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普覺國師塔碑)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
청룡사지 보각국사탑-------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국보 제197호 -------------------------------------------보물 제656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普覺國師塔) 앞 사자석등
충주 청룡사지 사자 석등
이 석등은 각 부재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지대석 윗면을 하대석이 꼭 들어맞게 파서 하대를 놓았는데
하대는 1개의 사각형 돌위에 조성한 사자가 엎드린 형태이다.
사자는 두 눈과 코가 웅건하고 상하 이빨 끝과 앞 뒤
네발이 날카롭게 조각되었으며 꼬리도 유려하게 표현하였다.
뒤쪽에는 안장을 놓은 듯 좌우로 길게 양각하고 그 안쪽에는 2줄의 선을 돌렸으며
꼭대기에 4각형으로 1단의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는 한 개의 돌로 된 4각형으로 각면에는 2줄의 안상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삼산형 원좌를 중심하여 유려한 화염문을 조각하였다.
석등의 조각이 수려하여 보물 제656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普覺國師塔) - 국보 제197호
청룡사지 보각국사탑(普覺國師塔)
석탑비에 의하면 속성 조씨(趙氏)이고 자가 무작(無作), 호는 환암(幻庵).
용주(龍州,평안북도 용천)출신으로 부친은 숙령(叔領)이다.
보각국사 환암 혼수(普覺國師 幻庵 混修, 1320~1392)가 태조 원년(1392)에 73세로 입적하자
태조가 내신으로 하여금 칙명으로 조성토록 하여
양촌 권근(陽村 權近)이 비문을 짓고 석천택이 써서 태조3년(1394)에 세우고 탑명을 정혜원융이라 하였다.
탑을 중심으로하여 뒤에는 보각국사비를 세우고 앞에는 배례석과 석등을 장엄하게 갖추었다.
탑은 9각 원당형으로서 지대석 위에 하대, 중대, 상대를 얹고 그 위에 8각의 탑신과 옥개석을 갖춘 우수한 부도탑이다. 소문의 8각 지대석위에 놓인 8각의 하대는 어형 2단의 받침위에 얹혀 복연 16판인데 판 안에 삼산형의 화판이 조식되어 있으며 1단의 굄이 조각되어 있다.
보각국사 혼수(混修)는 1320년(고려 충숙왕7)에 태어나 1392년에 입적한 승려이다. 12세에 출가해 승려가 되었으며, 1341년(고려 충혜왕2) 승과(僧科)에 급제하였다. 1348년(고려 충목왕 4) 금강산에 들어가 2년간 수행하였고, 이후 선원사(禪源寺)에서 능엄경(楞嚴經)을 연구하였다. 1374년(고려 공민왕23) 내불당(內佛堂: 왕실 사찰)에서 공민왕에게 불법를 가르쳤으며, 이후 송광사(松廣寺)에서 주지를 지냈다. 1383년(고려 우왕9) 임금의 스승이 되는 고승에게 내리던 최고의 법계(法階)인 국사(國師)로 추대되었으며, 충주 개천사의 주지가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축하표문을 올린 후,
1392년 태조 1년에 청룡사(靑龍寺)로 와서 연회암을 짓고 머무르다 9월 18일에 문인에게 유서를 쓰게 한 다음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청룡사 연회암에서 불경간행에 힘을 기울였는데, 당시 간행된 불교서적으로「선림보훈(보물 제700호)」,「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보물 제720호)」「호법론(보물 제702호)」「선종영가집(보물 641호)」등이 있다. 한 사찰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서적을 간행한 사실은 드문 경우로, 청룡사 간행본은 충주의 불교문화와 인쇄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보각국사 혼수가 입적하자 태조는 혼수의 승탑을 건립하라는 왕명과 함께 ‘보각(普覺)’이라는 시호(諡號)와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는 탑호(塔號)를 내렸다.
태조의 명으로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청룡사지에 부도가 건립되었는데 보각국사 정혜원륭탑이라 칭하였다. 탑비는 2년 후인 1394년에 건립하였는데,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승려 천택이 썼다. 정혜원륭탑은 국보 제197호, 정혜원륭탑비는 보물 제658호, 탑 앞에 있는 사자석등은 보물 6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의 후면에는
남양백 홍영통(南陽伯 洪永通)
문하우시중 김사형(門下右侍中 金士衡)
검교문하시중 이무(檢校門下侍中 李茂方)
판개성부사 우인렬(判開城府事 禹仁烈) 등 100여명의 각자가 있는데,
보호가 안되어 자연손상으로 점점 글자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비의 후면에는
남양백 홍영통(南陽伯 洪永通)
문하우시중 김사형(門下右侍中 金士衡)
검교문하시중 이무(檢校門下侍中 李茂方)
판개성부사 우인렬(判開城府事 禹仁烈) 등 100여명의 각자가 있는데,
충주시의 문화재 관리가 안되어 자연손상으로 점점 글자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혹여 비문의 전체 내용이나 명단등을 정리한 것이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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