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적연(禾積淵)"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와 관인면 사정리 중간에 위치한 현무암 바위로
영평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물위로 13m 높이에 달하는 바위가 솟아있는데 그 이름이 “화적연(禾積淵)"이다.
이곳을 볏가리나 화적연으로 부르게 된 것은 평지 아래에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흐르는 한탄강 물 가운데
마치 볏단을 쌓아 놓은 볏가리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가 까마득하게 우뚝 솟아나 있고,
물줄기가 이 큰 바위를 감고 떨어져 깊은 연못을 만들어 진데서 유래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화적연에는 물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옛날 어느 한 늙은 농부가 삼년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을 원망하여
이 연못가에서 “하늘도 무심하지, 용은 3년을 두고 낮잠만 자는가?” 하고 탄식을 했더니,
갑자기 수면으로부터 용이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다음날부터 비가 내려 그 해 풍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때부터 이 지방에 가뭄이 들면 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포천은 그 옛날 선비들이 갑갑한 사랑방을 벗어나 빼어난 풍광을 찾아
천하를 유랑했던 그 풍류의 흔적들이 많이 있으며 물 좋고 산수가 빼어난 곳이었다.
이렇게 학문과 시화를 즐기던 성리학적 우주원리에 익숙했던 문인들의 마음에 자리하던 경관의 절정은
아마도 하늘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조화인 화적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한번 꼭 가보고 싶은 곳,
그래서 문인들이나 사대부들은 앞을 다투어 떠났던 길이 바로 금강산 유람이다.
이렇게 금강산을 다녀온 후에는 신선 세계를 본 듯이 자랑을 늘어놓았으며,
유람기를 쓰고 그림을 그려 현장에서 느꼈던 생생한 체험을 오래 간직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조선시대 선비와 왕족들이 금강산을 가던 길에 반드시 들렀다가 가던 곳이 예전에는 영평,
지금은 포천시 영북과 관인에 사이에 있는 화적연이다.
화적연. 이곳은 금강산을 가던 길목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빼놓은 것 같은 자연친화적 섭리와 수려한 경치가 마음을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왕의 그림선생이며 문인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겸재 정선도 금강산유람을 가던 길에,
이 화적연을 그의 화폭에 담지 않고서는 그 허전함을 달래 수 없었기에
발길을 돌려 일부러 찾아가 붓 길을 옮겨 그려낸 것이 화적연도라는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림 안에는 실물과는 비교되는 동적인 사선의 움직임을 많이 느낄 수 있지만,
성리학에 입각한 음양의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경관 상류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봉우리를 배치하여 화적연의 깊고 그윽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여,
실제 크기보다는 크게 그려져
불쑥 솟아오른 바위의 형상이 음양의 조화를 그림에 담았던 그 높고 깊은 마음의 크기가
역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한탄강은 멀리서 보면 마치 수줍어 제 모습을 감추고 있는 대갓집 아가씨처럼 신비롭지만,
막상 강에 들면 물살이 세고 높은 현무암 절벽은 막대기모양의 석벽으로 어우러져
시공을 초월한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대륙이 한바탕 춤을 추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그 틈으로 숨어든 물줄기가
거대한 석벽을 울타리 삼아 비밀스럽게 깊은 곳으로 흘러온 강에 강하게 솟아오른 화적연의 양기는
보는 이의 탄성을 받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이렇게 겸재 정선이 역학 속에 음양의 원리를 자신의 산수화에 도입하여
조선 특유의 진경산수화를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은,
이황의 동인과 쌍벽을 겨누던 서인 율곡이이의 수제자 우암 송시열에 이어
진경문화정신의 지주였던 김창집이라는 문인을 스승으로 모셔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 그 근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겸재 정선은 우리 산천을 자연 그대로 묘사하는 진경(眞景)화풍을 확립해 진경문화를 절정에 얼려 놓아,
모든 것을 중국을 본으로 따랐던 화풍을 내던지고,
우리 갓과 도포 그리고 우리 옷을 입은 선비들, 조선승복을 입은 승려,
저고리 입은 여인들을 우리식으로 그림에 묘사했던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었다.
음각의 강에 유일하게 서있는 양의 기상,
문인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자연의 커다란 흐름인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다르지 않았으니,
다른 민족의 것을 흉내 내는 것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섭렵하고 우리만의 차별화를 깨달아 진경산수화를 이룩했던 겸제의 정신은
댐 공사로 화적연이 물에 잠기더라도 길이 후손에 이어졌으면 좋겠다.
7월 한 여름 다시찿다.
영하 24도의 날씨에 화적연 주위를 걷고 오르다.
화적연에 올라
고석정(孤石亭)
철원읍 동송읍 장흥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세워진 정자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의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고석정은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과
고려 충숙왕(재위 1294∼1339)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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