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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도산서원 4-천연대(天淵臺), 시사단(試士壇), 추로지향(鄒魯之鄕), 남반(南沜) 남녁물가

구름에 달

by 碧巖 2022. 8. 1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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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대(天淵臺)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여 산책하던 곳이라 한다.

퇴계는 동쪽 절벽을 천연대(天淵臺), 서쪽 절벽을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라 불렀다.

천연대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라는

연비려천 어약우연(鳶飛戾天 漁躍于淵) 구절에서 하늘 ‘천’과 연못‘연’을 따서 지었다.

천광운영대는 주자(朱子)가 지은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에 나오는

‘하늘과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도는구나’ 라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空排徊)’ 구절에서 이름을 지었다.

두 이름 모두 주변의 절경을 나타내고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삼아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다.

천연대에서 바라본 시사단

시사단(試士壇)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556

시사단(試士壇)은 조선시대 특별 과거시험을 보았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과 비각이 있는 곳이다.

1792년 정조(재위1776∼1800)는 평소 존경하던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위해

이조판서 극옹 이만수(屐翁 李晩秀)에게 명하여,

이곳에서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고자 과거시험인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신설하여 인재를 선발하였다.

시험 응시자만 7천여 명에 이르렀고 문과급제 2등 등을 선발하였다.

1796년(정조20년) 당시의 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단(壇)을 마련하여 비를 세웠는데

영의정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試士壇)이라 하였다.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도산서원과 마주보이는 강변의 소나무 우거진 곳에 비각이 있었으나,

1974년에 안동댐 건설 이후 원래 있던 자리에 10m의 높이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옛비각과 비를 원형대로 옮겨지었다.

鄒魯之鄕추로지향

이 전서(篆書) 추로지향과 가는 해서(楷書)는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孔德成, 1920~2008)박사가 도산서원 원장 재임시에 쓴 것이다.

예로부터 예안과 안동을 추로지향이라 일컬은 것은

멀리 중국의 공자와 맹자가 살고 있던 노(魯)와 추(鄒) 두 나라에 비한 것이며 이 말은 성인이 살고 있던 고장이란 뜻이다. 해서의 국역은 다음과 같다.

경신년 12월 8일 삼가 도산서원에 나아가 퇴계선생 신위에 배알하고

강당에 올라 까치산 원규를 읽고 흠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여 이를 돌에 새겨 기록하다. 공부 공덕성은 쓰다.

眞城 李家源 撰幷書 진성 이가원 찬병서

1981년 11월 25일   陶山書院도산서원

南沜남반 남녁물가       퇴계 이황

石之揭揭

석지게게      바위 길쭉하고

樾之陰音

월지음음      숲이 무성하네

于江之沜

우강지반      강가 언덕에서

納凉蕭森

납량소삼      시원하게 바람쐬네

異石當山口

이석당산구       기이한 바위 산 어귀에 있고

傍邊澗人江

방변간인강       그 곁에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드네

我時來盥濯

아시래관탁       때로는 내가 와서 세수하고 씻으니

淸樾興難雙

청월흥난쌍       맑은 숲속에 흥취가 짝이 없도다

퇴계 이황(1501~1570)

호는 퇴계, 퇴도, 자는 경호, 시호는 문순공,

1501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탄생

1502년 일곱달 만에 아버지 별세

1521년 김해 허씨, 진사 허찬(許瓚)의 따님과 혼인

1523년 태학(성균관)에서 수학

1527년 경상도 향시 진사초시, 생원초시 합격,

            부인 김해허씨 별세

1530년 안동 권씨와 재혼

1532년 문과초시 2등 합격

1534년 문과 급제

1536년 선무랑과 성균관 전작, 호조좌랑 임명

1537년 어머니 별세로 관직에서 물러남

1542년 어사로 충청도, 강원도 감찰

1543년 신병으로 관직 사임

1547년 안동부사 재수되었으나 사임

1548년 단양군수, 풍기군수, 단양팔경 선정

1549년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으로 사액받음

1553년 성균관 대사성

1558년 23세의 율곡 이이가 계상서당 방문

1561년 도산서당 완공

1568년 의정부 우찬성과 판중추부사 대제학 겸임

1570년 한서암에서 별세

1576년 문순공 시호 내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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