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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대왕태실

구름에 달

by 碧巖 2016. 2. 1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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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예산군 덕산읍 옥계리 태봉산에 있는 헌종대왕(조선 제24대 임금, 1834~1849) 태실

 

 

 

 

 

 

 

지난 2009년 복원한 헌종태실 전경(귀부석 위 태실비 자리가 비어 있다).

 

 

 

 

▲ 옥계저수지 수심 3~4미터 아래에서 찾아낸 태실비 일부.

 

 

1847년 헌종태실을 단장하며 그린 안태사 이지연의 보고용 태봉도.

 

1847년 당시에 그렸던 헌종대왕 태봉도에는 태실의 옛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태봉도는 임금의 태를 묻은 태실의 모습과 그 주변 지형을 그린 그림이다.

헌종대왕 태봉도는

1847년에 헌종의 태실을 단장한 뒤에 주변의 산세를 함께 그려 왕실에 보고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안태사(安胎使, 왕가의 태를 봉안하던 관원) 이지연이라는 사람이

명월봉 태봉소(胎封所)에 가서 태를 봉안하고 제작한 그림이라는 기록이 실록기사에 전해온다.

 

1827년 태어나 8세의 어린나이로 등극한 헌종은 재임중인 1847년에 덕산 옥계리에 있는 자신의 태봉지를 단장했다.

당시 태봉지 조성에 대한 안태사 이지연의 보고용 그림과

실록기록은 서울규장각에 있는 원손아지씨안태등록에 자세히 나와있다.

 

태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태는 민간에서도 신성시해 함부로 하지 않았다.

홍성익(강원대 교수)씨의 장태법(藏胎法)에 대한 연구를 보면

왕손이 출생하면 태를 즉시 백자항아리에 넣고 미리 점복(占卜)한 길방(吉方)에 두었다가

3일 또는 7일에 길일(吉日) 길시(吉時)를 정하여 태를 백번 씻는 등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 행해진다.

그런 다음 다시 백자항아리에 넣는데 이때 태 아래에 엽전을 넣고

유지(油紙)와 남색 비단으로 항아리 입을 덮고 빨간 끈으로 봉한뒤 다시 더 큰 항아리에 넣어서 길방에 안치한다.

태봉이 선정되면 대체로 5개월 정도에 장태를 하는데 안태사(安胎使)라는 이름의 관리를 앞세워서 태봉으로 향한다.

이때 북치고 나발부는 요새말로 하면 고적대가 앞장서고 태봉으로 출발하여 태를 안치시킨다라고 기록돼 있다.

 

태봉에 안치된 태의 주인공이 보위에 오르면 그 지역이 한단계 승격됐는데

덕산현이 덕산군으로 승격된 것이 24대 헌종13(184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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