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청간정(淸澗亭)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동해대로 5110, (청간리 93)
청간정(淸澗亭)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동팔경의 하나
청간정은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릉정상에
팔각지붕의 2층인 중충누정(重層樓亭)의 형식으로 지어진 특이한 형태를 자랑한다.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된 관동팔경(關東八景)중의 일경이라 한다.
1560년 명종15년에 간성군수 최천(崔倩)이 중수하고,
1662년(현종3)에 군수 정양(鄭瀁)이 보수하고 옆에 작은 누각을 세워 좀 더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1884년 헌종10년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소실된 정자를 군수 정재용(鄭在容)이 고쳐지었으며,
1863년 철종14년에는 군수 이원영(李源永)이 다시 지었다.
그 후 태풍과 화재로 인하여 돌기둥만 남아 방치되다
1928년 봄 토성면장 김용집(金溶集,1868~1942)의 발기로 현 위치에 중수하여 정자를 재건하였다
1953년 5월 15일 이승만(李承晩,1875~1965) 대통령의 지시로 정자를 보수하였으며
1980년 8월 1일 최규하(崔圭厦,1919~2006) 대통령의 동해안 순시 때 내려진
보수정화사업 지시에 따라
1981년 정자를 완전 해체 보수하면서
주변 정화조경 등 부대사업을 하여 문화재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특히, 청간정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아침 해돋이 광경과
달뜨는 저녁의 장면은 마치 뭉게구름이 일다가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파도는 가히 절경이다.
1953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은 청간정에 올라 반도 동쪽에 땅이 끝난 곳이라 하였으며
“봉래(蓬萊)가 가까워 선계(仙界)가 여기구나.
진시황(秦始皇) 그 옛날에 무슨 락(樂) 구(求) 했으며
한제(漢帝)는 얼마나 선루(仙樓)를 꿈꾸었나
예맥의 청산(靑山)이 이곳에 우뚝솟아,
부상(扶桑)의 붉은 해 난간에 뜬다.
난중(亂中)의 풍월(風月)의 보살핌이 없어.
백구(白驅)와 어옹(漁翁)이 풍월(風月)의 주인(主人)일세.”
라는 시조를 남겼으며
또한, 관동팔경가의 둘째 소절에는
“36봉필기(三十六峯筆記)하고 간성석경(杆城石景) 올라보니
명사여설(明沙如雪) 만경호(萬景湖)에 청간정(淸澗亭)이 여기로다.” 라고 노래했다.
청간정 현판(淸澗亭 懸板) =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 1875~1965)
현종때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좌상으로 재직시
금강산(金剛山)을 들렸다가 이곳을 지나며 쓴 친필(親筆)이라 하는데...
<청간정,淸澗亭>을 노래한 최고의 한시라고 하는
"문정공 택당 이식(文靖公 澤堂 李植, 1584~1647)"선생이 고성현감 재직 시 쓴 글.
天敎滄海無潮汐
천교창해무조석===하늘의 조화로 바다엔 밀물과 썰물이 없는데
亭似方舟在渚涯
정사방주재저애===방주같은 정자 하나 물가에 서있네
紅旭欲昇先射牖
홍욱욕승선사유===붉은 해 솟기 전에 아침 노을 창을 비추고
碧波纔動已吹衣
벽파재동이취의===푸른 물결 일렁임에 옷자락이 나부끼네
童男樓艓遭風引
동남루접조풍인===어린아이 탄 배 순풍에 간다 해도
王母蟠桃着子遲
왕모반도착자지===왕모의 복숭아 익는 시기 아직이여라
怊悵仙蹤不可接
초창선종불가접===선인의 자취 접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倚闌空望白鷗飛
의란공망백구비===난간에 기대서 백구 나르는 하늘을 보네
현석 최규하(玄石 崔圭夏, 1919~2006)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현석 최규하(玄石 崔圭夏) 의 글
嶽海相調古樓上
악해상조고루상===설악과 동해 서로 조화이루는 오래된 '청간정'에 오르니
果是關東秀逸景
과시관동수일경===과연 관동지방 빼어난 일품의 경치를 보여주노라
庚申盛夏 尋淸澗亭 大統領 崔圭夏
경신성하 심청간정 대통령 최규하 (1980년 경신년 뜨거운 8월)
청간정 기념비
토성면장 김용집(金溶集, 1868~1942, 토성면장 재임 1925~1930),
숙인 밀양인 박복선(朴福善),
숭정대부 광산인 김두현(金斗鉉)
여기 세 개의 비석은
1929년 7월에 청간정 중수과정에서 공로가 있는 분들께 토성면민들이 감사하는 의미로
1930년 4월과 5월에 각각 세워진 기념비이다.
본래 청간정은 자연물인 만경대 앞에 있었으나
1884년 4월에 화재로 무너지자 12개의 주춧돌만 남긴 채 40연간 답보 상태에 있다가
당시 토성면장 김용집(金溶集)의 발의로 지근의 위치로 옮기는 과정에 이르러
토성면 유지 두 분의 협조로 청간정을 중수하게 되었다.
기념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숙인 밀양박씨 복선(福善)은 6백 연금을,
숭정대부 광산김씨 두현(斗鉉)은 5백 연금을 기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토성면장 김용집은 중수기에 연혁과 취지의 목적을 남기고 있는데 말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후대 사람들이 이어가며 수리한다면 이 정자의 수명은 저 주춧돌과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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