春 영승촌 조춘

迎勝村中迎早春

영승촌중영조춘---영승 마을에서 이른 봄을 맞이하니

眼中梅柳已爭新

안중매류이쟁신---눈앞에 매화와 버들 이미 새싹을 다투네

東風欲動先林杪

동풍욕동선임초---봄바람 먼저 나뭇가지 끝에 찾아오고

北雁將歸且水濱

북안장귀차수빈---북쪽 기러기는 물가에서 막 돌아가려하네

誰作月潭揮弄客

수작월담휘롱객---누가 농월담(弄月潭)의 달빛을 희롱하는 객이 되겠는가

我曾雲構寄題人

아증운구기제인---나는 일찍이 운구에 기문을 지은 사람이네

尊前莫說霜臺事

준전막설상대사---술동이 앞에서 어사대의 일 말하지 말게

野趣方欣愜素眞

야취방흔협소진---야인의 아취 흔쾌하여 본디 참모습에 흡족하네

弄月潭在前溪

농월담재전계------농월담은 앞 시내에 있다

 

四樂亭全先生遺蹟碑

사락정전선생유적비

//정선전씨 사락정 전철(四樂亭 全轍) 가계//

 

고조부 전법판서 전오륜(全五倫)

증조부 강양군수 상호군 전맹겸(全孟謙)

   조부 성창현감 전유의(全由義)

   부친 첨지중추부사 전수공(全守恭)

   모친 숙부인 성산배씨, 진사 배윤순(裵允詢)의 따님

               사락정 전철(四樂亭 全轍,148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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