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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文忠公 谿谷 張維),덕수장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25. 3. 3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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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文忠公 谿谷 張維)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산1-5

 

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文忠公 谿谷 張維,1587~1638)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어머니는 판윤 박숭원(朴崇元)의 따님이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고,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며,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1548~1631)의 문인이다.

1605(선조38) 사마시를 거쳐 1609(광해군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612(광해군4) 김직재(金直哉, ?~1612)의 무옥(誣獄)으로 파직되자

안산[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 내려와 해장정사(海莊精舍)를 짓고 12년을 살았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그후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을 지내고

1624(인조2) 이괄(李适)의 난 때 공주로 왕을 호종한 공으로 다음해 신풍군(新豊君)에 봉해졌다.

이때 아들 장선징(張善澂)과 인선왕후를 낳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말년을 보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했고 그 뒤 대제학으로 동지경연사를 겸임했다.

1629년 구포 나만갑(毆浦 羅萬甲,1592~1642)을 신구하다가 나주목사로 좌천되었으며,

1631년 딸을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에게 출가시켰고,

1636년 병자호란 때는 공조판서로서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1586~1647)과 함께 강화론을 주장했다.

1637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모친상(母親喪)으로 끝내 사직하였으며 장례 후 과로로 좋 하였다.

 

천문,지리,의술,병서 등에 능통했고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1564~1635),

상촌 신흠(象村 申欽,1566~1628),

택당 이식(澤堂 李植,1584~1647) 등과 더불어

조선문학의 4대가(四大家)로 불린다.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정묘호란 때 거의 분실되고

계곡만필(谿谷漫筆), (계곡집), 음부경주해(陰符經注解)가 전한다.

효종의 국구(國舅)가 되어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묘는 처음에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현 시흥시 장곡동 산69-2) 

상양산 자락의 선영이 있는 덕수장씨 세장지에 썼다. 

지금도 그 자리에 봉분이 없이 석물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후 1664년(현종 5) 외손(外孫) 현종이 지금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장군재는 효종의 국구였던 장유의 사패지(賜牌地)로서

마을 이름은 그의 성씨와 군호(君號)를 따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靖社功臣 議政府右議政新豊府院君 贈謚文忠張公之墓 永嘉府夫人金氏祔左

정사공신 의정부우의정신풍부원군 증시문충장공지묘 영가부부인김씨부좌

勇通訓大夫行弘文館副校理 知製敎兼 經筵侍讀官 春秋館記主官 善徵泣血 謹識

용통훈대부행홍문관부교리 지제교겸 경연사독관 춘추관기주관 선징읍혈 근지

資憲大夫兵曹判書兼 同知經筵 成均館事 金佐明 謹書

자헌대부병조판서겸 동지경연 성균관사 김좌명 근서

崇禎紀元 戊辰後三十七年甲辰九月□日立

숭정기원 무진후 37년 갑진구월 일 (1664년 9월 일 세우다)

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 묘역후경

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 신도비

議政府右議政 文忠張公 神道碑銘

의정부우의정 문충장공 신도비명

有明朝鮮國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 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유명조선국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世子師行奮忠贊謨立紀靖社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 領經筵事監春秋館事

세자사행분충찬모입기정사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 영경연사감춘추관사

新豊府院君 文忠溪谷張公神道碑銘幷序

신풍부원군 문충계곡장공신도비명병서

大匡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兼世子傅 宋時烈 撰

대광보국숭록대부영중추부사겸세자부 송시열 찬

崇綠大夫靑平尉兼五衛都摠府都摠管 沈益顯 書

숭록대부청평위겸오위도총부도총관 심익현 서

輔國崇祿大夫領敦寧府事兼知經筵事五衛都摠府都摠管光城府院君 金萬基 篆

보국숭록대부영돈녕부사겸지경연사오위도총부도총관광성부원군 김만기 전

崇禎紀元 戊辰後丙辰十月□日立

숭정기원 무진후병진십월모일립 (1676년 10월 일)

장유 선생 묘 및 신도비는 조선시대 분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장유 선생 묘의 망주석은 당대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신도비는 효종의 부마(駙馬) 심익현의 글씨로

조선화된 송설체(松雪體)인 촉체(蜀體)를 매우 잘 써 서예사에 중요한 자료이다.

신도비의 개석 장식이나 전체적인 규모와 양식 면에서

숙종 대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작품으로

조선시대 신도비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팔작지붕의 개석(蓋石)을 올리고

용마루에 두 마리의 용이 똬리를 틀고 앉은 모습을 조각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신도비로 전체 높이가 488cm라 하며,

신도비를 받치고 있는 귀부역시

길이440cm, 높이 136cm, 넓이 246cm로 제일 큰 규모라고 한다.

 

//덕수장씨 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文忠公 谿谷 張維) 가계//

 5대조 사헌부집의 장충보(張忠輔)

고조부 예빈시정 춘추관편수관 유정 장옥(柳亭 張玉,1493~ ?)

증조부 장예원사의 장임중(張任重)

   조부 목천현령 장일(張逸)

아버지 형조판서 증 영의정 덕수부원군 서촌 장운익(西村 張雲翼,1561~1599)

어머니 증 정경부인 밀양박씨, 한성판윤 박숭원(朴崇元)의 따님

           형님 의금부경력 장륜(張綸)

           동생 강화유수 장신(張紳, ?~1637), 인조반정

           신풍부원군 문충공 계곡 장유(文忠公 谿谷 張維,1587~1638)

           배위 영가부부인 김이순(永嘉府夫人 金二順), 우의정 김상용(金尙容)

                   따님 효종의 비(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

                   자 한성판윤 정장공 두곡 장선징(正莊公 杜谷 張善澂,1614~1678)

                   배위 한씨 

                        손자 천안군수 장훤(張楦)

                             증손자 고성군수 장진환(張震煥)

                                  현손 참봉 장지대(張至大)

                                        5대손 현감 장석리(張錫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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