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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세조,수양대군 이방원 --정희왕후 윤씨.

구름에 달

by 碧巖 2015. 6. 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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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의 초입에 조성왕릉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마비

 

 

 

세조 묘역전경

  • 7대 세조(世祖)
  • 생몰년도 : 1417년 ~ 1468년
  • 재위기간 : 1455년 ~ 1468년
  •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1417년(태종 17) 9월 29일 태어났다.
  •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하여 학문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뛰어났다고 전한다.
  • 대군 시절, 세종의 명을 받아 불교 서적 번역을 관장하고, 향악의 악보 정리에도 힘을 쏟았으며,
  • 1452년(문종 2) 관습도감 도제조에 임명되어 국가의 실무를 맡아보기도 했다.
  • 문종이 승하하고 나이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 그는 측근인 권람, 한명회 등과 결탁하여 1453년(단종 1) 10월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선 7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전제왕권제에 가까운 육조직계제를 단행했으며,
  •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을 없앴다.
  • 왕명 출납 기능이 있는 승정원을 강화시키고, 호패법을 복원하였으며, 군제 정비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 세조는 이와 같은 많은 치적을 세워 조선 초기 왕권 확립에 크게 공헌했다.
  • 그러나 사육신으로 불리는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이 단종 복위를 계획한 사건이 발각되자
  • 이들을 모두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선왕이자 조카인 단종을 유배지에서 죽이는 등 수많은 정적의 피를 보았다.
  • 계유정난은 1453년(단종 1) 단종 보위 세력의 정치 주도에 불만을 품은 수양대군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은
  • 한명회, 권람, 홍달손을 집으로 불러 자신이 직접 반대파 세력인 김종서를 제거할 것임을 알렸다.
  • 그리고는 미리 권람을 시켜 김종서의 집을 엿보게 한 후 향정, 유소, 종 임운과 함께 바로 김종서의 집으로 향하였고,
  • 수양대군의 명을 받은 임운은 철퇴를 내리쳐 김종서를 살해하였다.
  • 다음날 새벽,
  • 수양대군은 단종이 있는 시좌소로 가서 환관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단종에게 형식적인 보고를 하였다.
  • 그리고 궐 안이 좁다는 이유를 내세워 재상들이 시종을 두고 혼자 궐내로 들어오게 하여
  • 그들을 순서대로 죽이는 방법으로 미리 작성된 살생부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살육을 시작하였다.
  • 수양대군은 이러한 절차를 거쳐
  • 영의정, 이조판서, 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임하며 실제 정권과 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1455년 6월 2일 단종으로부터 옥새를 건네받고 6월 11일 7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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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묘역 후면에서

     

     

     

    한컷씩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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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왕후 묘역

  •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
  • 생몰년도 : 1418년 ~ 1483년
  • 정희왕후는 판중추원사 윤번의 딸로 1418년(태종 18)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 1428년(세종 10) 수양대군과 혼인하여 낙랑부대부인에 봉해졌으며,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 남편인 세조가 먼저 승하한 뒤 그녀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즉위하였는데,
  • 선천적으로 병약하였던지라 재위 1년 2개월만에 예종 역시 승하하였다.
  • 당시 선왕이 누구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할 것인가를 정하지 않고 승하하게 되면, 그 권한은 대비에게 주어졌다.
  • 정희왕후는 이를 통해,
  •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자신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산군을 왕으로 지목하여 대통을 잇게 했다.
  • 그리고는 예종대의 섭정을 이어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렴청정을 행하게 되었다. 이는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이었다.
  • 1483년(성종 14) 3월 30일 66세의 나이로 온양행궁에서 승하하여 같은 해 6월 12일 광릉 동쪽 언덕에 예장되었다.
  • 조선 선조 때의 이조판서 이기가 쓴 글들을 모은 문집『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 정희왕후 윤씨가 수양대군의 부인이 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 왕실의 혼사를 알아보던 중, 궁궐의 감찰 상궁과 보모상궁이
  • 윤씨 집안에 수양대군에게 적합한 배후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는데,
  • 사실 이때 후보자는 정희왕후의 언니였다고 한다.
  • 그런데 궁중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말에 정희왕후가 어머니 이씨 뒤에 숨어서 이야기를 듣다가 감찰상궁의 눈에 들어
  • 언니보다 정희왕후의 자태가 더 비범하다고 대궐에 알려지며
  • 그녀는 언니 대신 왕실에서 가례를 올리고 낙랑부대부인으로 봉해졌다.
  • 그 후 그녀는 계유정난 당시 사전 정보가 누설되어
  •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손수 갑옷을 입혀 그에게 용병을 결행하게 할 만큼 결단력이 강한 여장부였다.
  • 1468년 그의 아들 예종이 19세에 왕위에 오르자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을 하고,
  • 이후 손자 성종도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이어서 섭정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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