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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신안군부인이씨, 하원군 이정(河原君 李鋥)의 계배,동지돈녕부사 이정한(李挺漢),동지돈녕부사 이홍일(李弘逸), 도정궁 군주(都正宮 君主)

구름에 달

by 碧巖 2023. 12. 2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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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부인 이씨, 하원군 이정(河原君 李鋥)의 계배, 신안군부인 성주이씨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산205-13

新安郡夫人李氏之墓

신안군부인이씨지묘

하원군 이정(河原君 李鋥)의 계배 신안군부인이씨, 신안군부인 성주이씨

하원군 이정(河原君 李鋥,1545~1597)

조선 중기 왕손(王孫)으로 덕흥대원군의 첫째 아들이며,

제14대 선조(宣祖) 임금의 큰 형님이다.

1591년(선조24) 광국원종공신 1등에 특별히 책록되고,

1604년(선조36) 사후에  임진왜란 때의 공로로  호성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다.

1614년(광해군6)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2등(衛聖原從功臣二等)에 추록되었다.

 

휘(諱)는 정(鋥), 자(字)는 백강(伯剛)이다.

1545년(인종1) 한성 서부 인달방 도정궁(都正宮)에서 탄생하였으며,

1558년(명종13)에 하원정(河原正)에 책봉되었고,

1561년(명종16)에 복기(服期)를 마치고, 승헌대부(承憲大夫) 하원군(河原君)에 봉작되고

이해인 1561년 17세에

영의정인 경헌공 인재 홍섬(景憲公 忍齋 洪暹)의 따님인 남양군부인 홍씨와 길례를 올려

슬하에 자녀 3남 1녀를 두었다.

초배인 남양군부인 홍씨가 졸하자

선전관 증 이조판서 이의로(李義老)의 따님인 신안군부인 이씨와 재혼하였으며

신안군부인과의 슬하에는 자녀는 두지 못하였고, 부실 4명에서 6남 5녀를 두었다.

하원군 이정(河原君 李鋥)의 계배 신안군부인 이씨 묘역후경

 

동지돈녕부사 이정한(李挺漢)

嘉善大夫同知敦寧府事李公挺漢之墓 贈貞夫人坡平尹氏之墓 貞夫人靑松沈氏之墓

가선대부동지돈녕부사이공정한지묘 증정부인파평윤씨지묘 정부인청송심씨지묘

동지돈녕부사 이정한(李挺漢,1601~1671)

덕흥대원군의 현손자이고 도정궁 제4대 사손이자 제5대 주인이다.

1601년(선조34) 한성부의 당은군 이인령(唐恩君 李引齡) 사저에서

응천군 이돈(凝川君 李潡)과 감사 이욱(李稶)의 따님인 성산부부인 이씨사이에서 태어났다.

1617년(광해군9) 아버지 응천도정을 잃고 덕흥대원군 사손이 되었다.

1626년(인조4) 인조 즉위 직후인  7월에 작은할아버지 진성군 이해령(珍城君 李海齡) 등이

'덕흥대원군의 사손이지만 왕의 4대 후손 이후로는 종친 대우를 받지 못해

돈녕부 도정(都正)의 직을 세습하는 제도가 끊겼으니 이를 다시 복구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돈녕부는 임금과 왕비의 친인척을 예우하기 위한 부서였다.

'도정'은 돈녕부의 정3품 당상관 관직으로,

덕흥대원군의 후손들이 대대로 세습하다가 이정한부터 왕족 지위를 잃으면서 제수받지 못했다.

이에 인조가, 덕흥대원군의 봉사손은 대대로 도정을 세습하라는 명을 내려

이정한은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제수받을 수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인 1640년(인조18) 1월에는

오위도총부 부총관(副摠管)을 거쳐 도총관(都摠管)이 되었고

이후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관리직을 맡았다.

현종 즉위 후에는 1663년 2월에는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의 건의로 파직당했다가

같은 해 6월에 다시 조정으로 복귀한 뒤 1665년에는 동지돈녕부사에 임명되었다.

1671년(현종12년)에  수 71세로 별세하여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덕송리, 지금의 현 남양주시 별내동 덕릉마을 수락산 뒤편에 묻혔다.

정실부인이 두명으로 승지 윤청(尹暒)의 따님인 정부인 파평윤씨 사이에서 3녀를, 

사별 후 재혼한 증 선교랑 심욱(沈勗)의 따님인 정부인 청송심씨 사이에서 역시 3녀를 두었다. 

심씨부인 사이에서 난 장녀이자 이정한(李挺漢)의 4녀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양아들 송기태(宋基泰)와 혼인했고

이정한과 심씨 부인의 막내 딸은

현종의 왕비이자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의 동생인 판서 김석연(金錫衍)과 혼인하여

청풍부원군 김우명(淸風府院君 金佑明)과 사돈지간으로 당대 유력 가문들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아들이 없기 때문에 동생 이석한(李錫漢)의 장남인 이홍일(李弘逸)로 대를 이었다.

동지돈녕부사 이정한(李挺漢)  묘역후경

 

 

 

동지돈녕부사 이홍일(李弘逸)

嘉義大夫同知敦寧府事李公弘逸之墓 貞夫人杞溪兪氏之墓

가의대부동지돈녕부사이공홍일지묘 정부인기계유씨지묘

동지돈녕부사 이홍일(李弘逸,1640~1718)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사안(士安)이다.

증조부는 당은군(唐恩君) 이인령(李引齡)이고, 할아버지는 응천군 이돈(凝川君 李潡)이다.

생부는 증 이조판서 이석한(李錫漢)이며

동지돈녕부사 이정한(李挺漢,1601~1671)에게 입적되였다.

어머니는 호군 김광익(金光翼)의 딸 경주김씨이다.

동생은 이홍달(李弘達)과 삼도수군통제사와 훈련대장을 지낸 이홍술(李弘述)이다.

배위는 정부인 기계유씨로

이조판서 기평군 유백증(杞平君 兪伯曾)의 증손녀이며 정랑 유삼(兪槮)의 따님이다.

1640년 인조18년에 통덕랑 증 이조판서 이석한(李錫漢)의 장자로 출생하여 사마 양시에 급제 후

현종(顯宗)의 명으로 백부인 이정한(李挺漢,1601~1671)의 사자(嗣子)가 되어

도정궁(都正宮)의 사손(嗣孫)을 이어 받았다.

1673년 돈녕부도정을 거쳐 의주와 황주의 영위사 등를 지냈으며 이후

1696년 숙종22년에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올랐다.

1709년 가의대부로 올라

1718년 숙종44년에 수 79세로 졸 하였다.

묘비는 1736년 손자 이명익(李明翼)이 찬 하였다.

역대 도정궁 군주(都正宮 君主)

덕흥대원군 이초(德興大院君 李岧,1530~1559)

1대 하원군 의헌공 이정(河原君 懿獻公 李鋥, 1545~1597)

                              동생 하릉군 이인(河陵君 李鱗,1546~1592),

                              동생 14대왕 선조(宣祖), 하성군 이균(河城君 李鈞,1552~1608)

       초배 남양군부인 남양홍씨, 영의정 경헌공 인재 홍섬(景憲公 忍齋 洪暹)의 따님, 3남 1녀

       계배 신안군부인 성주이씨, 선전관 증 이조판서 이의로(李義老)의 따님, 무후(无後)

2대 종실 당은군 이인령(唐恩君 李引齡, 1562~1615)

3대 종실 응천군 이돈(凝川君 李潡, 1579~1617)

4동지돈녕부사 이정한(李挺漢,1601~1671)

5동지돈녕부사 이홍일(李弘逸,1640~1718)

6대 돈녕도정 증 참판 이세정(李世禎, 1661~1721)

       진사 이명좌(李明佐, 1681~1722)

7대 돈녕도정 증 이조판서 이명회(李明會, 1685~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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